도올도 책 읽으며 온몸에 전율 일어... 반헌법행위자들, 역사의 법정에 세우다

고창남 2026. 7. 1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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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집념이 낳은 <반헌법행위자열전> 1차분 출간 국민보고회… "현실 법정이 묻지 못한 책임, 기록으로 단죄한다"

[고창남 기자]

▲ 기념촬영 기념촬영 하는 <반헌법행위자열전> 1차분 출간 국민보고회 참석자들
ⓒ 고창남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그늘 속에서 국가폭력의 칼춤을 추고도 단 한 번도 처벌받지 않았던 이들을 역사의 법정에 세우는 준엄한 심판이 시작되었다. 2015년 편찬위원회 출범 이후 오직 시민들의 피와 땀, 그리고 끈질긴 후원만으로 지탱해 온 13년의 대장정이 마침내 첫 결실을 보았다.

지난 2026년 7월 10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1차분 출간 국민보고회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이날 행사는 단순한 책 출간 기념회를 넘어, 과거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 고문조작, 헌정유린의 가해자들을 역사의 공소장에 영원히 기록하는 '역사의 법정' 그 자체였다. 이어 오후에는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으로 자리를 옮겨,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한 열사들에게 책을 바치는 뜻깊은 헌정식이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13년간의 노력... 그리고 시민들의 5천 원이 만든 기적

국민보고회의 사회를 맡은 장해랑 편찬위원회 공동대표(전 EBS 사장)의 개회 선언에 이어, 단상에 오른 이만열 상임공동대표(전 국사편찬위원장)는 감격과 엄숙함이 교차하는 목소리로 인사말을 전했다.

이만열 대표는 "대한민국 헌법은 3·1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국민주권과 기본적 인권보장을 국가의 초석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지만, 과거 권위주의 체제 정권에서 민주주의의 원리가 짓밟히고 헌법을 위반한 사건들이 반복되었다"고 지적했다.
▲ 이만열 인사말을 하는 이만열 상임공동대표(전 국사편찬위원장)
ⓒ 고창남
이어 "민주정부 들어 출범한 과거사 기구들이 민간인 학살과 고문조작의 진실을 규명해 왔으나, 이는 피해자 명예회복과 배·보상에 국한되었을 뿐 기득권 지배 카르텔의 반발과 가해자들의 증언 거부에 부딪혀 역사 정의는 실현하지 못했다"라며, "정부 지원금 단 1원도 받지 않고 오직 뜻있는 시민들의 후원으로 출간된 이 책은 가해자들의 행적을 낱낱이 기록한 교과서이자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는 경고등"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 12·3 내란 사태를 거치며 이 열전이 너무 늦게 나왔다는 탄식을 들었다"라며 "헌법을 지키는 힘은 헌법 조문이 아니라, 그 헌법을 지키고자 하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기억과 감시에서 나온다"고 천명했다.

뒤이어 축사에 나선 남인순 국회 부의장은 "무려 13년간의 시간, 수많은 자료와 증언 그리고 시민들의 뜻이 모여 마침내 이 책이 세상에 나왔다"며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는 "대한민국 현대사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시민들의 저항으로 전진해 왔으나, 그 역사의 시간 속에서 국가폭력 가해자의 이름은 종종 지워졌다"고 꼬집었다.
▲ 남인순 축사를 하는 남인순 국회 부의장
ⓒ 고창남
남 부의장은 특히 이 책이 지닌 시대적 본질을 꿰뚫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졌다.

"진실은 밝혀져야 하고 책임은 기록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는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습니다. 이번에 출간된 <반헌법행위자열전>은 바로 현실의 법정에서 다 묻지 못한 책임을 역사의 법정에 세우는 위대한 작업입니다."

남 부의장은 국회 역시 헌법을 지키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책무를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경과보고에 나선 한홍구 책임편집인(성공회대 교수)은 13년간의 험난했던 편찬 과정을 증언했다. 한 교수는 "처음 시작할 땐 5년쯤 걸릴 줄 알았는데 무려 13년이 걸렸다"며, "2013년 말 처음 논의가 시작되어 2015년 본격화될 당시, 영화 <변호인>이 상영되고 박근혜 정권이 국정교과서를 시도하면서 역사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매우 높았다"고 회고했다.
▲ 한홍구 경과보고를 하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 고창남
그는 "정부 돈을 1원도 받지 않았기에 윤석열 정권 때도 이 작업이 중단되지 않고 지켜질 수 있었다"면서도, "코로나19 장기화로 강연이 차단되면서 매달 5천 원씩~1만 원씩 내어주던 소액 후원 회원이 반토막이 나는 등 극심한 재정적 위기를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한 교수는 "그럼에도 매달 5천 원을 꾸준히 보내주신 시민들의 힘이 기적을 만들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한 교수는 "재정 압박 속에서도 연구원들의 헌신적인 노고와 희생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라며, "매주 월요일 아침 10시, 공휴일이 겹쳐도 빠짐없이 555차례의 회의를 거치며 인물들을 검토하고 한 편당 일곱 번, 여덟 번씩 원고를 뜯어고쳤다. 50대에 시작한 연구진이 이제는 평균 연령 60대 후반의 초고령 팀이 되었다"라고 경과를 보고해 객석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당초 계획했던 405명의 집중검토 대상자 중 박근혜 정부 시기를 제외하고 노태우 정부까지로 범위를 한정하여, 최종적으로 312명이 수록 대상자로 확정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1차분 4권은 1권 총론·대통령 편, 2권 법원 편, 3·4권 검찰 편으로 구성되었다. 한 교수는 "당초 판검사들은 뒤쪽에 배치되어 있었으나, 검찰개혁 논란과 계엄 사태를 거치며 사법 엘리트들이 어떤 짓을 저지르는지 시민들이 뼈저리게 체감했기에 사법 편을 먼저 내게 되었다"라며, 보안사·중앙정보부·경찰 등을 다룬 2차분은 내년 상반기 발간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도올 김용옥 "인간을 빼놓고 역사는 성립하지 않는다" 사자후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도올 김용옥 선생의 기념 강연이었다. 스스로를 '일반인 중 최초의 완독자'라 소개한 도올 선생은 1권을 꼼꼼히 읽으며 밑줄을 친 책을 들어 보이며 격정적인 사자후를 토해냈다.
▲ 도올 기념 강연을 하는 도올 김용옥 선생
ⓒ 고창남
도올 선생은 "역사 서술에서 사마천의 기전체 구조를 보면 황제를 기록하는 '본기'가 있고 인간의 전기를 다루는 '열전'이 있다"라며 역사의 철학적 본질을 짚었다.

"사마천은 '인간을 빼놓고 역사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고, 그 인간이 결국 역사의 핵심이자 구조라는 생각에서 전기를 역사의 핵으로 삼은 것입니다. 사마천이 신분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인물들을 열전에 올린 기준은 오직 하나,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면 어떠한 자라도 올렸다는 점입니다."

이어 역사에서 칭찬하는 '포(褒)'보다 잘못을 야단치고 깎아내리는 '폄(貶)'의 역사가 훨씬 쓰기 어려움을 지적하며, "이 <반헌법행위자열전>이야말로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전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가장 독창적이고 준엄한 '폄의 역사'이며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세계사에서 얼마나 유니크한 위치에 있는지를 증명하는 증거"라고 극찬했다.

그는 "올해 내 나이가 여든이다. 현대사를 다 안다고 자부했고 지식이 많기로 유명한 도올마저도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무식한 놈이었는가' 절절히 깨달았다"라며 고백했다. 조봉암의 처형, 4·19 혁명 등 겉으로만 알던 사건들이 어떤 역사적 인과관계와 사료를 통해 필연적 불행으로 연결되었는지 책을 읽는 내내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는 것이다.

특히 도올 선생은 인공지능 시대를 향한 선구적인 제안을 던지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제 이 <반헌법행위자열전>의 방대한 사료와 사관은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기본 데이터베이스(DB)가 되어야 한다"며 "인공지능이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논할 때 반드시 이 책의 관점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답변하도록 전국적인 디지털화 작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법정 밖의 가해자들을 역사의 단두대로… 전문가들의 준엄한 서평

이어 진행된 서평회에서는 현대사 및 법조계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해 본 서적들이 지닌 학술적·사회적 무게감을 더했다.

제1권 총론·대통령 편 서평을 맡은 정해구 전 성공회대 교수는 이행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의 관점에서 본 서적을 평가했다. 정 전 교수는 "한국 현대사에서 자행된 국가폭력에 대한 과거사 청산 입법이 30여 개에 달하지만, 5·18 특별법을 제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법은 단 하나도 없었다"고 통탄했다. 국가 주도의 과거사 정리가 가해자 처벌을 방기해 온 정치적 타협의 한계를 시민사회가 스스로 뛰어넘었다는 지적이다.

그는 책에 수록된 이승만(가부장적 반공독재), 박정희(전복의 권력욕과 개발독재), 최규하(소심한 기회주의), 전두환(군내 패거리 집단의 정치), 노태우(3당합당을 통한 재보수화) 등 5명 대통령의 민낯을 언급하며, "과거의 독재 가해자에 대한 역사적 고발에 그치지 않고, 박근혜 탄핵과 윤석열의 12·3 내란 및 파면으로 이어지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대통령의 반헌법 행위를 막아내는 강력한 예방주사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 서평회 <반헌법행위자열전> 서평회에 참가한 참석자들
ⓒ 고창남
제2권 법원 편 서평을 맡은 김형태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통제'라는 주제로 사법 엘리트들의 기만을 폭로했다. 국회프락치 사건, 조봉암 진보당 사건, 1·2차 인혁당 사건 등 사법부가 정권의 살인 도구로 전락했던 어두운 역사를 짚으며, 긴급조치 시기를 거쳐 양승태 사법농단에 이르기까지 '법관의 독립'이라는 미명 하에 자행된 반헌법적 행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이 책은 판사들이 저항했다는 사법부 내부의 신화를 깨부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사법 권력을 국민이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검찰 편의 서평을 맡은 문준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홍구 교수 대독)와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이 독재정권의 사냥개를 자처했던 공안정치의 실상을 고발했다.

김인회 교수는 "이 책은 건조한 공기록에 근거하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피와 눈물의 기록이자 고문으로 인간성을 파괴한 가해자들의 거짓말을 밝혀내는 공소장"이라고 정의했다. 특히 공안검사들이 자백배제법칙을 무시하고 폭행과 협박을 묵인·조작했던 교과서적 판례들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법조 윤리의 실종과 법치주의의 양면성을 강하게 질타했다.

오후 마석 모란공원 이동… "열사들이 열어준 길, 깨어있는 시민들이 걷고 있다"

오전의 뜨거웠던 열기는 오후 2시,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으로 이어졌다. 편찬위원회 관계자들과 시민들은 박종철, 문익환, 김근태, 최종길 열사 등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의 묘소를 차례로 참배하고, <반헌법행위자열전> 1차분을 영전에 바치는 '민주열사들께 바치는 헌정식'을 거행했다.
▲ 헌정 '반헌법행위자열전' 민주열사에 헌정하는 최현덕 경기도 남양주시장(가운데)과 참가자들
ⓒ 남양주시 제공
특히 이번 행사는 남양주시(시장 최현덕)가 편찬위 관계자들을 공식 초청해 공동으로 마련해 의미를 더했다. 최현덕 남양주시장은 민선 9기 1호 결재로 '헌법친화도시 남양주 실현을 위한 기본 조례안' 제정 계획에 서명한 바 있다. 최 시장은 "모란공원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상징적 공간"이라며 "민주열사들의 뜻과 헌법적 가치를 시정에 충실히 반영해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권자로 존중받는 도시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편찬위원회의 '헌정사'는 참석한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가해자였으나 단 한 번도 가해자로 불리지 않은 자들, 국민의 흉기가 되어버린 그 권력의 얼굴들을 이 열전의 책장 하나하나에 낱낱이 새겼습니다. 정부 지원 한 푼 받지 않고 오로지 시민의 힘으로 편찬한 이 책은 용서를 구하지 않은 가해자들을 역사의 법정에 세우는 공소장입니다. 이곳에 잠든 님들이여 보고 계십니까.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선 시민들이, 여의도를 가득 채운 응원봉이, 남태령 고개에서 농민들을 환대한 청년들이 당신들이 내어준 그 길을 따라 지금도 걸어가고 있습니다."

책은 출간되었으나 편찬위원회의 기록은 끝난 것이 아니다. 내년 상반기 군부와 정보기관, 경찰의 추악한 민낯을 드러낼 2차분 출간이 기다리고 있으며, 예비 명단에 오른 3000여 명에 달하는 반헌법 행위자들의 행적을 정리하는 지난한 과제도 남아 있다.
▲ 참가자들 <반헌법행위자열전> 1차분 출간 국민보고회에 참석한 참가자들
ⓒ 고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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