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만 하면 후회하는 이들을 위한 특효약 [썼으면 고쳐야지]
시민기자가 쓴 글을 매일 고치고 다듬는 사람의 이야기. 인공지능(AI)이 쓰고 고치는 시대에, 인간이 쓰고 고치는 마음을 찬찬히 담아 봅니다. <기자말>
[최은경 기자]
이제 막 책을 낸 자와 출간을 앞두고 마지막 저자 교정을 보는 자 그리고 아직 계약조차 하지 않은 자가 만났다. 지난 6월 말 대구에서. 이들은 한때 마감을 정해놓고 함께 글을 쓰던 사람들. 모임 이름은 '마감재미'였다. 매주 마감을 하고 있는 지금 내 입장에서는 동의하고 싶지 않은 이름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지난 2021년 여름부터 1년 정도 함께 글을 쓰다가 대개의 모임이 그렇듯 처음의 목적은 간데없고 가끔씩 만나 수다를 떨며 지내왔다. 지난 6월 안식월을 보내고 있던 내가 대구 여행을 핑계로 제안했다. "하고님 책 출간 기념으로 우리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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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만든 이미지. |
| ⓒ 오마이뉴스 |
모듬 생선구이 접시에 놓인 갈치 살을 바쁘게 발라 먹는 분위기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가 오갔다. 누가 글 쓰는 사람들 아니랄까 봐 '토할 때까지 고친다'고 해서 '토고'라고도 부르는 퇴고 성토대회가 열린 것. '퇴고하는 마음'을 쓰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귀가 쫑긋.
올해 초 어렵게 원고를 넘긴 지 한참 만에 저자 교정지를 받아 보니 고쳐야 할 게 너무 많다는 이야기. 출판사 편집자가 고치라는 말을 별로 하지 않아서 더 불안하다는 이야기. 이미 책 낸 자는 뭔가 다를 것 같았는데, 그 역시 막판에 원고를 읽을수록 부족한 점만 보였다는 이야기. 어쩐지 더 고쳐야만 할 것 같은데 편집자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아서 역시나 불안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마감이 있는 것 아니겠나, 어쨌거나 마감했으면 끝난 거지" 이런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고, "그치, 맞지" 하는 장단 맞추기용 멘트가 이어졌다. 하지만 경험상 이리 엄살을 피운 사람 중에 책 내용이 좋지 않았던 경우는 별로 없었기에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독후 결과 이는 사실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한 가지 확실한 건, 원고를 그렇게 많이 봐도 결과물은 늘 부족해 보인다는 거다. 욕심인지 미련인지.
쫑긋 세워졌던 내 귀가 활짝 열린 순간은,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의 원고를 붙잡고 있을 때 출판사 편집자가 들려줬다는 말이 나올 때였다.
"출판사 편집자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그냥 거기까지가 작가님이 쓸 수 있는 글인 거예요. 말하자면 지금은 그 정도 글쓰기 단계인 거죠'라고."
누군가는 뼈 때리는 말이라고 했지만 나는 단번에 알아들었다. 이건 작가를 무시하는 말이 아니다. 여러 작가를 경험한 편집자가 할 수 있는 현명한 조언이다. 더 고치고 싶고, 다른 사례를 넣어야 할 것 같고, 더 알맞은 인용문으로 바꿔야 하나 싶은 마음이 어슬렁거릴 때. 한 마디로 더 좋은 게 있을 것 같은데, 아직 찾지 못한 것 같아 애가 탈 때.
그럴 때 특효약은 하나다. 지금 여기까지가 최선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시간이 더 있다고 해도 고칠 기회가 더 생긴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자신의 한계를, 역량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마감을 못 했으면 모를까, 일단 했으면 땡인 거다. 마감 앞에서 겸손하기. 그래야 다음 단계로,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 나중에 부족함을 깨닫는 것도 좋은 배움이다. 그렇게 계단을 밟고 나가야 성장할 수 있다(당연히 정체기도 있다).
마감 있는 글을 쓰자
배우가 그때만 할 수 있는 연기가 있는 것처럼. 가수가 그때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는 것처럼. 화가가 그때만 그릴 수 있는 그림이 있는 것처럼. 쓰는 사람 역시 그 순간에만 쓸 수 있는 글이 있다. 나에게도 흑역사 같은 글이 있다. 부족한 게 넘쳐 보이는 글이지만 가득 들어찬 것도 있었다. 그게 뭐냐고?
순수했던 시절의 나. 열정에 비해 서툴고 거친 나. 상처받은 나와 불안에 빠진 나. 그 안에서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애쓰던 나. 그 와중에 내가 찾아낸 기쁨과 행복. 그리고 깨달음. 지금은 별로 남아 있는 것 같지 않은 열정과 순수가 그 안에 있었다. 그 쨍한 흔적들이 언젠가의 나를 자극하기도 했고.
두 달 전엔가 신문 칼럼에서 '사람은 자신이 만드는 물건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배울 수 있다'라는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의 문장을 읽고 생각했다. 나는 어떤 물건을 만들고 배웠을까. 20년 넘게 검토한 셀 수 없이 많은 기사가 떠올랐다. 기사도 물건이라 할 수 있을까 싶을 때 몇 권의 책이 떠올랐다.
그렇지, 난 책을 만들었지. (일로 쓴 글을 제외하고) 퇴근하고 글 써 온 시간을 따져보니 올해로 10년째.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쓴 글로 처음 책을 내던 때, 내가 내 수준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안 되겠다고, 못 하겠다고, 이 상태로는 책을 못 내겠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그래도 계속 쓸 수 있었을까. 친구에게 "이전보다 글이 더 나아졌더라"는, 가슴 뻐근한 소감을 들을 수 있었을까.
처음부터 뛰어난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 기준에선 흑역사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쓰는 게 더 대단하다. 전진도 하고 후퇴도 하면서 결국은 나아가는 게 더 근사하다. 뭐든 꾸준히 하는 게 가장 어려운 거니까. 오늘의 결론, 마감 있는 글을 쓰자. 퇴고도 딱 거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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