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유태평양 “10년은 장르 떠나 내가 좋아하는 음악 할 것”

장지영 2026. 7. 1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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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문화]
남아공 유학 다녀온 판소리 신동
국립창극단서 10년 간판스타로
퇴단 후 프리랜서로 다방면 활동
유태평양이 여우락 페스티벌이 한창인 국립극장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웅 기자


올여름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을 맡은 소리꾼 유태평양(33)의 이름 앞에는 ‘판소리 신동’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고 유준열 정읍시립국악단장의 아들인 그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소리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아버지의 스승이기도 한 조통달 명창 문하에서 공력을 쌓는 한편, 사물놀이·아쟁·가야금 등 국악기를 두루 익혔다. 특히 1998년 3시간30분에 달하는 판소리 ‘흥부가’를 여섯 살이라는 최연소 나이에 완창하며 국악계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그는 돌연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아프리카 타악을 배우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유학길에 올랐기 때문이다. 4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동아국악콩쿠르 금상 등 여러 경연 대회를 휩쓸고 꾸준히 완창 무대를 선보이며 건재함을 알렸다. 그리고 2016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하며 본격적으로 대중 앞에 복귀했다. 당시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창작을 꿈꿨기에 국립창극단에 입단하고 싶었다. 감정선이 굵은 캐릭터를 연기해 보고 싶지만 어떤 역할이든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었다.

국립창극단 ‘귀토’에서 함께 연기하는 김준수와 유태평양. ⓒ국립극장


그 다짐대로 유태평양은 입단한 지 얼마 안돼 선배 김준수와 함께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귀토’의 자라, ‘리어’의 글로스터 백작, ‘변강쇠 점찍고 옹녀’의 변강쇠, ‘베니스의 상인들’의 안토니오, ‘보허자’의 안견, ‘심청가’의 심봉사 등 굵직한 레퍼토리의 주·조역을 맡아온 그는 외부 창작자들과의 협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런 그가 창극단에서 꼭 10년을 채운 올 초, 퇴단을 결정했다. 국악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여우락 페스티벌이 한창인 국립극장에서 그를 만나 프리랜서로 나선 배경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었다.

국립창극단 ‘심청’에 심봉사로 출연한 유태평양. ⓒ국립극장

“국악 토대로 좋아하는 음악 만들고파”

“국립창극단 입단 때부터 이곳이 제 인생의 종착지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창극이라는 장르를 워낙 사랑하기에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거쳐 가야 할 필수 과정이라 여겼죠. 지난 10년간 다양한 창극 무대를 경험한 것도 행복했지만 작창, 작곡 등 창작 작업에서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이제는 창극을 포함해 음악을 직접 만드는 창작자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고 싶어 국립창극단의 울타리를 나왔습니다.”

유태평양은 입단 이듬해 열린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재즈 드러머 겸 작곡가 한웅원과의 작업을 시작으로 에스닉 퓨전 밴드 ‘두번째달’, 거문고 연주자 박다울, 국악 작곡가 채지혜 등 여러 아티스트들과 꾸준히 호흡을 맞춰 왔다. 그는 “올해는 음악감독이라는 중책까지 맡게 됐는데, 여우락은 국악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 나를 연결해 준 고마운 축제”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올해 여우락 페스티벌의 예술감독 이한철과 음악감독 유태평양. ⓒ국립극장


올해 여우락 페스티벌이 대중음악 싱어송라이터 이한철 예술감독과 판소리 기반의 유태평양 음악감독을 투톱으로 세운 것은, 경계를 허물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우리 음악’을 선보이겠다는 축제의 지향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동안 소리꾼으로서의 존재감이 도드라졌다면, 올해 여우락에서 그는 작곡가의 면모를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려고 한다. 오는 24~25일 축제의 폐막 공연을 책임진 그는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들을 중심으로 무대를 꾸민다. ‘네, 다음 곡은요’라는 제목의 이번 공연에서 부르는 곡의 70%는 그가 직접 작사·작곡한 결과물이다.

“국악의 대중화는 늘 풀기 어려운 숙제입니다. 대중성을 좇으면 ‘이게 과연 국악이냐’라는 비판이 따르고, 전통만 고수하면 대중과 멀어지니까요. 그래서 고민 끝에 ‘앞으로 10년은 장르를 떠나 그냥 유태평양이 좋아하는 음악을 해보자’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남들이 뭐라 하든 제 정체성의 뿌리는 국악에 있으니까요. 이번 여우락에서 ‘팝스러운 국악’을 콘셉트로 대중음악가들과 과감하게 호흡을 맞춘 것도 그런 도전의 일환입니다.”

작창가 데뷔… 직접 창극 만드는 꿈도

유태평양이 작창가로 참여한 국립창극단 ‘효명’. ⓒ국립극장

그는 국립창극단이 2022년 도입한 ‘작창가 프로젝트’를 통해 작창가로서도 빠르게 성장했다. 작창이란 판소리나 창극에서 사설과 대사에 우리 음악의 장단과 음계를 활용해 선율을 짜는 창작 작업을 말한다. 극의 흐름에 맞춰 음악적 뼈대를 세우고 소리를 입히는 핵심 역할이다. 국립창극단의 작창가·작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강릉매화타령’과 ‘호녀’ 쇼케이스의 작창을 맡았던 그는 지난해 ‘만신’에서 안숙선 명창의 작창보로 참여하며 내공을 쌓았다. 그리고 올해 신작 ‘효명’을 통해 온전한 작창가로 당당히 데뷔했다.

“창극에서 배우가 대본을 받아 무대 위에서 색을 칠하는 역할이라면, 작창가는 도화지에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10년간 무대 위에서 배우로 활동하며 쌓은 연기 노하우와 호흡이 작창에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제가 그린 밑그림 위에 연출가와 배우들이 저마다의 해석을 더해 다채로운 색을 입힌 결과물을 볼 때면 큰 희열을 느낍니다.”

어린 시절부터 익힌 타악기, 피아노, 기타 연주 실력에 컴퓨터(MIDI) 기술을 더해 창작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그는 “요즘 미디를 활용하면 작곡과 편곡을 훨씬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다. 피아노나 기타로 기본적인 코드 반주를 딴 뒤 컴퓨터로 선율뿐 아니라 전체적인 스케치 편곡까지 진행한다”며 “저를 포함해 젊은 작창가들은 음악감독과 편곡의 영역까지 깊게 관여하기 때문에 사실상 작창과 작곡의 경계가 많이 모호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게는 민간 영역에서 창극을 직접 제작하고 싶은 목표도 있다. 국립창극단에서 외국 고전부터 한국 설화까지 넘나들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언젠가 ‘유태평양의 색깔이 진하게 묻어나는 창극’을 올리겠다는 포부다. 다만 그전까지는 의뢰가 들어오는 작창을 맡아 경험을 더 다지고, 여우락처럼 다양한 축제의 예술감독으로서 판소리를 활용한 실험을 이어갈 예정이다.

사진작가 ‘준열’… “10년 내 개인전 목표”

유태평양이 촬영한 연극 ‘칼로 막베스’ 포스터. ⓒ국립극장

음악 외적으로 그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정체성은 사진작가다. 프로 못지않은 실력을 자랑하는 그는 연극 ‘칼로 막베스’, 창극 ‘살로메’, 국립창극단 ‘절창’ 등의 공연 포스터와 동료 아티스트들의 프로필 사진을 직접 촬영하고 있다. 이때 사용하는 작가명은 그의 아버지 이름인 ‘준열’이다.

“국악 행정가였던 아버지는 손에서 카메라와 캠코더를 놓지 않고 늘 공연을 기록하셨어요. 제가 남아공으로 유학을 떠날 때 ‘일기 쓰기 귀찮으면 하루에 한 장씩 사진이라도 찍어라’며 디지털카메라를 선물해 주셨는데, 그때부터 사진 찍는 게 버릇이 됐죠. 2012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본격적으로 사진을 공부했습니다. 주로 인물과 거리 풍경을 담는데, 3~4년 전부터 단체전에 작품도 출품하고 있어요. 앞으로 10년 안에 개인전을 여는 것이 목표입니다.”

다방면에서 종횡무진 활약 중인 그는 최근 개인 스튜디오 겸 작업실을 새롭게 마련했다. 음악 연습과 사진·영상 촬영은 물론, 30~40명 규모의 소규모 공연까지 소화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이다. 그는 “내년부터 이 스튜디오에서 젊은 소리꾼들이 출연하는 소규모 무대를 정기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라면서 “판소리의 날것 그대로 매력을 전달하고 마니아들과 가깝게 소통하는 아지트로 만들려고 한다”고 밝혔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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