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감독, 홍명보식 실패를 막아라] ④ 그놈의 결과지상주의 때문에 결과도 망한다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월드컵은 클럽축구가 아니고, 다른 국가대표 경기와도 완전히 다르다. 각 국가의 축구계 역량을 넘어 문화적 역량의 격돌이기도 하다. 월드컵을 하나의 거대한 콘텐츠로 만들어 온국민이 즐기게 해 주면 그게 경기력까지 끌어올리는 순기능을 낸다. 꼭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팬들은 응원한 기억을 행복하게 간직할 수 있다. 결과가 나빠도 욕을 먹지 않는 길인 셈이다.
그러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에서 조기 탈락한 한국은 홍명보 감독의 경기력 집착, 이에 호응한 대한축구협회의 '결과를 통해 여론을 바꾼다'는 한탕주의로 인해 국민들이 대회를 즐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원래도 월드컵을 큰 콘텐츠로 만드는 접근법이 부족한 축구협회였는데,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빗발친 비난에 '결과가 날 때까지 숨어있기'를 택하고 말았다.
결과만 내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오히려 좋은 결과를 위해 후방과 측면에서 지원할 수 있는 것들을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 한국은 팬들의 응원을 고취시키려는 노력이 전무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은 분위기 측면에서 유리한 점도 있었다. 축구협회는 가만히 있는데 멕시코 사람들이 알아서 한국을 응원해줬다.
한국은 이를 선수단의 에너지로 치환하려는 시도가 턱없이 부족했다. 현지 응원단, 현지 교민 등 어떤 대상과 소통하고 상승효과를 내려는 시도가 없었다. 한국 선수들은 최근 국내 A매치에서 축구협회를 향한 야유에 시달렸다. 협회가 선수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준비 과정에서는 야유를 받았으나 막상 월드컵이 시작되니 이만큼 응원을 받는다. 너희는 자랑스런 국가대표다'라는 메시지를 선수들에게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체적 적응을 최우선으로 하며 홈 출정식을 포기했고, 이를 대체할 현지의 어떤 행사도 만들지 않으면서, 부정적인 에너지를 털어내지 못한 채 본선을 치렀다.
마케팅과 이미지메이킹 시도도 어느 순간 정지됐다. 마케팅이 잘 되면 월드컵과 같은 대회에서는 팀 분위기에도 도움을 받는다. 일본의 경우 어웨이 유니폼이 지난 월드컵보다 12배나 팔렸다. 이는 일본인이 아닌 제3국 축구팬들이 많이 구입했음을 의미한다. 개최 도시 사람들이 일본 유니폼을 사 입고 경기장에 오면 자연스럽게 일본을 응원하게 된다. 또한 우리 대표팀이 세련됐다는 느낌을 받으면 선수들의 자긍심은 증폭될 수 있다. 한국의 유니폼과 마케팅은 이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낸 적이 드물다.
경기력에 대한 집착은 선수들의 신체적 컨디션에 매몰된 나머지 정신적 컨디션을 등한시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한국은 미국 고지대 솔트레이크시티에 틀어박혀 훈련하다가, 과달라하라로 넘어간 뒤 치안 문제로 외출을 제한했다. 과달라하라 숙소는 좁고 불편하다는 선수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만한 휴게공간도 부족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축구협회가 프로그램을 마련해 단체 활동, 최소한 회식이라도 자주 마련해 정신적 휴식을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
축구를 잠깐 잊어도 된다. 극단적인 성공 사례로는 유로 2012를 앞두고 있던 이탈리아 대표팀이 있다. 이탈리아는 대회 개막전을 단 4일 앞두고 선수단 캠프에서 1시간 거리인 아우슈비츠 유대인 학살 현장 견학을 갔다.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을 만한 곳이라, 한국 감독은 아예 발상조차 힘든 활동이다. 유대계 이탈리아인 홀로코스트 생존자 3명이 직접 선수들을 안내하면서 몸에 새긴 유대인 문신을 보여주자 일부 선수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활동이 대회에 집중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을까? 이탈리아는 나흘 뒤 스페인 상대로 오래토록 회자될 명경기를 치렀으며, 대회 성적은 기대를 훌쩍 뛰어넘은 준우승이었다. 아우슈비츠 방문 덕분에 결승에 간 건 아니지만, 최소한 경기력에 방해는 되지 않았다는 좋은 사례다.
좀 더 가벼운 사례로는 이번 대회의 노르웨이가 있다. 노르웨이 협회는 선수들의 바이킹 분장 콘셉트 촬영, 프로 데뷔 당시 유니폼 촬영 등 다양한 자체 콘텐츠를 마련했다. 팬들에게 보여주는 콘텐츠인 동시에 내부적으로도 선수들의 동기부여를 끌어올리기 딱 좋다. 바이킹 촬영을 위해 바닷가까지 나가서 분장을 받는 등 번거로운 과정을 거쳤지만 영상 속 선수들은 즐기고 있었으며, 이번 대회 최대 히트상품인 바이킹 응원으로 이어지는 서사가 됐다. 데뷔팀 유니폼은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했다. 역시 몸 상태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감독이라면 거부할 만한 콘텐츠들이지만 노르웨이는 이런 과정을 거치며 이번 대회 최대 이변의 팀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성적만 좋은 게 아니라 긍정적인 에너지로 축구 인기를 끌어올릴 만한 팀이다.


이런 정신적 휴식이 늘 필요한 건 아니고, 늘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번 한국은 감금에 가까운 장기간 합숙과 불편한 숙소 상태, 여기에 한국 대표로서의 자긍심이 바닥까지 떨어진 월드컵이라는 걸 감안할 때 단체활동이 특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회식 수준이었어도 좋을 것이고, 타국 사례를 참고한다면 과달라하라의 안창호 선생 거처 방문과 같은 활동을 통해 애국심을 더욱 고취시키고 동기부여 효과까지 노릴 수도 있었다.
홍 감독은 2014년 처음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을 때 전임 감독들에 비해 선수들의 언론 접촉을 확 줄였다. 대외 활동이나 축구협회 마케팅 협조에 대한 인식이 약한 감독에 속한다. 특히나 이번 대회는 비난에 시달린 나머지 감독 본인부터 대외적인 활동을 최소화했기 때문에 선수들은 여전히 자신을 응원하는 팬들을 느낄 기회가 제한된 채 이번 대회를 치렀다. 월드컵을 통한 마케팅과 콘텐츠로서의 활동, 팬들과의 접촉 등은 '경기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정신적 휴식을 주고 팀애 대한 동기부여를 고취시키는 활동'이다. 한국도 이런 접근이 필요하다.
<홍명보 감독 선임 실패에서 대한축구협회는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이번뿐 아니라 앞으로 모든 감독 선임에서 반드시 피해야 할 실패 요인은 무엇일까. 홍 감독의 시작부터 끝까지 드러난 문제를 여섯 가지로 정리한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풋볼리스트,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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