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그후]①리테일 아포칼립스의 '결정적 장면'
빈 매대 곳곳, 입점업체 줄줄이 철수
홈플러스 사태 전문가 심층 진단
규제·MBK·온라인 복합요인
"강성노조 인수자 없어"

8일 오후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강서점. 텅 빈 채소 판매대를 한참 둘러보던 이명숙씨(61·가명)는 빈 장바구니를 접으며 "10년 넘게 홈플러스를 다녔는데 이제 정말 끝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매장 곳곳은 비어 있었다. 달걀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홈플러스 자체브랜드(PB) '심플러스' 도마가 놓여 있었고, 두부 판매대에는 생활용품이 진열됐다. 조리식품 판매대와 육류 코너는 불이 꺼졌고, 입점 식당과 커피숍 출입문에도 '임시 운영 중단' 안내문이 붙었다. 세정그룹의 의류 브랜드 매장 직원은 "두 달째 대금을 받지 못했고, 홈플러스 전 매장을 합치면 미수금만 10억원에 달한다"며 "입점업체는 회생채권 3순위인데 대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날 영업을 종료한 매장에서는 신상품까지 50% 할인 판매했다.
홈플러스 본사가 들어선 강서점은 '마지막 자존심'으로 불렸다. 본사 임원들이 자주 찾는 탓에 신선식품을 비롯한 상품구성과 품질관리가 깐깐하기로 유명했다. 점포 문은 아직 열려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사라지고 있던 것은 상품만이 아니었다. 소비자는 발길을 끊었고, 협력업체는 납품을 멈췄으며, 입점업체는 간판을 내렸다. 직원들은 조용히 회사의 마지막을 예감했다.

무너진 것은 홈플러스만이 아니다. 1993년 11월12일 서울 도봉구 창동에 '이마트 창동점'이 문을 연 이후 주말이면 가족 단위 손님으로 북적이던 대형마트의 시대도 함께 저물고 있다. 이른바 오프라인 소매업의 종말(리테일 아포칼립스) 신호탄이다.
아시아경제가 10일 대형마트 임원과 납품업체, 입점업체, 홈플러스 전·현직 임직원, 유통 학계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설문과 심층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홈플러스 몰락은 복합적이다. 응답자의 절반은 대형마트 규제를 출발점으로 꼽았고, 이후 MBK파트너스의 경영 방식과 온라인 소비 확산, 홈플러스의 경쟁력 약화가 연이어 겹쳤다는 분석을 내놨다.

1997년 삼성물산이 대구에 1호점을 열며 출범한 홈플러스는 1999년 영국 테스코가 경영권을 인수한 뒤 빠르게 몸집을 키웠다. 2004년 슈퍼마켓부문 사업을 시작하고 2008년에는 이랜드그룹으로부터 홈에버를 인수하며 전국 140여개 점포를 운영하는 국내 2위 대형마트로 성장했다. 당시 홈플러스는 테스코 해외 사업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수익을 내는 시장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대형마트 출점이 막혔고, 의무휴업이 도입돼 이듬해부터는 월 2회 의무휴업과 함께 오전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이 제한됐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도입된 제도였지만, 대형마트의 성장 엔진은 서서히 꺼져갔다.
홈플러스 전 직원은 "(홈플러스 전신인) 테스코가 유통산업발전법 시행 이후 성장성이 떨어질 것으로 판단하면서 결국 한국 시장 매각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안다"면서 "홈플러스 위기의 출발점이 유통산업발전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교수는 "의무휴업은 단순히 하루 쉬는 문제가 아니라 영업시간과 배송, 점포 운영 전반을 제한하는 규제"라며 "규제가 장기화하면서 기업들이 투자보다 생존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규제만으로 홈플러스 몰락을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목소리를 냈다. 같은 규제를 적용받은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지금도 시장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홈플러스를 결정적으로 흔든 요인은 2015년 MBK파트너스 인수 이후 경영 방식을 꼽았다.
MBK는 2015년 9월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7조2000억원에 홈플러스를 인수했고, 이 과정에서 약 4조원의 빚을 졌다. 인수 당시에는 2년간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에는 경쟁력 강화보다 자산 유동화에 속도를 냈다. 가좌점·김포점·김해점·동대문점·수원점 등 핵심 점포를 매각해 6440억원을 확보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점포와 물류센터 28곳을 팔아 총 4조1000억원을 마련했다.
세일앤드리스백(매각 후 재임대)으로 연간 임대료 부담은 4000억원대로 불어났다. 업계에서는 점포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이 인수금융 상환과 투자금 회수에 활용된 반면 점포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 여력은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홈플러스 노조 관계자는 "대주주는 기업을 오래 키우기보다 투자금 회수가 우선일 수밖에 없다"며 "미래 경쟁력보다 단기 수익을 중시한 결과"라고 말했다. 홈플러스 전 임원 역시 "테스코 시절에는 글로벌 소싱과 점포 투자에 집중했지만 MBK 체제에서는 비용 절감과 자산 유동화가 우선순위가 됐다"고 짚었다.

홈플러스를 공중분해 위기로 몰아넣는 결정타는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을 기점으로 소비의 중심축이 온라인 시장으로 옮겨가면서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홈플러스는 MBK 인수 직전인 2014년 매출 7조526억원, 영업이익 1944억원을 기록했다. 이후 주요 점포는 세일앤드리스백 전환한 뒤인 2019년까지 1000억원 이상의 꾸준한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전대미문의 감염병 유행으로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면서 비대면 소비가 확산하자 소비자는 먼저 대형마트를 떠났다. 주말마다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던 문화는 모바일 주문으로 바뀌었고, 쿠팡과 마켓컬리는 새벽 배송을 앞세워 신선식품 시장까지 파고들었다. 온라인 거래액은 오프라인을 넘어섰고 식료품 역시 온라인 구매가 일상이 됐다. 산업통상자원부(현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2021~2025년 전체 유통업체 매출은 연평균 6.7% 증가했지만 온라인은 10.1% 성장한 반면, 대형마트는 연평균 4.2% 감소했다.
홈플러스 실적도 악화했다. 코로나19가 강타한 2020년 영업이익은 900억원대로 급감했고, 2021년부터 적자 전환해 지난해까지 5년 연속 영업손실을 냈다. 지난해에는 매출 5조7963억원, 영업손실 5464억원을 기록했다. 홈플러스 현직 직원은 "세일앤드리스백 점포 전환에도 손님들이 많이 방문하면 임대료를 내고도 이익을 냈다"면서 "코로나 기간 온라인 시장이 이렇게 성장할지 간과한 것이 패착"이라고 말했다. 최자영 한국유통학회장은 "소비자들은 마켓컬리의 새벽배송, 쿠팡의 익일배송처럼 빠르고 편리한 배송 서비스에 익숙해졌다"면서 "한번 편리함을 경험한 소비자는 다시 기존 채널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홈플러스도 온라인 시장을 공략했다. 홈플러스는 2020년 8월 네이버가 신규 론칭하는 '장보기' 서비스에 입점했다. 최근 컬리가 네이버쇼핑에 입점해 신선식품 유통을 맡은 것과 마찬가지로, 홈플러스와 네이버의 윈윈 전략이었다. 하지만 노조의 반대로 온라인 전환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홈플러스 전 직원은 "내부에서는 온라인 배송을 적극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노조 반발이 컸다"면서 "온라인 배송 확대가 노동 강도를 높인다는 이유로 반대해 변화가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온라인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고객의 발길이 끊긴 오프라인 부실점포도 늘어났지만, 노조가 폐점을 반대하며 구조조정도 쉽지 않았다. 홈플러스는 유통법 개정과 오프라인 침체로 이마트와 롯데마트가 인력을 줄이는 동안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않았다. 오히려 2019년 1만4200명의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당시 홈플러스 임직원 수는 2만2000명을 넘어섰고, 기업회생 전인 지난해 2월 기준 1만9500명이었다. 반면 업계 1위인 이마트는 2015년 3만명이 넘었지만, 지난해 2만3000명 수준으로 줄었고, 이 기간 롯데마트는 1만3000명에서 9700명까지 축소됐다. 유통 대기업 관계자는 "대형마트가 출점은 어려워졌고 자산은 계속 유동화되면서 이자 부담만 커지는 구조가 됐는데 인건비를 줄이지 않으면 전부 적자"라면서 "노조가 강한 점도 인수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라고 짚었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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