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선생님에게 배운 연민, 패션은 그 연민 실천하는 방식”

맹경환 2026. 7. 10.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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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가]
도스토옙스키 4대 장편 완역한 패션 기업 ‘스페이스눌’ 대표 김정아
도스토옙스키의 4대 장편을 완역한 번역가 김정아는 패션 기업 스페이스눌의 대표이기도 하다.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예술이라면 패션은 인간의 몸과 일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예술”이라며 “대상만 다를 뿐 결국 둘 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최현규 기자


“어린 시절의 저는 한마디로 말하면 허기진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사랑에 대한 허기, 인정에 대한 허기, 세상에 대한 호기심의 허기 같은 것들이 늘 안에 있었습니다.”

처음엔 의외였다. 패션 기업 스페이스눌의 대표이자 러시아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4대 장편을 완역하고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김정아에게 허기, 콤플렉스 같은 단어들을 듣게 될지는 몰랐다.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나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린 시절의 그 허기가 오늘 김정아의 근원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허기와 결핍, 문학의 씨앗

삼 남매 중 둘째였다. 엄마의 아름다움과 아버지의 총명함을 모두 물려받은 언니는 범접할 수 없는 ‘성의 성주’였다. 집안의 기대와 사랑을 독차지한 동생은 15대 종손이었다.

어린 시절 늘 ‘언니처럼 조용하고 예쁘고 천재 소리를 듣는 아이도 아니고, 동생처럼 특별한 존재도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밖에서는 공기놀이와 딱지치기를 즐기는 ‘왈가닥’ 소녀였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결핍감이 있었다. 꿈도 많았지만 콤플렉스도 많았다.

그 허기를 채워준 탈출구는 만화책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푹 빠졌던 ‘캔디 캔디’와 ‘베르사유의 장미’는 그에게 첫 번째 ‘문학’이었다. 가상의 세계 속에서 고독과 상처, 운명과 계급, 그리고 아름다움과 비극을 처음으로 배웠다. 그는 “현실의 세계보다 조금 더 극적이고 낭만적이며, 어딘가 상처 입은 인물들이 살아가는 세계에 끌렸다”고 말했다.

“돌아보면 그 결핍과 허기짐이 저를 끊임없이 읽게 하고, 쓰게 하고, 번역하게 했어요. 도스토옙스키가 창조한 인물들도 결국 모두 결핍을 안고 존재를 증명하려 몸부림치는 사람들이거든요. 어릴 적 느꼈던 서러움과 인정 욕구, 그럼에도 아름다운 것을 꿈꾸던 마음이 그들의 영혼을 이해하는 밑바탕이 된 셈이죠.”

마르멜라도프와의 만남

사진=최현규 기자

어릴 적 꿈은 판사나 변호사 같은 법조인이 되는 것이었다. 엄혹한 현실 때문에 법조인의 꿈을 접어야 했던 사랑하는 아버지를 위한 선물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루겠다고 다짐했던 소녀의 인생을 다른 방향으로 이끈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대입 논술을 준비하며 읽은 한 권의 책, 바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마르멜라도프라는 술주정뱅이 가장을 보며 참을 수 없는 분노와 거부감을 느꼈어요. 술에 빠져 가족을 가난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고, 딸 소냐가 몸을 팔아 벌어온 돈으로 다시 술을 마시고, 자신의 비참함을 자책하면서도 술을 끊지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저를 진짜 충격에 빠뜨린 건 그 인물이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무책임한 인간을 비난하거나 조롱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비참함 이면에 숨겨진 인간적인 고통과 자기 혐오를 깊은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선과 악, 옳고 그름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이해와 용서의 세계를 목격한 순간이었다. 결국 도스토옙스키라는 작가에 대한 호기심은 법대가 아닌 서울대 노어노문학과로 이끌었다. 아버지는 조금 섭섭해 하셨지만.

세계 문학의 거대한 별자리

미국 일리노이대 슬라브어문학부 대학원에서 슬라브 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많은 작가를 접했다. 아무리 멀리 돌아가도 종착지는 언제나 도스토옙스키였다. 그는 “한 번 최고의 맛을 본 사람이 쉽게 다른 맛에 만족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도스토옙스키 주위를 맴돌았다. 도스토옙스키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기에 그를 사랑했던 작가, 그에게 영향을 준 작가, 그리고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현대 작가들까지 따라다녔다. 김정아는 “도스토옙스키를 중심으로 거대한 별자리가 만들어진 셈”이라고 했다. 학자의 울타리를 벗어나 패션 사업에 뛰어든 이후 그의 독서는 자유로워졌다. 한때는 밀란 쿤데라에게 빠져 체코 프라하로 떠나기도 했고, 프란츠 카프카의 일기와 편지를 샅샅이 탐독하기도 했다. 알베르 카뮈와 프리드리히 니체에 깊이 몰두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살짝 한눈을 파는 시간”이었다.

“집을 나간 탕자가 결국에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듯 저는 언제나 도스토옙스키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아마 평생 그럴 것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특정한 공간이 고향이겠지만 제게 고향은 장소가 아니라 한 사람입니다.”

그에게 도스토옙스키는 단순히 소설가가 아니다.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였고, 신학자이자 예언가였으며, 인간 영혼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탐험한 개척자였다. 죄와 구원, 자유와 책임, 사랑과 증오, 신과 인간, 선과 악, 허무와 희망이라는 인류의 거대한 고민이 도스토옙스키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이야기로 구현됐다. “아직도 도스토옙스키를 능가하는 깊이와 넓이를 가진 작가를 만나지 못했다”는 김정아는 “도스토옙스키를 연구한 것이 아니라, 평생 그 사람을 따라다녔다”고 고백했다.

패션과 도스토옙스키

사진=최현규 기자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던 지인의 부탁으로 패션 업계에 발을 디뎠다. 처음엔 한 달에 한 번 조언을 해주는 정도였지만 어느새 전문 경영인을 넘어 오너 대표의 자리로 이어졌다. 노하우를 철저히 숨기고 시행착오를 공유하지 않는 패션 업계의 폐쇄적인 문화는 선배의 연구를 바탕으로 후배가 더 멀리 나아가는 학문의 세계에서 살아온 그에게 큰 문화적 충격이었다.

“내가 배우는 데 3년이 걸리고 3억원이 들었으니 너도 똑같이 고생하라는 식의 문화가 이해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몸으로 부딪치며 배운 실무 지식과 노하우를 혼자 간직하지 않고 모두 나누기로 결심했죠.” 그렇게 탄생한 책이 바로 현직 패션 MD들의 바이블로 꼽히는 ‘패션 MD’ 시리즈다.

패션계에 20년 넘게 몸담고 있지만 그의 근원은 언제나 인문학이었다. 그리고 그의 몸속에는 도스토옙스키의 연민이 흐르고 있었다. 2016년, 콜롬비아의 전통 수공예 가방인 ‘모칠라’가 유행할 때였다. 주문과 다른 색상이 오거나 제작에 수개월이 걸리는 불확실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고 36시간을 날아 콜롬비아 북부 과히라 사막의 리오아차 마을로 향했다. 열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와유족 소녀가 5개월 된 아기를 안고 있는 열악한 환경을 목격한 순간, 관심은 이제 모칠라가 아니라 그들의 삶이었다. 귀국 후 자료를 뒤져 ‘예쁜 모칠라 스토리’를 펴냈고, 콜롬비아가 남미에서 유일한 한국전쟁 참전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에 대한 예의를 다하기 위해 ‘라틴 아메리카의 보석, 콜롬비아’라는 책도 출간했다. 책 인세의 일부는 콜롬비아 아이들을 돕는 데 사용하고 있다.

그는 패션과 도스토옙스키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도스토옙스키가 가르쳐 준 것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었고, 패션은 그 연민을 실천하는 또 다른 방식이었을 뿐이다.

도 선생님을 만난다면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까지 도스토옙스키의 4대 장편소설을 모두 완역하는 데는 장장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오전 2시에 일어나 6시간 동안 번역하고,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회사 업무를 봤다. 번역은 단순히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기술이 아니라, 단어 하나와 쉼표 하나까지도 작가의 영혼과 소통하며 곱씹는 고독하고 치열한 수행이었다. 그는 “한 권씩 번역을 끝낼 때마다 도스토옙스키를, 동시에 인간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도스토옙스키를 ‘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길을 잃을 때마다 방향을 알려주는 인생의 나침반이자 스승이기 때문이다. 만약 도스토옙스키를 만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건네고 싶냐는 엉뚱한 질문을 했다. 그는 “많은 말은 필요 없을 것 같다”면서 “평생 간질과 가난에 시달렸고, 사형 집행 직전의 공포와 유형 생활이라는 모진 고통을 겪으면서도 끝내 인간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 고단한 눈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조용히 안아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 번역가로서, 사업가로서, 그리고 인간 김정아로서의 꿈은 뭘까. 우선은 도 선생님의 전도사로서 도스토옙스키의 연민과 사랑을 쉽고 따뜻하게 전달할 수 있는 책을 꾸준히 쓰고 싶다고 했다. 사업적으로는 자신보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파트너를 만나 지금보다 10배쯤 크게 키워내는 것이다. 현실에 굴복해 꿈을 접어야 했던 아버지의 슬픔을 기억하기에 누군가의 소중한 꿈이 경제적 이유로 꺾이지 않도록 돕기 위해서다. 인간 김정아의 바람은 의외로 소박하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조금 더 선한 사람이 되고, 조금 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조금 더 쉽게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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