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체'의 앤트밀 장면, 소수의견 반영한 결과였다"
영화의 모든 장면은 협업의 결과물입니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감독의 얘기를 듣고, 그 장면 뒤 숨은 주인공을 만나봅니다. <기자말>
[이선필 기자]
|
|
| ▲ 영화 <군체>의 콘티 일부. |
| ⓒ 쇼박스 |
영화는 서울 고층 빌딩을 배경으로 정체불명의 집단 감염 사태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분투를 다룬다. 짐승처럼 기어다니던 감염자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더욱 위협적으로 진화한다는 설정에서 좀비물 <부산행>(2016), <반도>(2020) 이후 연 감독이 다시 꺼내 든 좀비 장르의 변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출발점은 의외로 좀비가 아니었다.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만난 연 감독은 "(사이비 종교 교주를 다룬) 드라마 <지옥> 때 남은 숙제를 고민하다가 나온 생각이고, 좀비물도 가능하겠다는 판단은 그 이후에 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이런 취지를 관객들이 알아본 걸까. <군체>는 5월 21일 개봉 후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500만 명(6월 13일 기준)을 가뿐히 넘기며 <왕과 사는 남자>에 이어 2026년 흥행 영화 2위를 기록 중이다. 앞서 5월 16일(현지시각) 제79회 칸영화제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된 직후 영화에 등장한 좀비들의 특정 동작을 따라 하며 즐거워하는 현지 관객들도 있었다고 한다. 연 감독은 "10년 전 <부산행> 이후 제가 선보이는 좀비 자체가 해외에서 어떤 상징성을 가진 게 되어 버린 것 같다"며 칸 상영 반응에 대한 소회를 전했다.
|
|
| ▲ 영화 <군체> 촬영 현장. |
| ⓒ 쇼박스 |
영화 초반부에 바로 상징적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집단지성 공유를 유도하는 물질 기술을 빼앗긴 데 분노한 서영철(구교환)은 해당 바이오 회사가 자리한 건물에 생화학 테러를 감행한다. 하나둘 좀비로 변하기 시작한 사람들 틈에서 생명공학자 권세정(전지현)과 생존자들은 건물 안 쇼핑몰 구역의 한 매장에 몸을 숨기게 되고, 거기서 괴이한 광경을 목격한다. 자신들을 공격하던 좀비 무리가 순간 동작을 멈춘 채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온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한 것. 공격 과정에서 수집한 정보를 공유하는 일종의 '업데이트' 과정에 들어간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좀비는 일종의 AI적 특징이 있어야 했다. 그걸 시각화하는 동작에 대해 엄청 고민했다. 영향받은 게 1978년에 나온 필립 카우프먼 감독의 <우주의 침입자>(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라는 작품이다. 그 영화 마지막 장면을 보면 외계인들이 인간을 발견했을 때 하는 동작이 있다. 팔을 들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식인데 거기서도 집단의식을 공유한다는 설정이거든.
그것과 똑같이 할 순 없으니 스태프들과 회의하다가 좀비들이 고개를 팍 들면 어떨까 얘길 꺼냈다. 직관적으로 나온 생각이다. 와이파이에 접속해 정보를 업데이트한다는 느낌으로 동작을 만들어 갔다. 세세한 건 안무팀에서 배우들과 고민하면서 잡아간 것으로 안다. 저보다 그분들이 전문가니까 제가 하나하나 관여하진 않았다. 감독이 스태프나 배우 연기에 너무 관여하면 서로 힘들어지고 답이 더 안 나오더라."
칸영화제 관객들 일부가 해당 동작을 따라 하며 즐긴 현상을 두고 연 감독은 "마치 개그맨이 영화 대사를 유행어로 만들 듯, 그 동작을 흉내 낸다는 건 우리 영화의 정수를 즐기고 이해한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영화의 핵심 화두 중 하나인 AI에 대한 두려움을 감독 또한 가지고 있는지 물었다. 정작 그는 "AI를 두려워한다는 건 인간의 특질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라 그 자체가 무섭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말을 이었다.
"AI는 결국 보편적 사고의 통합으로 움직인다. 사실 예술에도 그런 게 필요하다. 특히 영화 같은 대중 예술에는 더욱 그렇다. 일례로 마르셀 뒤샹이 '샘'이라는 작품을 내놨을 때 엄청난 이슈였잖나. 보편 이미지이자 기성품인 변기에 다른 개념을 부여함으로써 이후 앤디 워홀 등이 나올 수 있었다. 이게 영화 시스템에도 적용될 수 있다. 결국 개인의 독창성을 예술로 구현하는 데에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AI 기술 발전이 시스템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특히 아시아에서 영화를 하는 사람들에겐 대단한 기회가 될 것 같다. 과거엔 아시아 감독이 미국 할리우드에 진출한다고 하면 자기네 시장에서 구현 못 하는 상상을 미국에서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 장벽이 없어지는 시대로 가고 있다. 지금 할리우드에선 AI 기술 사용을 매우 엄격하게 보며, 일부는 반대하고 있는데 그들이 쌓아온 권력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직감하고 있는 거라고 본다."
|
|
| ▲ 영화 <군체> 촬영 현장. |
| ⓒ 쇼박스 |
서영철의 계략으로 건물 안에 갇혔던 좀비들이 결국 외부로 쏟아져 나오고, 근처 시민들이 대거 감염되며 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상태가 된다. 그들이 체액을 통해 소통하는 걸 간파한 권세정은 그것을 온몸에 바른 채 좀비 군체 틈으로 파고든다. 알파 좀비, 즉 최초로 바이러스를 감염시킨 존재를 제거하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좀비들은 하나둘 혼란에 빠지며 세정을 공격하는 게 아닌 그를 중심으로 큰 원을 그리며 무한 회전하다가 이내 한꺼번에 쓰러지고 만다. 공유된 정보가 오염되자, 서영철이 그들을 다시 리셋(reset)시키기 위해 택한 방식이다. 그 덕에 세정은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상황을 끝낼 기회를 얻게 된다.
"그 앤트밀 장면은 초기 기획 단계에선 없었다. 촬영을 앞두고 투자 배급사인 쇼박스 측에서 제안한 아이디어였다. 사실 <부산행>에서 기차에 좀비가 끌려가는 장면도, 촬영 중간에 우연처럼 나온 것이었다. 앤트밀도 우연의 산물었지만, 좀비를 재부팅하는 이미지에 딱이었다. 이게 AI의 집단지성과는 다른 점이다. AI가 이미 나온 정보들이 한데 뒤섞인 결과에 기반한다면, <군체>의 그런 장면은 오히려 소수의견을 반영한 결과잖나. 그 장면을 통해 집단화된 존재들이 보이는 맹목성의 위험, 그것의 오류를 말하고 싶었다.
현대무용의 군무 중에 신호를 주면 맴돌던 사람들이 한 번에 쓰러지는 설정이 있다. 근데 좀비 연기를 하며 넘어진다는 게 되게 위험한 일이었다. 원형으로 달리는 속도도 매우 빨랐는데 시야도 제한되거든. 안무팀은 물론이고 국내에서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스턴트 배우들을 모았던 것 같다. 한 40명 정도였다. 실제 촬영은 이들이 넘어지는 것만 찍었고, 나머진 CG의 도움을 받았다."
이 대목에서 연 감독은 극 중 권세정이 차를 운전하며 좀비를 이리저리 치는 장면은 거의 실제로 찍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반도> 땐 CG로 했던 카체이싱 장면과 달리 이번엔 스턴트 배우들과 함께 실제로 운전하고 차에 부딪히게끔 했다"고 설명했다.
"전지현 배우가 운전석에 타고, 그 옆에서 스턴트 배우가 실제로 운전하게끔 했다. 이것을 위해 우측 자리에도 핸들이 있는 특수차를 제작했다. <계시록>을 촬영할 때 처음 시도한 건데 CG로 나중에 우측은 지울 수 있거든. CG로만 처리했을 때와 실제 연기를 함께 넣을 때와 현실감이 완전 다르더라. 하지만 이게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 배우들끼리 엄청 연습했다. 촬영 직전, 반나절을 내내 합을 맞춰야 했다."
연 감독은 "해당 장면이 나오기까지 전영 안무감독과 유미진 무술감독의 공이 컸다"고 짚었다. 전 안무감독은 <부산행>, 드라마 <킹덤> 등에서 좀비 동작을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유 감독에 대해 연 감독은 "국내에선 거의 유일한 여성 무술감독"이라며 "액션 현장이 위험해서 종종 고성이 오가기 마련인데 그는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통솔한다. <군체>가 난도 높은 현장이었음에도 단 한 번의 사고도 난 적이 없다"고 전했다.
|
|
| ▲ 영화 <군체>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 |
| ⓒ 쇼박스 |
"흔히 지난 20년을 두고 CJ나 롯데, 쇼박스, 뉴 등 4대 배급사 시스템의 시기라고들 하잖나. 그 시작이 김지운, 박찬욱, 봉준호 감독님이셨고 저도 <부산행>으로 상업영화를 시작했으니 어느 정도 거기에 걸쳐 있었다. 근데 제가 겪은 10년은 격변기였더라. 뭔가 안주할 수만은 없었다. 이젠 5년 단위로 시스템이 바뀌는 것 같다. 안주하고 싶으면서도 그럴 수 없는 이유다. 제 입장에선 계속 몸을 가볍게 할 수밖에 없더라. 영화계의 보부상 같다고 할까(웃음).
영화에서 몸이란 게 결국 프로덕션을 뜻하는데 이걸 가볍게 하지 않으면 변화에 적응할 수 없다. 미국만 봐도 대형 스튜디오들이 많이 무너지고, 이젠 제작사들이 각자 브랜드를 강화하고 있잖나. 저도 기성세대라 안주하고픈 마음도 있지만, 뭔가 시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 그걸 인정하는 것이다. 이제 영화를 시작하는 분들이 그걸 빨리 인식했으면 좋겠다.
<챔프>, <아이큐점프> 같은 만화잡지가 사라지고 강풀 작가 등을 위시한 웹툰이 처음 나왔을 때 '그게 만화냐'라는 반응이 주였다. 근데 너무 빠르게 웹툰이 자릴 잡았잖나. 그걸 미리 인지하고 빠르게 산업화한 이들이 업계를 선점했다. 물론 지금은 웹툰도 무너지는 시기가 왔는데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적응, 재정립 과정이 빨라졌다는 걸 인지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석열 징역 7년 확정... 변호인은 "씨X", 지지자들은 눈물
- 한국 극우의 수상한 움직임...내란 실패했는데 되살아난 까닭
- 고척돔 '다회용기 도입' 1년, 여전히 '일회용품 천국'인 이유
- 팩트체크 공격하며 팩트도 틀리는 국민의힘
- '김건희 청탁 브로커' 건진법사 전성배, 징역 5년 유죄 확정
- 1년만에 재점화된 안규백 탈영 의혹...이유는?
- 찌기만 해도 '천연 영양제'로 손색 없는 여름 식재료
- 광주경찰청서 문전박대 당한 장동혁, "이게 경찰 민낯" 격분
- "MBK·메리츠 지뢰밭 됐다"… 홈플러스 회생 '빨간불'
- "가처분 인용 사태 재발 막아야"... 국힘 '법 전문가' 윤리위원 추가 임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