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보훈 사역, 6·25 전쟁 의미를 ‘기억의 역사’로 바꿨다

김아영,장창일 2026. 7. 9.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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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에덴교회 참전용사 20년 보은] 한·미서 진행된 기념행사 안팎
소강석(왼쪽 네 번째) 새에덴교회 목사 등 참석자들이 지난달 미국 버지니아주 JW 메리어트 레스턴 스테이션 호텔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용사 및 가족 초청 보은 행사’에서 손을 잡고 아리랑을 합창하고 있다. 교회 제공


잊혀진 역사에서 기억되는 역사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영웅들을 향한 한국교회의 보은 여정이 20년을 맞았다. 경기도 용인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는 최근 미국 워싱턴 일대에서 참전용사와 가족 등 300여명을 초청해 대규모 해외 보훈 행사의 대미를 장식한 데 이어 국내에서도 참전용사 200여명과 함께하는 20주년 기념 보훈 음악회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한 세기에 가까운 삶을 살아낸 양국의 백발 노병들은 한국 어린이들의 순수한 감사 인사와 교인들의 뜨거운 환대에 눈시울을 붉혔다. 전쟁의 상흔을 인류애로 승화시킨 영웅들의 헌신에 새에덴교회는 큰절과 거수경례로 최고의 경의를 표했다. 노병들의 고령으로 해외 대규모 행사는 이제 막을 내린다. 하지만 단 한 명의 참전용사가 살아있는 날까지 이들을 향한 기억과 예우, 그리고 민간 보훈 외교의 숭고한 약속은 이어갈 예정이다.

미국 보훈행사, 대미 장식

백발의 노병들이 서로의 야윈 손을 맞잡았을 때 70여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은 눈물이 깊은 주름을 타고 흘러내렸다. 알지 못하는 나라를 위해 청춘을 바친 푸른 눈의 영웅들을 향한 한국교회의 20년 보은 여정이 최근 미국 워싱턴DC 일대에서 해외 방문 여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이어온 민간 외교의 헌신은 미국 땅에 새겨진 한국전쟁의 의미를 잊혀진 전쟁에서 ‘기억되는 역사’로 바꿔놓았다. 새에덴교회가 주최한 ‘한국전 참전용사 및 가족 초청 보은 행사’는 지난달 5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레스턴의 JW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렸다.

올해로 20년째 맞이한 이번 행사는 이미 아흔이 넘은 참전용사들의 건강 상태를 고려했다. 현장에는 미국 한국전참전용사회(KWVA) 회장을 지낸 폴 헨리 커닝햄(96) 박사와 장진호 전투의 영웅 글렌 A 갈테리(97) 목사 등 한·미 정·관계 인사를 포함해 300여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이날 행사의 백미는 한국 어린이들이 참전용사들에게 직접 전한 감사의 인사였다. 알록달록 한복을 차려입은 어린이들이 무대에 올라 유창한 영어로 “할아버지들의 용기 덕분에 우리가 평화로운 세상에서 꿈을 펼친다”고 외치자 노병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소강석 목사는 연단에서 내려와 참전용사들을 향해 한국식 큰절을 올리며 최고의 경의를 표했다. 참전용사 제임스 론 트웬티(90)씨는 “전쟁 직후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잊혀진 것 같았지만 한국교회와 국민이 끊임없이 기억하고 예우해 주어 깊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스무 살에 경기도 김포와 서울 영등포 레이더 기지에서 근무했던 커닝햄 박사는 모든 항공기를 감시하고 B-29 폭격기의 경로를 추적했던 긴박한 임무를 떠올렸다. 그는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레이더 화면 앞을 지켰던 976일의 세월에 대해 “최전방의 전우들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소임이었다”고 회고했다.

몇 해 전 손자와 함께 울창한 숲으로 변한 현장을 다시 찾았던 순간을 떠올린 그는 “눈부시게 발전한 한국을 보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가장 큰 보람이자 보상”이라고 말했다.

인천상륙작전과 장진호 전투 등에 참여해 최악의 사선을 뚫고 살아남은 갈테리 목사의 고백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중공군의 포위망 속에서 분대원 13명 중 단둘만 살아남아 생환했던 그는 자신이 사살한 중공군 장교의 주머니에서 나온 단란한 가족사진을 보며 평생 극심한 전쟁 트라우마와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새벽녘 무릎을 꿇고 부르짖었던 기도를 통해 영적 치유를 경험한 후 목회자가 됐다. 이후 카리브해와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오지 마을에서 주민들과 똑같이 먹고 자며 10년간 복음을 전한 그의 삶은 전쟁의 상흔을 인류애로 승화시킨 증거였다. 97세의 나이에도 호스피스 사역을 이어가는 그는 영원한 현역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참전용사들의 헌신은 유가족의 삶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청천강 후퇴 작전 중 부상병을 돌보다 포로가 돼 끝내 유해조차 돌아오지 못한 윌리엄 찰스 브래들리 병장의 조카 로빈 피아신(70)씨는 외삼촌을 향한 그리움과 감사의 고백을 털어놓았다. 그는 “미국 정부가 삼촌을 온전히 기억해 주기도 전에 한국교회가 먼저 외삼촌의 사진을 띄우고 이름을 불러주며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보은의 여정 둘째 날은 워싱턴DC 중심부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진행됐다. 판초 우의를 입고 묵묵히 행군하는 19명의 노병 동상과 반사벽에 비친 38선의 상징 아래서 새에덴교회 성도들과 한·미 군 관계자 100여명이 모여 헌화식을 거행했다.

화강암 벽면에 새겨진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문구 앞에서 참전용사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추모 기도가 올려졌다. 이 자리에는 장진호 전투에서 적의 수류탄을 온몸으로 막아 소대원들을 구하고 전사해 미국 최고 훈장을 받은 로버트 D 림 소위의 조카 루앤 샤크 여사가 유가족 대표로 참석했다. 새에덴교회는 한국전쟁참전용사기념재단(KWVMF)에 1만 달러(약 1600만원)의 기부금을 전달했다.

소 목사는 “20년째가 되니 비로소 참전용사들이 흘린 피의 무게와 진정한 감사의 의미가 보인다”며 “노병들의 고령화로 대미 초청 행사는 이로써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지만, 영웅들을 향한 한국교회의 기억과 예우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헌신에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지난달 경기도 용인 새에덴교회에서 열린 보훈음악회 후 참석자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모습. 교회 제공

참전용사 제복을 입은 노병들이 느릿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한복을 입고 태극기를 흔드는 교회학교 학생들의 환호성이 커졌다.

지난달 21일 경기도 용인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가 주최한 6·25 참전용사 초청 보훈 음악회에는 6·25전쟁에 참전했던 역사의 증인 200여명이 참석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젊음을 바친 이들을 위해 교인들은 “감사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라고 인사하며 환대했다.

환영 물결은 음악회가 진행된 프라미스홀로도 이어졌다. 참전용사들이 예배당으로 들어오자 예배당에 미리 와 있던 교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태극기를 흔들며 뜨겁게 환영했다.

이날 음악회는 새에덴교회의 참전용사 보훈 행사 20주년을 기념하며 긴 시간 이어온 민간 보훈 외교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음악회엔 교인을 비롯해 정부와 국회, 지방자치단체 관계자 등 4000여명이 참석했다. 올해로 성년이 된 새에덴교회의 보훈 행사는 규모를 줄이더라도 참전용사가 단 한 명이라도 살아있는 날까지 이어갈 예정이다.

서귀섭(94) 6·25참전유공자회 용인지회장은 참전용사를 대표해 인사했다. 서 회장은 “해마다 참전용사를 위한 위로 행사를 열어 주시는 새에덴교회에 깊이 감사한다”면서 “우리는 젊음을 바쳐 공산주의와 싸웠고 그 위에 번영하는 자유 대한민국이 세워졌단 사실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칸타타 공연 전 소 목사와 군 장성 출신 김종대 이철휘 서정열 장로가 단상에 올라 참전용사들에게 각각 큰절과 거수경례를 하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날 행사는 빛의 연대기가 무대에 오르면서 한층 무르익었다.

칸타타 빛의 연대기 작사와 대본을 맡은 소 목사는 “선교 140주년을 맞아 제작한 역작인 빛의 연대기를 이번에 참전용사 보훈음악회를 위해 재편곡했다”면서 “민족의 아픔과 한국교회 선교의 역사를 시와 음악으로 담아냈다”고 말했다.

빛의 연대기는 ‘빛의 나라’ ‘평양 대부흥, 빛의 엑소더스’ ‘평화의 꽃으로 피어나소서’ ‘구국의 눈물, 생명의 강물 되어’ ‘빛의 연대기’ 등 다섯 곡으로 구성됐다. 이 곡들은 1885년 선교사 입국부터 3·1운동과 6·25전쟁 등 여러 역사의 순간을 묘사하면서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들에 감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워싱턴=김아영 기자, 용인=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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