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익숙한데? 국중박에 걸린 수백 년 전 고기 잔치
전갑남 2026. 7. 8. 15:27
세계가 사랑한 'K-푸드'의 뿌리를 만나다... 국립중앙박물관 <우리들의 밥상> 특별전 관람기
또 고려시대 청자 매병에 꿀을 담아 운반했다는 대나무 목간은 인공 조미료가 없던 시절에도 선조들은 자연이 준 귀한 단맛과 전통 양념으로 맛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섬세하게 고민 했는지를 보여주었다.
[전갑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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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기획전 《우리들의 밥상》. 1부 '삶과 함께 한 우리 밥상'과 2부 '자연이 빚은 우리 밥상'으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
| ⓒ 전갑남 |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되었다. 이른바 'K-컬처'가 그렇다. 우리 문화는 이제 세계 문화의 당당한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그 중심에는 'K-푸드'가 있다. 맛과 영양을 고루 갖춘 한식은 이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발효의 지혜를 담아낸 우리 고유의 식문화는 이제 독창적인 문화 콘텐츠로 새롭게 주목 받는다.
해외에서 사랑받는 'K-푸드'의 뿌리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지난 4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1일 막을 올린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은 삼천 년을 이어온 우리 식 문화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주는 전시였다. 개막 기념 무료 관람(지난 5일까지) 덕분인지 전시장에는 우리 문화의 깊이를 느끼려는 관람객들로 발길이 길게 이어졌다.
한 상 차림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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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천 년을 이어온 '한 톨': 선사 시대 유적지에서 발굴된 탄화미(불에 탄 쌀알) 유물이다. |
| ⓒ 전갑남 |
전시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청동기 시대의 탄화미(불탄 볍씨)였다. 숯처럼 검게 변한 작은 쌀알은 우리가 매일 먹는 밥 한 그릇이 삼천 년 전 선조들의 삶과 땀에서 비롯되었음을 말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이어 만난 백제 무령왕릉 출토 청동 그릇과 우리 고유의 쇠 수저는 한식 상차림의 독창성을 보여주었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사용하며 밥과 국, 반찬을 한 상에 차려 먹는 한국의 식 문화가 이미 오래 전부터 자리를 잡았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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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고려·조선 시대를 거치며 다채롭게 발전해 온 청동 및 놋수저 유물들. 조선의 독특한 수저 문화를 신기해한 박지원의 <열하일기> 구절이 담겨 있다. |
| ⓒ 전갑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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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 중 '새참'. 들판에 둥글게 모여 앉아 밥과 숭늉을 나누어 먹는 조선 시대 서민들의 따뜻하고 활기찬 일상을 담고 있다. |
| ⓒ 전갑남 |
조선 시대로 들어서자 전시는 한층 정겨워졌다. 단원 김홍도의 보물 <새참> 진품 앞에서는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들판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사람들과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 곁을 맴도는 개 모습에서 소박한 밥상 공동체의 온기가 전해졌다.
발효의 시간
양념치킨과 떡볶이처럼 달콤하고 매콤한 맛도 매력이지만, 한식의 진정한 힘은 오랜 세월 자연과 사람이 함께 빚어낸 발효 문화에 있다. 이를 보여주듯 발효를 다룬 전시에서는 3~5세기 삼국시대의 탄화 콩 덩어리를 만날 수 있었다. 오늘날 된장과 간장, 고추장의 바탕이 된 메주의 가장 오래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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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장(醬) 문화의 기원을 보여주는 오곡 중 하나인 콩 전시. 새끼줄에 묶인 전통 메주. |
| ⓒ 전갑남 |
또 고려시대 청자 매병에 꿀을 담아 운반했다는 대나무 목간은 인공 조미료가 없던 시절에도 선조들은 자연이 준 귀한 단맛과 전통 양념으로 맛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섬세하게 고민 했는지를 보여주었다.
풍속화 속 불판이 전하는 어울림
이번 전시에서 가장 오래 시선이 머문 작품은 19세기 화가 성협의 풍속화 <고기 굽기>였다. 오늘날 'K-바비큐'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문화가 되었다. 외국인들은 불판을 가운데 두고 직접 고기를 굽고, 상추에 쌈을 싸 먹는 문화를 신기해 하며 즐긴다. 그런데 성협의 그림 속에도 그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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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협이 그린 풍속화 속 야외 고기잔치. 화로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으며 술과 풍류를 즐기던 전통 식단체 문화 '난로회(煖爐會)'의 현장이다. |
| ⓒ 전갑남 |
번철(넓은 무쇠 불판)을 가운데 두고 선비들이 둘러앉아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는 모습, 젓가락을 든 채 불판을 바라보는 표정은 오늘날 삼겹살집 풍경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함께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는 즐거움이 수백 년의 시간을 지나 오늘날 'K-푸드'의 매력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 풍경을 바라보니 자연스레 내가 사는 강화도가 떠올랐다. 이어 조선 시대 김치 조리법을 살피면서는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강화 순무김치의 역사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 허균의 음식책 <도문대작>을 볼 때는 갯벌과 비옥한 토양이 길러낸 강화의 풍성한 먹거리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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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후기 고조리서 <수문사설>에 기록된 밴댕이회 시식법을 일러스트와 영상으로 재현한 미디어 아트 코너. 강화도 밴댕이의 역사를 보는 듯했다. |
| ⓒ 전갑남 |
또 왕실의 외규장각이 자리했던 강화의 역사를 떠올리니, 화려함보다 절제를 담은 정조의 7첩 반상은 왕실을 묵묵히 뒷받침했던 강화 사람들의 삶까지 함께 생각하게 했다.
식탁 위의 위대한 유산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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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수근 화백의 <도마 위의 굴비>(1952년). 특유의 거친 질감으로 나무 도마와 식칼, 조기 두 마리를 소박하게 묘사하여 옛 시절의 정서와 향수를 자극한다. |
| ⓒ 전갑남 |
전시 끝자락은 박수근 화백의 <도마 위의 굴비>를 비롯한 근현대 작품과 감각적인 디지털 영상이 장식하고 있었다. 어려운 시대에도 가족을 위해 차려낸 한 끼의 밥상이 오늘날 세계인이 사랑하는 한식 문화로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번 전시는 우리의 삶과 자연이 담긴 밥상이 걸어온 긴 여정을 보여주었다. 매일 마주하는 한 끼 식사의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바라보며, 'K-푸드'의 깊은 뿌리를 되짚어보는 뜻 깊은 계기가 되었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박물관 시선이 유물의 역사적 가치와 원형을 보여주는 데 조금 치우쳐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통의 뿌리를 충실히 보여준 만큼, 오늘날 한국의 음식 문화가 세계 곳곳에서 어떻게 새롭게 해석되고 있는지도 함께 조명했다면 더욱 입체적인 전시가 되었을 것이다.
박물관을 나서니 토요일 야간 개장으로 거울못 주변에 은은한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삼천 년의 시간을 건너온 우리들의 밥상도 그렇게 오늘의 저녁을 조용히 밝히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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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형적인 조선 시대의 기본 반상 차림(독상)을 입체적으로 재현한 모형. 소박한 우리들의 밥상을 보드는 듯하다. |
| ⓒ 전갑남 |
문득 지난해 가을, 땀 흘려 배추를 심고 정성스레 김치냉장고를 채우던 날이 떠올랐다. 우리 집 묵은 김장김치 한 포기에도 수천 년을 이어온 발효의 시간이 켜켜이 스며 있었던 것이다. 매일 밥상을 차리고 비우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리들 살림살이가 배어 나오고, 우리의 이야기는 그렇게 식탁 위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유물들은 유리 진열장 안에 머물러 있지만, 그 오랜 밥상의 역사는 오늘도 우리 삶 속에서 따스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전시 정보]
- 기간 : 2026년 7월 1일 ~ 10월 25일
- 시간 : 오전 9시 30분 ~ 오후 5시 30분 (수,토 오후 9시까지)
-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2
- 관람료: 성인(5000원), 어린이 청소년(3000원). 65세 이상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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