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위기가 띄운 SMR…한·미·일, 원전 공급망 협력각서 체결

한·미·일 외교장관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나 소형모듈원자로(SMR) 배치에 관한 협력각서(MOC)에 서명했다. 중동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고조되며 에너지 안보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그간 북핵 대응과 인도·태평양 역내 안보 공조 등에 무게를 뒀던 한·미·일 협력이 원전 공급망을 묶는 실질적인 사업 협력으로 확장했다는 의미가 있다.
외교부는 8일 조현 외교부 장관과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대신이 전날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서 SMR 협력각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3국 외교장관 간 회동은 지난해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이후 9개월 만으로, 올해 들어선 처음이다.
3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을 시작으로 제3국에 SMR 배치를 가속화하기 위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외교부는 이번 각서가 “3국 안보에 있어 상호 이익을 증진하는 한편 협력 대상국들의 에너지 안보 상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기반을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각서의 핵심은 한·미·일 기업들이 팀을 이뤄 제3국 SMR 사업에 공동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3국은 표준화된 SMR 노형을 활용해 원자로를 짓는 사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원전마다 설계와 계약을 새로 짜는 대신 표준 모델을 적용해 비용과 시간을 줄이겠단 취지다. 또 3국 기업 간 컨소시엄 구성, 수출대상국의 사업 자금 조달 및 역량 강화, 기술·연료·장비·서비스 지원도 협력 범위에 포함됐다.

이번 합의는 중동전쟁으로 에너지 안보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오히려 탄력을 받아 성사됐다. 그간 한·미·일 협력은 자유민주주의 등 공유하는 가치 수호 측면에서 공조를 약속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원전 수출과 연료·장비·서비스를 묶은 실질적 사업형 협력으로 진전된 게 특징이다. 한·미 및 미·일 등 양자 차원에서 주로 논의 돼 온 SMR 협력 문제가 3국 협력으로 제도화한 셈이다.
관련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그동안 한·미·일 간 SMR 협력은 필요성을 논의하는 이론적 차원에 머물렀지만, 호르무즈 해협 긴장 고조를 계기로 에너지 안보 확보 차원의 관심이 커지면서 구체적 협력 사업을 발굴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3국 간 조율된 협력이 “한·미·일 기업들로 하여금 역내 협력대상국들의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보다 경쟁력 있는 대안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새로운 원자로 기술 상용화 과정에서 “최고 수준의 핵안전, 핵안보, 비확산 기준 준수를 뒷받침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이처럼 SMR 협력을 계기로 비확산 의지를 다시 부각한 건 한국이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추진하는 상황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편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선 3국 장관이 “북한의 불법 사이버 활동 대응을 포함, 대북정책 관련 긴밀한 공조를 유지해” 나가기로 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또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견지하는 가운데 대화와 외교를 통한 한반도 평화·안정 유지 노력을 지속하기로 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다만 비핵화 표현은 각기 달랐다. 한국 외교부가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내세운 반면 일본 외무성은 ‘한반도’란 표현 대신 대상을 북한으로 특정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란 표현을 사용했다. 미 국무부의 회의 결과 발표는 비핵화와 관련한 별도의 내용은 담지 않은 채 SMR 협력각서 체결과 핵안전·핵안보·비확산 기준에 초점을 뒀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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