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경의 창]'리센느 원이' 사투리 논란이 남긴 과제

박충훈 2026. 7. 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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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와 일베식 표현 혼동했다" 논란
단정 어려운 사안이나 문제의식은 유효
일상 속 '극우 혐오 표현' 되돌아볼 계기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유튜브 채널 캡처

사투리 한마디가 온라인을 뒤흔들었다. 발단은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연출한 김현지 PD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이었다. 걸그룹 리센느 멤버이자 경상도 거제 출신인 원이는 최근 공개된 유튜브 영상에서 촬영 중이던 PD가 던진 "무섭노"라는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김현지 PD는 영상 속 원이와 PD가 경상도 사투리를 일베식 표현과 혼동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다. '~노'는 경상도 사투리에서 흔히 쓰이는 종결어미지만 극우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서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말끝으로 오래 쓰여왔다. 이를 두고 네티즌 간 설전이 일어났고 조국, 이준석 등 정치권 인사들까지 가세하면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하지만 원이의 말투를 곧바로 일베식 표현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거제에서 나고 자라며 자연스레 몸에 밴 사투리였을 수도, 인터넷이나 동년배 간 소통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물들었을 수도, 그저 PD가 던진 말을 무심코 따라 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부디 아니길 바라지만) 평소 즐겨 쓰던 표현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이 논란으로 소환된 '국립국어원'마저 "'~노'의 용법은 학자 따라 의견이 달라 단정하기 어렵다"고 입장을 밝혔다. 여러 갈래 가능성 앞에서 김 PD는 유독 두 번째 가능성 "자기도 모르게 물들었다"에만 무게를 실었다. 언어는 그것이 놓인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하는데 자신의 언어 경험만으로 원이의 발언을 재단한 셈이니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고 이 논란을 한때의 해프닝으로 흘려보내서도 안 된다. 단정은 성급했지만 문제의식만큼은 유효하다. 김 PD는 "혐오 표현이 놀이가 되다 못해 보통 사람들이 쓰는 언어의 원형을 오염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일베는 멀쩡한 단어의 뜻을 비틀어 바꾸는 데 능하다. '민주화'라는 단어를 '집단의 응징'이라는 조롱 섞인 표현으로 재창조한 것이 대표적이다. 과거 한 연예인은 그 뜻도 모른 채 무심코 '민주화'라는 말을 썼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처음엔 특정 커뮤니티만의 은어였던 말이 온라인을 떠돌며 점점 출처가 흐려지고 어느새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어처럼 자리 잡는다.

이념의 양극화를 연구해온 미국 사회학자 신시아 밀러 이드리스는 저서 '극우는 어디서 태어나는가'에서 극단주의는 정치 구호보다 유행어와 밈, 놀이 같은 온라인 문화 속으로 스며들어 사람들을 끌어들인다고 설명한다. 웃자고 던진 말 한마디, 친구끼리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는 유행어가 어느새 특정 세계관을 퍼뜨리는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논란이 뜨거워질수록 정작 신이 나는 건 극우 커뮤니티다. 사람들이 사투리인지, 일베식 표현인지를 두고 서로 의심하고 경멸하며 갈라치기 하는 사이, 그들이 만들어낸 말은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 스며든다. 그들 입장에서 이보다 성공적인 결과는 없다. 이제는 우리가 쓰는 말의 출처를 한 번쯤 물어야 할 때다. 누군가를 조롱하거나 혐오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은 아닌지,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하는 그 순간 나는 대체 무엇을 함께 퍼뜨리고 있는 것인지 말이다.

박충훈 콘텐츠편집2팀장 parkjov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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