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굴에 들어가 상처뿐인 상태로 버려진’ 이병태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데스크 2026. 7. 8. 07:0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병태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오른쪽)ⓒ뉴시스

“이병태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이 묻네요. ‘5‧18은 성역입니까’ 답해드립니다. ‘네 맞습니다. 민주주의의 성역입니다.’”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일 자신의 페이스북과 X에 올린 글이라고 소개됐다. 이 부위원장(이하 당시)은 2일과 4일 페이스북에 배제고 야구부의 스타벅스 응원구호 논란과 관련 ”학생들의 구호가 아니라 그들의 처벌이 광주민주화운동의 조롱과 폄훼라고 믿는다“고 지적했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쳐도 허용돼야 한다. 그게 기본권이다. 소수의 미친 소리는 다수의 진리에 의해 정화된다.”

민주주의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

‘김일성 만세’는 아무래도 거북하다. ‘소수의 미친 소리’도 그렇다. ‘스타벅스 구호’가 ‘소수의 미친 소리’에 이어지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본권’이 그런 의미라는 지적은 옳다. 선수들의 구호에 대해, 비난할 수는 있다. 그것도 기본권의 속한다. 이같은 인식에도 불구하고 어린 학생들의 응원구호에 대해 대역죄인 다루듯 하는 어른들의 황당한 흥분과 분노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최 의원은 당당히 ‘성역’이라고 했다. 성역은 ‘신성성(神聖性)’을 전제로 한다. 신성불가침의 영역을 성역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민주주의에서 신성성은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성역도 있을 수가 없다. 그러한 인식의 바탕위에서만 성립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다. 물론 광주민주화운동 유족들과 광주시민이 분노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로, 남이 이렇다 저렇다 말할 바 아니다.

그러나 청와대와 민주당이 아이들을 상대로 온갖 비난과 위협을 가하는 것은 다르다. 고교 야구 경기 중 벌어진 논란을 정치의 장에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구호를 외치기야 했겠는가. 그런데 청와대와 민주당이 이를 정치문제화 함으로써 학생들은 국민적 지탄이라는 소용돌이 속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이 부위원장은 아직 어린티를 못 벗은 고교 야구선수들의 응원구호가 듣기에 거북하거나 분노스럽다고 중징계를 가하고 사회적으로 조리돌림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는 페이스북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장문의 글을 올렸다. 이 기본권의 당위성과 이것이 확립되어 온 역사적 과정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민주당 쪽에서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언급에 대한 비판이 들끓자 6일 다시 영국의 사상가로 ‘유토피아’ 를 저술한 토머스 모어의 이야기를 썼다.

“처형 직전 그(토마스 모어)는 ‘나는 왕의 좋은 종이기 전에, 하나님의 착한 종으로 죽는다’라는 지조 있는 유언을 남겼다. 비록 법치주의와 결합된 시장경제의 순기능을 이해하지는 못했어도 자신이 한 말처럼 ‘이익(목숨과 권력)’ 대신 ‘명예(양심)’을 선택했다.”

배재고 선수 향한 범정권적 총공세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자신의 신조를 굽힐 수 없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곧 삭제한 모양이지만 청와대는 (그러니까 이재명 대통령은) 그냥 넘어가 주지 않았다. 사퇴를 ‘권유’했다고 하는데 그게 ‘통고’였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날 오후 사퇴했다. 규제혁신위원회 부위원장은 총리급으로 임기가 보장된 자리라고 했지만 그 ‘보장’이라는 게 얼마나 허황한 것인지를 다시 확인시켜 준 사례다.

이 부위원장은 지난해 5월 12일 자신의 SNS룰 통해 “이재명 캠프에 조인(Join)한다”고 발표했었다. 그런데 당내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그 바람에 공식 선거대책위원회 인선에서는 제외됐다. 좌파 정치세력 진입이 무산된 것으로 보였지만 정부 출범 후 총리급인 규제개혁위 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당초 대선 캠프 합류 사실을 고지하면서 “호랑이 굴에 들어가 상처뿐인 상태로 버려지더라도 경제적 자유를 위한 마지막 외침을 하겠다”고 하더니 그대로 이뤄졌다.

문자적으로만 보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나 ‘탱크 데이’ 구호는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관계가 없다. 이 경우의 탱크는 무장장갑차량이 아니라 물, 가스, 그림 따위를 넣어두는 통이다. 그런데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정없이 매도해 버린 바람에 스타벅스 커피를 담는 텀블러가 광주에 진입한 계엄군의 탱크로 둔갑했다. 다국적 커피기업 스타벅스가 한국의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어느 쪽으로든 특별한 편향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런데 대통령의 한 마디로 ‘스타벅스=5.18계엄군 탱크’의 등식이 형성되고 광주지역 주민들의 인식 속에 고정되어 버린 것이다.

배재고 야구선수들도 그 점에서는 일종의 피해자일 수 있다. 5·18은 1980년의 일이다. 이미 46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말 그대로 역사가 됐다. 10대의 고등학생들로서는 듣고 읽어서 알고 있을 뿐 체감할 수는 없는 아득한 과거의 사건이다. 그러잖아도 청소년들에게 익숙할 ‘스타벅스’가 특히 광주, 그리고 호남지역에서 미움의 대상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구호가 생겨난 게 아닐까?

서울 배재고 야구부원들이 6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에 참배하고 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이미지 구성에다 해석까지 독점하나

청룡기 전국고교 야구선수권 대회의 배재고 대 광주일고 경기의 7회전이 진행되던 시점이었다고 한다. 배재고가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선수들은 이제까지 해 오던 구호를, 상대에 맞춰 약간 변형해 외쳤다. “가야지 가야지 안타치고 가야지” “가야지 가야지 이기고 가야지”에 ‘스타벅스’를 끼워넣은 것이다. 사회적 분위기로 미루어 광주일고 선수들을 약 올리고 기를 꺾기에는 스타벅스 만한 게 없다고 판단했을 법하지 않은가?

그런데 청와대‧정부‧여당의 모모한 인사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이미지를 가지고 배재고 학생들을 공격했을 뿐 아니라 그 아이들의 장래를 심각하게 뒤틀어 놓을 수 있는 사회적 파장을 유도한 셈이 됐다. 5·18과 스타벅스 사이에는, 일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일그러진 이미지 외엔 접점이 없다. 왜 비난하고 징계하느냐고 하면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성인 자신들이 재구성해 놓은 이미지뿐이다.

정권 측은 스타벅스의 상업적 이벤트에 정치적 의미를 덧씌워 재맥락화(recontextualization)했다. 그리고 그걸 꼬투리 삼아 학생들을 공격한 것이다. 이미지의 재구성에 이어 해석에서까지 독점권을 행사한 셈이다. 권력이 의미를 재구성하고 해석까지 독점하면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는 형해화하고 만다. 거기에다 개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7일부터 발효됐다. 손해액 5배까지의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핵심 개정사항이다. 언론의 혹한이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정보 유통 주체를 대상으로 한다지만 개인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대중 매체의 경우 모든 기사가 감시의 대상이 된다. 언론사는 자체 생산 기사뿐만 아니라 외부 필진의 글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집권세력의 비위를 거스를 수 있는 내용이라면 게재를 기피할 가능성이 높다. ‘수지맞는 장사’가 아닌 언론사업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은 아킬레스건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집권세력의 아주 교활한 언론통제술이 막 빛을 발하려는 시점이다.

그렇지만 누가 알겠는가. 집권세력이 닦고 있는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를.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