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식품 자리 차지한 냄비… 직원들 “오늘 마지막 출근이지?”
주말에도 한산… 자체 브랜드 가득
점포 철수… “본사는 기다리라고”
“한 푼도 못 받아” 피해규모 클 듯

지난 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홈플러스 영등포점. 대단지 아파트가 인접해 평소 같으면 주말을 맞아 장 보는 쇼핑객들로 분주했겠지만 회생절차 중단으로 파산 가능성이 커진 매장 안에는 묵직한 적막감만 흐르고 있었다. 총 839대 수용 가능한 주차장에는 182대(21.7%)만 주차돼 있었고, 진열대 곳곳은 텅 비어 있었다.
지하 1층 식품 칸에는 냉장 진열대에 계란과 두부 등 신선식품 대신 도마와 냄비 등 주방도구만 잔뜩 놓여있었다. 해산물 코너의 수족관에서는 물고기 한 마리를 찾아볼 수 없었다. 육류 칸 냉장 진열대에는 가공된 수입고기만 놓여 있었다. 매장 내 다른 진열대에도 대부분 홈플러스 자체 브랜드인 ‘심플러스 제품’으로 채워져 있었다. 10곳 계산대 가운데 한 곳에서만 직원이 서 있었다.
일부 직원은 체념한 듯한 모습이었다. 진열대를 정리하는 한 매장 직원에게 관리자가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지?”라며 인사를 건네는 모습도 보였다. 이곳에서 만난 직원 A씨는 국민일보에 “우리 직장이 어떻게 되는 건지 알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우리도 뉴스를 보고 아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매장에 입점한 점포들은 이미 철수했거나 철수를 준비하고 있다. 가전·잡화 점포가 위치한 1층은 전체 매장 공간의 3분의 1가량이 비어 있었다. 1층 한구석에 각종 브랜드 의류 할인매장을 꾸려놓기는 했지만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식당가와 의류 점포가 입점한 2층에선 매장 한 가운데 점포 2곳이 이미 텅 비어 있었다. 같은 층 한 점포는 정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한 입점업체 관계자는 “(홈플러스) 본사에서도 기다리라는 말뿐”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홈플러스 파산이 현실화할 경우 납품업체나 입점 점주 등 연계된 피해도 연쇄적으로 커질 거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3월 홈플러스 회생 신청 직전까지 판매된 약 4000억원 규모의 단기 채권을 매입한 개인투자자들은 투자금 전액을 회수하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이의환 홈플러스 물품구매전단채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홈플러스가) 투자 채권에 대해 전액 변제를 약속했지만 피해자들은 아직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며 “홈플러스가 메리츠금융그룹으로부터 DIP(긴급운영자금) 대출을 받더라도 개인투자자들은 최후순위 채권자라 돈을 받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홈플러스에 물품을 납품하고 대금을 받지 못한 중·소상공인이나 농·어민의 피해는 정확한 규모조차 추산되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납품업체 150곳에 미납된 납품 대금만 지난달 기준 평균 7억7400만원이다. 농수산물을 납품하고 아직 대금을 받지 못한 지역 농가 피해까지 고려하면 피해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홈플러스 협력업체는 지난 4월 기준 5246곳이다.
대규모 실업 가능성이 커지자 노동계도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민주노총 마트산업노조는 오는 15일 전 조합원이 참여하는 대규모 상경 투쟁을 예고했다. 최철한 마트산업노조 홈플러스지부 사무국장은 6일 “MBK파트너스와 메리츠 두 기업에만 맡길 게 아니라 정부가 개입해 연 10~14%에 달하는 채권 이자 등을 경감·면제하도록 지원하고 홈플러스도 경영 정상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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