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서울을 생각하다]서울의 먹자골목은 왜 역사 속으로 퇴장하는가?
외국인 밀집 지역도 축소 '획일화'에 희생
외형적 개발 넘어 상생의 경제 정책 필요
우리의 후손 '서울의 재미' 느낄 수 있어야

매년 봄 두 달 남짓 한국에 다녀간다. 거점은 서울이다. 약 10개월마다 방문하는 셈이라 올 때마다 변화가 눈에 띈다. 변화의 규모는 대규모 재개발 지역 철거 작업처럼 거대하기도 하고, 단골 카페 폐업처럼 소소하기도 하다. 세계적인 대도시들도 늘 변하고 있으니 서울만 그런 건 아니다. 이번에 와서도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내 눈에 가장 크게 보이는 건 계속 진행되는 재개발과 관련이 깊다. 두 개를 꼽을 수 있는데 하나는 먹자골목의 후퇴, 또 하나는 외국인 밀집 지역의 축소다. 둘 다 도로, 건물, 광장 등 사람이 조성한 공간과 관계가 있는데, 몇 년 전부터 이미 보이던 변화라 새삼스럽지는 않다. 그런데 최근 그 규모와 속도가 가속화돼서 그런지 큰 변화로 느껴진다.
먼저 먹자골목이다. 먹자골목은 서울의 대표적 도시 풍경 중 하나로, 날씨가 좋은 봄가을에 가장 붐비지만, 다른 계절에도 늘 사람이 많다. 시장과의 비교가 흥미롭다. 먹자골목은 곳곳에 워낙 많아서 남대문시장이나 광장시장 같은 상징성 높은 시장과는 다르다. 관광객들보다는 주로 인근 지역 유동 인구들이 찾는다. 하지만 먹자골목 인기가 높아질수록 시장 분위기에도 영향을 준다. 2010년대 물건을 파는 대신 먹자골목 분위기로 변신한 시장들이 침체에서 벗어나 활기를 되찾기도 했다.
먹자골목 구조는 최근 서울의 새로운 개발 방식과는 크게 다르다. 먹자골목은 비교적 작은 필지에 상업 건물이 자발적으로 형성됐고 일부는 예전 주택을 상업 용도로 개조한 것이다. 반면 서울에서 지은 새로운 상업 시설은 큰 대지에 규모가 크고 매우 계획적이다. 이것은 단순한 디자인의 차이라기보다 작은 규모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상업 건물이 갖는 경제적 한계를 보여 준다. 즉, 작은 필지에 작은 상업 건물을 배치하는 것보다 사무실 또는 주거 용도를 포함해 다목적 대형 건물을 짓는 쪽이 사업성 측면으로 볼 때 더 유리하다는 걸 뜻한다.

이런 추세를 잘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는 2000년대 재개발한 종로1가다. 교보빌딩에서 종각역까지, 큰길 뒤로 이어지던 피맛골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실 거다. 작은 필지에 여러 시대 지은 건물들이 촘촘히 이어진 먹자골목으로 유명했는데, 지금은 재개발로 다 철거되고 대형 상업 건물들만 들어섰다. 워낙 피맛골이 유명했고 없어진 걸 아쉬워하는 시민들이 많아서 새로운 건물들 사이로 골목을 흉내 낸 상가 통로를 만들어 피맛골 느낌을 살리려고 했지만, 체인점이 많이 들어오기도 하면서 다양성이 사라졌다. 종로1가 재개발 전후로 서울의 한복판에서 이루어진 대형 공사로 인해 도시 곳곳의 먹자골목은 대거 사라졌다.
그런데 그때로 그친 것 같지 않다. 이번에 와보니 이제 먹자골목은 점점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 같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근처 영천시장은 2010년대 이후 먹자골목으로 변신하면서 활기를 되찾는 듯했는데, 최근 시장 입구에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골목의 일부가 없어졌고, 시장 진입로가 조금 단축됐다. 건대입구역 가까이에도 먹자골목이 두 개 있다. 지하철 2호선 북쪽으로 나란히 이어지는 긴 먹자골목에는 젊은 손님들이 많이 찾아온다. 힙한 분위기보다 먹자골목의 대중성이 역력하다. 지하철역 쪽으로 가면 새로 지은 아파트나 큰 건물이 많지만, 이 골목 양쪽으로는 아직 들어서지 않았다. 재개발 계획 여부나 진행 상황 같은 건 잘 모르지만 서울의 다른 지역의 예를 떠올려볼 때 재개발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골목을 걸으며 서울의 가까운 미래에 먹자골목은 거의 다 사라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하철 2호선 남쪽으로 이어지는 양꼬치 골목은 북쪽과 달리 2000년대부터 양꼬치를 메인으로, 한국계 중국인 중심으로 형성됐다. 고객층이 다양해지면서 광진구는 이곳을 '광진미식거리'로 지정했다. 낮고 오래된 건물들이 대부분이고, 골목 양쪽의 주택들도 다소 오래된 원룸과 다세대 주택이 많다. 지나가면서 부동산 중개업소에 붙어 있는 재개발 계획 조감도를 보면서 '역시나'했다.
건대 양꼬치 골목을 걸으며 이번 방문에서 느낀 또 하나의 변화가 떠올랐다. 외국인 밀집 상업 지역 축소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한국은 외국인 인구가 늘어나고 있지만, 전국 증가율에 비해 서울의 외국인 증가율은 낮은 편이다. 한국계 중국인, 중국인이 많이 사는 대림동, 구로동, 가리봉동 상가 골목에는 문 닫은 가게가 많아졌고 가리봉시장처럼 공동화가 심한 곳도 많다. 대림동 차이나타운이 비교적 활기를 유지하고 있지만, 상업 핵심 지역에서 벗어나면 역시 문 닫은 가게가 많다.

이에 비해 서울 한복판 창신동 네팔거리나 동대문 근처 몽골타운 같은 외국인 밀집 지역에서는 아직 이런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창신동에서는 네팔거리 말고도 베트남어 간판이 보이고 몽골타운 바로 옆 골목 '광희동 중앙아시아거리'도 건재해서 다양한 외국인들이 많이 다닌다. 오래전부터 유명해져서 이국적인 음식을 즐기러 오는 한국인도 많다. 공교롭게도 이곳들은 작은 필지에 오래된 건물이 많다. 창신동은 2000년대 이후 대규모 재개발 논란이 시작된 뒤로 최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동대문도 사대문 안 다른 오래된 지역처럼 재개발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 두 곳이 재개발된다면, 서울의 도시적 다양성은 크게 훼손될 것이다.
먹자골목과 외국인 밀집 상업 지역 형성에는 경제적 원리가 있다. 임대료가 비교적 저렴하고, 잠재적 고객인 유동 인구가 존재한다. 이런 지역의 거의 모든 가게가 소규모 개인 사업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임대료가 비싸면 창업을 못 하고, 유동 인구가 적으면 매출을 내기 어렵다. 이런 원리는 먹자골목과 외국인 상대 사업장만이 아니라 작은 카페, 공방, 동네책방 등의 다양한 사업 모두에 해당하고, 서울이나 한국 도시뿐만 아니라 세계 많은 도시 모두에 해당한다.
경제 원리는 간단하지만, 해결책은 쉽지 않다. 재개발 압력이 강한 서울은 특히 그렇다. 재개발 이후 먹자골목을 장식물처럼 유지하려 들면 피맛골 같은 상황이 돼버린다. 재개발은 제도적, 정치적 지지를 받고 있어서 막기도 쉽지 않다. 이렇게 진퇴양난인 이 답답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서울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오늘날 남아 있는 서울의 매력을 후손에게 어떻게 물려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먹자골목이 서울의 매력 포인트라는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재개발의 압력 속에서 유지하고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디자인 같은 건축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먹자골목의 활기에 보탬이 되는 경제적 원리를 유지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서울의 매력과 재미를 우리만 즐기지 말고, 후손들에게도 물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로버트 파우저 작가·전 서울대 교수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전 세계가 한국한테 배워야 해"…외국인들 지하철 타고 감탄하는 이유는
- "1인당 1억3000만원 사라진다" 경고…3040도 안심 못 한다는 '이 병' 정체
- "잠깐, 300만닉스가 된다고?"…'SK하닉 경우의 수' 등장
- "항생제도 소용없다"…성관계로 옮기는 '슈퍼 이질균'에 英 비상
- "너만 월급 140만원 더 줄게, 대신"…대기업도 파격 베팅, 보수적인 日까지 들썩
- "어느 대학 갈지 전략 세워줘"…2000억 中 입시 시장 흔드는 AI
- 1500원 아이스크림 먹었다가 '특수절도'…중증 발달장애인 송치 논란
- "믿을 건 고향 친구뿐"…44억 유언 남긴 中 대학생 논란
- "조회수 올리려다 진짜 목숨 걸었다"…고층 아파트서 뛰어내린 인플루언서
- "북한 노동자 안 받아" 러시아 등 돌렸다…몸값 월 300만원까지 껑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