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령산 나무들의 통곡...부산의 중심에서 무슨 일 벌어지고 있나
기후위기와 생태학살로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부정의. 하루하루 현실로 다가오는 생존의 위기 앞에서 과연 다른 세계는 가능할 것인가를 묻는다. 다른 세계는 물론 가능하다고 믿는다. 다만 다른 행성이 아니라 바로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과 아직 푸른 하늘과 바다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나무와 새들, 함께 호흡하는 뭇생명들이 공존하는 세계를 함께 상상하고자 한다. <기자말>
[변정정희 기자]
그것은 장례식이었다. 하얀 끈을 매단 나무들이 줄지어 통곡했다. 옅은 바람이 불 때마다 온 잎을 흔들어 대며 울었다. 붉은 끈을 매단 나무들, 페인트로 점을 찍은 나무들도 같은 운명이었다. 표시된 나무들뿐만이 아니었다. 함께 살고 있는 새와 곤충 같은 작은 동물들도 수풀의 보이지 않은 곳에서 조용히 울었다. 이곳 황령산에서 울지 않는 존재는 단 한 종, 인간뿐인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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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황령산에서 만난 황령산지키기범시민운동본부 이성근 공동운영위원장 |
| ⓒ 변정정희 |
지난 5월 말 한창 초록이 싱그러울 무렵, 황령산을 찾았다. 부산 밖의 이들에게는 낯선 산이다. 이름난 설악산이나 지리산, 한라산처럼 웅장한 자연을 가진 국립공원도 아니고 서울 남산처럼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도 아니다. 해발고도 427m의 황령산은 부산진구, 연제구, 남구, 수영구에 걸친 높지 않은 도시공원이다. 근처 학교들의 교가마다 등장해 정기를 내어주는, 지역 사람들에게 친숙한 산이다. 누군가는 흔한 동네 뒷산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국립공원이 아닌 동네 뒷산은 마구 개발해도 되는 걸까?
"황령산은 원래 독립된 산이 아니에요. 백양산으로, 금정산으로 이어져 있었거든요. 이기대도 황령산의 말단부입니다. 그런데 과도한 도시화 정책에 의해서 잘린 산이 되었어요. 정상에서 보면 중간중간 시가 구역 내에 섬처럼 떠 있는 언덕들이 보여요. 그게 다 황령산에서 뻗어져 나간 지맥이 잘린 흔적이거든요. 산을 밀고 거기를 대신한 것들이 아파트예요. 쫙 포진하고 있죠."
실제로 황령산은 유구한 개발 역사를 갖고 있다. 일제강점기 광산으로 개발해 광물 자원을 채굴했고, 1972년 유원지로 지정해 현재까지 관광 자원으로 개발 시도를 하고 있다. 1995년 온천 단지를 짓는다며 동남쪽 부분을 약 12만㎡ 깎아냈다. 당시 시민사회는 반발했고, 싸움 끝에 전면 백지화했다. 2000년대 다시 개발 바람이 불었다. 이번에는 실내 스키장이었다. 2007년 '스노우캐슬'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개장했지만, 운영난으로 1년 만에 폐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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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령산 일대 난개발의 흔적들. 왼쪽 황금색 건물이 개발 실패한 실내 스키장 |
| ⓒ 변정정희 |
케이블카가 생기면 정말 '랜드마크'가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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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령산 정상에서 바라본 하나둘 불이 켜지고 있는 부산 시내 전경. |
| ⓒ 변정정희 |
"랜드마크가 맨날 바뀌어요. 어느 시절에는 용두산공원이었다가, 어느 시절에는 해운대 엘시티였다가 그런 랜드마크가 어디 있어요? 허구한 날 랜드마크 타령하다가 값이 내려가고 시들해지면 또 다른 랜드마크를 추가로 만들어낼 거 아닙니까? 반짝 개장 효과는 있겠지만, 결국은 또 다른 흉물이 될 거거든요."
전국의 관광용 케이블카는 총 41개. 지자체들은 지역 관광을 활성화하겠다며 우후죽순 케이블카를 설치했지만, 대다수 적자 운영 중이다. 이미 너무 많은 케이블카 설치로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 부산은 현재 송도 해상케이블카와 금강공원 케이블카를 운영 중이다. 노후화된 금강공원 케이블카는 경제성이 낮다며 현대화 계획조차 사실상 무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황령산 케이블카가 흑자를 낼 수 있을까.
최근 부산은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도시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올해 1분기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02만 명이다. 얼마 전 열린 케이팝 가수 BTS의 공연은 그 열기를 더욱 뜨겁게 지폈다. 그들이 부산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나 있는 케이블카를 타자고 부산까지 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관광을 통한 경제 활성화가 필요하다면, 부산만의 고유한 생태와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황령산을 남겨두는 게 낫지 않을까?
법과 제도를 묻어버린 거대한 장례식장에서
황령산은 울창했다. 숲에는 곰솔과 리기다소나무, 사방오리나무, 편백, 사람주나무, 벚나무, 참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사스레피나무, 꽝꽝나무, 광나무처럼 남부 지역에서 자생하는 나무도 있었다. 한때 황폐했던 산은 자생한 나무들과 인공 조림한 나무들이 서로 경쟁하고 어우러지며 자신만의 초록을 만들어가는 중이었다. 다양한 나무 사이로 물까치가 날아다녔고, 쇠딱따구리는 우아한 깃털을 떨어뜨려 놓았다. 멀리서 희미하게 솔부엉이 소리가 들렸다. 팔랑거리는 나비를 비롯해 이름 모를 곤충들을 만났고, 땅을 파고 간 두더지의 흔적을 마주했다. 이틀에 걸친 짧은 산행이었지만, 경이로운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지난 2024 부산생물다양성탐사 조사에 따르면 황령산에는 식물 399종, 곤충은 153종, 조류 29종 등이 살고 있다.
"이 길이 케이블카가 들어설 자리예요."
초록에 취해 잊고 있었다. 이곳이 곧 뿌리뽑히고 잘리고 다져질 자리라는 것을. 그런데 아름다운 산을 그냥 밀어도 되는 걸까? 우리나라는 개발에 앞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한다. 개발 사업이 유발하는 환경영향에 대해 조사, 예측, 평가해 자연훼손과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이다. 평가에서 황령산은 식생보전등급 '4등급'을 받았다. 보전 가치가 매우 낮다는 결과였다. 이에 반발한 시민사회는 공동 재조사를 요구했다. 왜 시민들은 전문가의 평가를 믿지 못했을까? 현 환경영향평가는 개발 주체인 사업자가 비용을 대고 용역 고용자에게 평가를 맡겨 이뤄지고 있다. 사업자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어느 사업자가 점 찍어둔 땅을 개발할 수 없다는 결과를 가지고 올까? 독립성과 객관성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부산시는 공동 조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황령산의 식생을 무시하는 개발 사업이 사람에게는 안전할까? 지난 1985년, 1991년, 1999년, 2000년 산사태로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다. 직접적인 원인은 폭우였지만 그에 앞서 산을 깎아 낸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개발 업체는 케이블카가 공중으로 지나가니 괜찮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공중에 떠서 움직이는 육중한 케이블카를 지탱하려면 이를 버틸 수 있는 구조물을 세워야 한다. 얼마나 깊고 넓게 땅을 파야 할까? 거대한 철탑 여러 개를 세우기 위해 흙을 파헤치고 콘크리트를 쏟아내는 동안 다시 대형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게다가 2단계 케이블카가 지나갈 자리에는 이미 고압 송전선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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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령산 케이블카 개발 사업을 위해 표식을 단 나무 |
| ⓒ 변정정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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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령산 케이블카 개발 사업을 위해 표식을 단 나무 |
| ⓒ 변정정희 |
이날은 황령산 개발 사업과 관련한 법원 판결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부산시는 케이블카 공사 구간에 있는 마하사의 전통사찰보존지를 강제수용하면서 법에 명시된 문화체육관광부의 사전 동의 절차를 밟지 않았다. 마하사는 사찰림 토지에 대해 두 번의 소송을 진행했고, 지난 2월 12일 대법원과 지난 5월 14일 부산지방법원은 부산시가 위법했다고 판결했다. 법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사업 진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명으로 가득 찬 황령산에서 다시 만날 우리를 위해
산이 훼손된다는 것은 단순히 나무 몇 천 그루가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수많은 동식물이 사라지고, 결국에는 우리가 디딘 땅이 거대한 무덤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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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월 20일 부산시청 앞에서 열린 시민단체들의 ‘황령산 보전녹지 지정 촉구’ 기자회견 |
| ⓒ 황령산지키기범시민운동본부 |
우리는 부산에 다시 갈 것이다. 낭만적인 바다가 있고, 아름다운 산이 있고, 알록달록한 산복도로의 집과 골목이 있고, 특색있는 음식과 사투리가 있고, 세계적인 스타의 고향이 있고, 반짝이는 야경이 있는 그곳을 사랑하니까. 지금도 충분하지만, 부산에 또 다른 랜드마크가 필요하다면 그것이 황령산이면 좋겠다. 콘크리트로 이뤄진 유원지 황령산이 아닌 도심에서도 부산의 고유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생태보전지구 황령산이면 어떨까? 무수한 개발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빛깔을 찾은 황령산이라니, 멋지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기획 공동진행: (사)세상과함께>,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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