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102화. 책벌레의 하극상
책을 읽고 싶다는 작은 바람, 세상을 바꾸다
책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평생 책에 파묻혀 살고 싶었던 그는 결국 도서관의 사서라는 꿈을 이루었죠. 그런데 꿈을 이룬 그날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너무도 간절한 바람 덕분이었을까요. 그 사람은 다른 세계에 다시 태어납니다. 그것도 이전 세상의 기억을 가진 채로. 다시 태어난 이름은 마인. 가난한 병사의 딸이었습니다. 문제는 그곳이 마인에게 너무나 힘든 세계였다는 것이죠. 무엇보다 책이 너무 귀했습니다. 종이도 귀하고, 잉크도 귀했어요. 책은 평범한 사람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죠.

책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책이 없는 세계에 태어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책벌레의 하극상』은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책을 좋아하던 사람이 어린아이로 다시 태어나, 책이 귀한 세계에서 책을 만들고자 애쓰는 이야기죠. 마인은 대단한 힘을 가진 영웅은 아닙니다. 평범한 집안에 태어났고, 밖에 나가는 일조차 큰일이 될 만큼 몸도 약했죠. 그런 마인이 활동할 수 있는 건, 가족 덕분이에요.
가족은 마인을 걱정하고 돌봅니다. 위험할 때는 어떻게든 지키려 하죠. 마인의 곁에는 이웃과 친구도 있습니다. 혼자 갈 수 없는 곳에 함께 가 주고, 필요한 것을 구하는 일을 도와주며 마인의 이상한 생각을 처음에는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조금씩 받아들이는 친구. 마인이 첫걸음을 내딛는 것은 가족의 사랑과 이웃의 도움, 그리고 친구와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시작된 작은 걸음은 나중에 상인, 장인, 신전 사람들, 귀족들까지 이어지는 더 큰 여정으로 펼쳐집니다.
“책이 없다면 만들면 되지.” 마인은 결심합니다. 종이가 없다면 종이부터, 잉크가 없다면 잉크를, 그리고 글을 읽을 사람을 늘리고 책을 늘리기로 하죠. 처음에는 아주 개인적인 바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바람은 점점 커져서, 종이와 책을 거쳐 여러 사람의 삶과 꿈을 움직이게 되죠. 이 세계에는 마법이 존재합니다. 마법이라면 불꽃을 쏘고 번개를 떨어뜨리는 기술을 생각하기 쉽지만, 이 세계에선 조금 다르죠.
마법은 사람들의 생활과 사회 곳곳에 들어와 있어요. 농사를 지을 때도, 귀족들이 힘을 유지할 때도, 중요한 약속을 지킬 때도 마법이 쓰입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계약 마법이죠. 마인이 생각한 기술이나 요리법은 큰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 세계에는 “이건 내가 처음 만든 생각이에요”라고 보호해 주는 법이 있지만, 마인의 세계에는 그런 제도가 충분하지 않죠. 그래서 계약 마법이 중요해요. 마법적인 계약을 맺으면 약속을 어기기 어렵고, 기술과 요리법도 함부로 빼앗기지 않습니다.
덕분에 마인의 생각은 단순한 아이디어로 끝나지 않아요. 누군가는 그 생각으로 종이를 만들고, 누군가는 새로운 요리를 만들고, 누군가는 장사를 시작하죠. 마인의 발상은 마법과 사람들의 손을 거치며, 조금씩 현실이 되어 갑니다. 마인이 아는 현대 기술은 중세 유럽 같은 세계에서 매우 쓸모가 있죠. 종이만 해도 이 세계에선 동물의 가죽을 이용한 양피지밖에 없습니다. 그 밖에도 비누, 장신구, 요리···마인의 생각은 이 세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하죠. 하지만, 그 생각이 저절로 현실이 되지는 않습니다. 마인이 종이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죠. 재료가 필요합니다. 도구가 필요합니다. 손을 움직여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마인의 이웃 친구 루츠는 말해요. “네가 생각한 건 내가 다 만들겠어.” 루츠는 상인이 되고 싶습니다. 상인이 되어 마을을 떠나 다양한 세계를 보고 싶죠. 마인과 함께 종이를, 잉크를, 그리고 책을 만드는 것은 바로 그런 꿈으로 이어집니다. 루츠만이 아니에요. 마인에게 요리를 배운 사람은 그 요리를 더욱 발전시켜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어내죠. 마인이 책을 만들면서 전해진 여러 이야기를 재미있게 본 사람들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책을 통해 지식을 나누게 되자, 마법을 배우고 쓰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져요. 마인의 꿈은 처음에는 아주 단순했습니다. “책을 읽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꿈은 여러 사람의 꿈과 연결되죠.
누군가는 종이 만드는 일에서 자기 고향을 살릴 가능성을 봅니다. 누군가는 책을 만드는 일에서 새로운 사업을 보죠. 누군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됩니다. 누군가는 그림과 음악을 통해 자기 재능을 발견해요. 누군가는 요리를 발전시키고, 누군가는 장사를 넓히며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 합니다. 마인은 혼자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에요. 마인을 믿고 지켜주는 가족이 있었기에, 마인과 함께 꿈을 꾸고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마인의 바람은 세계를 바꾸는 힘이 됩니다.
『책벌레의 하극상』이 보여 주는 마법은 주문 한마디로 세상을 바꾸는 힘만이 아니에요. 한 사람의 바람이 다른 사람의 꿈과 만나고, 그 꿈들이 이어지며 세계를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드는 힘입니다. 마인은 책을 읽고 싶었어요. 그 작은 바람은 종이를 만들고, 일을 만들고, 사람을 모으고, 새로운 이야기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세계는 조금씩 달라졌죠. 여러분에게도 그런 바람이 있나요. 그 바람은 어쩌면 누군가의 꿈과 만나, 생각보다 더 큰 이야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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