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첫 경력의 장벽, 구직 포기로 이어진다 [신입 구함, 경력 필수⑦]

서지영 2026. 7. 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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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의 ‘경력 있는 신입’ 선호 현상에 노동시장으로 첫 진입하려는 청년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박효상 기자
2022년부터 4년째 취업을 준비 중인 유동준(30)씨는 청년기관에서 모집하는 일경험 프로그램과 취업 지원 프로그램에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모집 인원이 적고 경쟁률이 높아 기회를 얻기 쉽지 않았다. 실패가 반복되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청년들을 지원하는 기관조차 기회를 얻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일반 기업은 얼마나 더 어려울까. 유씨는 “자괴감도 크고 무기력해질 때가 많다”며 “차라리 다 포기해 버릴까 하는 생각도 정말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결국 내 힘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지원서를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기업들의 ‘경력 있는 신입’ 선호에 노동시장으로 첫 진입하려는 청년들이 높은 취업 문턱을 체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첫 취업 기회를 얻지 못하면 구직기간이 길어지고, 반복된 실패에 의욕을 잃은 일부 청년들이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높아진 첫 취업 문턱은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달 2일 발표한 ‘고용동향브리프’에 따르면 15~29세 청년 고용률은 2024년 2분기 이후 전년 동기 대비 감소세가 이어졌다. 반면 30세 이상 고용률은 대부분 기간 증가세를 유지하며 상반된 흐름을 보였다. 해당 보고서는 “최근 청년 고용 부진은 단순한 청년 인구 감소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며 “신규 채용 위축, 특히 상용직 신규진입 감소와 밀접하게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청년들도 이 같은 변화를 취업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다. 6년째 취업 중인 정란영(29)씨는 최근 지원한 안내데스크 면접에서 “경력이 없으시네요”, “진짜 첫 직장인데 괜찮겠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분명 신입이라고 써놓은 공고를 보고 지원한 곳이었다. 정씨는 “신입이라고 해도 실제로는 경력 있는 사람을 원하는 것 같았다”며 “단순히 사람을 안내하는 일조차 경력을 요구한다면, 저 같은 사람은 어디서 경력을 쌓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첫 취업을 위한 ‘경력’을 만드는 과정이 필수가 되면서 청년들의 구직기간이 늘어나고 있다. 박효상 기자
높아진 채용 문턱은 청년들의 취업 준비 방식도 바꾸고 있다. 신입으로 입사하기 위해 국비교육과 부트캠프, 청년 일경험 사업, 사이드 프로젝트, 취업 지원 프로그램 등을 거치는 게 기본적인 루트가 됐다. 첫 취업을 위한 ‘경력’을 만드는 과정이 필수가 되면서 사전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구직 기간이 늘어나면서 스펙 쌓기에 몰두하거나 계약직·단기 일자리를 반복하는 사례도 많다.

회계 직무에서 개발자로 전향해 4년을 준비하다가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권미주(32·가명)씨도 다양한 경력 쌓기에 몰두한 청년 중 한 명이다. 2022년 퇴사 후 이듬해 6개월간 국비 지원 개발 교육을 수료했지만, 곧바로 취업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권씨는 사이드 프로젝트와 정부 일경험 사업, 국가 프로젝트, 이력서·포트폴리오 첨삭, 모의 면접 등 여러 경력을 쌓는 데 집중했다. 그는 “계속 지원했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아 국가에서 지원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많이 찾아다녔다”며 “일경험 사업도 하고 국가 프로젝트에도 참여하면서 계속 경력을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탈락, 자신감과 구직 의욕 갉아먹는다

문제는 경력을 쌓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취업 자체를 포기하거나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나는 청년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2월 발표한 ‘경력직 채용 증가와 청년 고용’ 보고서는 “경력직 채용 증가로 청년들의 취업 기회 제약이 지속될 경우 반복된 취업 실패를 경험한 청년들이 구직을 포기하거나 직업훈련에도 참여하지 않는 니트(NEET) 상태에 이를 가능성이 커진다”고 분석했다. 실제 2024년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에서는 “특별한 활동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답한 졸업 후 미취업 청년이 24.7%에 달했다.

2019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지난해부터 다시 취업 준비를 시작한 조윤석(35·가명)씨도 공백 기간이 길어지면서 스스로 위축됐던 경험을 털어놨다. 조씨는 처음에는 대기업 취업도 고려했지만,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그는 “예전에는 내가 게을러서 취업 준비를 제대로 못 하는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면 몸 상태도 안 좋았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쳐 있었다”며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태 자체가 아니었던 시기가 꽤 길었다. 공백 기간이 길어질수록 사람이 점점 위축되는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한국은행은 ‘경력직 채용 증가와 청년 고용’ 보고서에서 최근 ‘쉬었음’ 청년이 늘어나는 현상이 경력직 채용 증가 등 취업 기회 제약이 장기간 이어진 데 일부 기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대 인구 중 ‘쉬었음’ 청년 비중은 팬데믹 이후 6%를 넘어선 뒤 최근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분석에서도 25~29세 ‘쉬었음’ 청년은 2004년 8만4000명에서 2024년 21만7000명으로 2.6배 증가했다.

서유진(34·가명)씨도 취업 준비의 장기화로 3년간 고립을 경험했다가 올해 다시 구직에 나섰다. 서씨는 “처음에는 잠깐 쉬자는 마음이었다”라며 “한 달, 두 달이 지나면, 일을 구하기 싫어졌다. 점점 쉬는 생활이 익숙해졌다”고 털어놨다. 여행업계 취업을 준비했으나, 코로나19 이후 채용이 사실상 중단되며 아르바이트와 공공근로, 3~6개월짜리 계약직을 반복하며 버텼다. 계약이 끝날 때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이 이어졌다. 쉬는 기간도 점점 길어졌다. 그는 “취업이 잘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시 밖으로 나가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며 “사람들을 더 피하게 되고 결국 고립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은둔 고립 청년을 지원하는 안무서운회사의 유승규 대표는 구직 장기화와 ‘쉬었음’, 고립·은둔이 서로 단절된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취업 준비가 장기화되고 반복되는 실패로 소속감을 잃게 되면 고립감을 느끼기 쉬운 시대”라며 “‘쉬었음’에서 고립, 은둔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하나의 연속선상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쉬었음’ 상태는 사회와 다시 연결될 수 있는 전환기이기도 하지만, 처음에는 ‘일주일만 쉬자’, ‘한 달만 쉬자’고 생각했던 시간이 몇 년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경력 선호가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을 어렵게 만들고, 반복되는 탈락과 구직 의욕 저하를 거쳐 일부 청년을 ‘쉬었음’ 상태로 이어지게 하는 요인 중 하나라고 분석한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중소기업정책연구실장은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신입 채용에서도 실무 경험과 경력을 중요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충분한 경력을 갖추지 못한 청년들은 반복적인 탈락을 경험하며 구직 의욕을 잃고 결국 ‘쉬었음’ 청년 상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유재은 전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위원도 “채용공고에는 신입이라고 쓰여 있지만 실제로는 인턴, 프로젝트, 포트폴리오 등 다양한 경험을 요구하면서 취업 의사가 있어도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비자발적 ‘쉬었음’ 청년이 생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서지영 김은빈 기자 surge@kukinews.com

[편집자주] 신입 지원자에게 경력을 요구하는 모순. 기획의 시작이었다. 기업은 신입 채용 공고에 ‘경력 우대’를 기본으로 적는다. 정부는 취업 준비 청년들에게 일경험을 권한다. 신입 면접장엔 인턴과 경력자가 가득하다. 무경력 청년들은 조용히 수백만 원을 들여 경력을 사거나, 시간을 경력으로 바꾼다.경력이 기본 스펙이 된 시대. 궁금해졌다. 경력 없는 신입 지원자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경력을 쌓고 있나. 신입 사원을 교육하던 기업의 비용은 누구에게 전가됐나. 정부의 취업 정책은 어떻게 기능하고 있나. 쿠키뉴스가 채용 시장의 구조 변화를 추적했다. 13편에 걸쳐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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