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팠는데 이렇게 건강하잖니”… 환아들 희망 키우는 ‘소원 배달부’
많은 한국인은 오늘도 유튜브에 접속해 정보를 얻고 음악을 듣고 뉴스를 보고 위안을 받습니다. ‘유튜버’와 ‘인터뷰’의 첫 자음을 딴 ‘ㅇㅌㅂ’은 이렇듯 많은 이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튜버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어린 도열이는 정기검진을 받으러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서8병동’에 갈 때마다 늘 가래떡을 챙겨 갔다. 열두 살 눈에는 가래떡이 가장 깨끗해 보였다. 어린이병원 서관 8층에 있는 이곳은 소아암 환아들이 있는 병동. 자신도 아홉 살 때부터 4년간 이곳에서 횡문근육종으로 항암 치료를 9번이나 받았었다. 도열이는 암으로 투병하는 아이들에게 말하곤 했다.
“나도 여기서 치료했었는데 이렇게 건강하잖아. 너도 나을 수 있을 거야.”
병동에 있는 보호자들은 그의 손을 잡고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암을 이겨낸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환아들이 힘을 얻는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됐다.
그로부터 17년이 흘렀다. 병동에 가래떡을 들고 찾아가던 아이는 어엿한 청년이 돼 이제 난치병 아이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유튜브 채널 ‘도위시’를 운영하고 있다. 운영자의 이름은 이도열(28)씨. 채널명 ‘도위시’는 이름의 ‘도’와 영어 단어 ‘위시(wish·소원)’를 합친 말이다.
지난달 22일 경기 남양주 인근 카페에서 만난 이씨는 왼쪽 눈 위에 손바닥 크기의 하얀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그는 지난 5월 말 뇌종양 수술을 했다. 완치 판정을 받은 지 17년 만이었다. 시신경 6개가 지나는 1㎝ 남짓한 좁은 공간에 생긴 종양이었다. 혈관을 잘못 건드리면 즉사할 수 있는 자리였지만 수술은 기적적으로 잘 끝났다.

수술보다 힘든 건 기다림이었다. 종양 등급이 나오기까지 몇 주를 보내야 했다. 어릴 적 항암 치료로 방사선을 많이 쐬었던 그는 이번 뇌종양의 원인이 과거 방사선 부작용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재발 방지를 위해 다시 방사선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는 말에 이씨는 ‘암과의 싸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는 다시 수술대에 오르며 그동안 만나온 부모들의 마음을 뒤늦게 이해하게 됐다. “어린 시절 투병은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미화되기도 하잖아요. 이번에 다시 환자가 돼보니 그 불안의 크기가 어마어마하다는 걸 느꼈어요.”
투병의 흔적은 그의 얼굴에도 남아 있다. 왼쪽 얼굴에 있던 종양은 안면마비 후유증을 남겼다. 사춘기 때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마비된 쪽은 살이 찌지 않아 얼굴이 비대칭이 됐다. ‘누구한테 맞아서 한쪽만 들어갔냐’는 식의 조롱이 따라다녔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닌 그가 붙들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10년 가까이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변화는 없었다. 신앙을 버릴 생각까지 했다. 미련 없이 떠나려면 성경을 한 번은 제대로 읽어야겠다는 마음으로 펼친 성경에서 사도 바울의 ‘육체의 가시’ 대목을 만났다. 남을 고치는 능력을 가진 바울도 제 몸의 가시만은 어쩌지 못했다.
“바울이 병들어 봤기에 병든 사람을 위로할 수 있었던 것처럼, 저도 안면마비 덕분에 투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잊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난치병과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준다. 장난감 가게에 간 아이는 좋아하는 티니핑 굿즈 열댓개를 골라오기도 하고, 팝마트에서 자신의 상반신만한 인형을 사기도 한다. 코에 연결된 호스로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아이에겐 의료용 튜브 6개월치와 소아영양식을 선물하고, 의료기기를 가득 실을 수 있는 유모차를 구입해주기도 한다.
이씨의 꿈은 목회자가 되는 것이다. 지난해 8월 목사고시에도 합격했다. 목사 안수는 만 30세 이상만 가능해 현재는 전도사로 일하고 있다. 이런 그가 현재 유튜버로도 활동하는 것은 투병할 때 ‘나도 나를 도와준 분들처럼 아이들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일면식도 없던 한 장로님이 보내주신 치료비 전액이, 교회에서 보내온 1100여통의 응원 편지가, 난치병 아이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단체 ‘메이크어위시’ 덕분에 탔던 경비행기가 지금 아이들의 소원을 이뤄주게 만든 출발점이 됐다.
“받은 게 많으니 흘려보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유튜브라면 시공간 제약 없이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겠더라고요.”
유튜브 밑천은 스스로 마련했다. 고3 때 물류센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냉동창고, 족발집, 초밥집, 곱창집까지 거쳐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내고 남은 돈을 몇 년간 모아 2022년 11월 ‘도위시’를 시작하는 데 모두 썼다.

문제는 소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구독자도 얼마 없는 채널에 아픈 아이를 출연시킬 보호자가 없는 건 당연했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가 유튜버 박위에게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 지체장애가 있는 박위는 구독자 101만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위라클’의 운영자다.
“다짜고짜 인스타그램으로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죠. 근데 형이 ‘너무 귀한 일이다. 내가 도와주겠다’며 위라클 채널에 저를 불러주셨어요.”
당시 40만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던 위라클에 출연해 얼굴을 알리자 소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후 5년간 이뤄준 소원은 160개가 넘는다. 소원을 이뤄줬던 아이 중에는 세상을 떠난 경우도 있다.
“신학대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있을 때였어요. 한 어머니께서 납골당 사진을 보내주셨어요. 사실 몇달 전에 아이가 하늘나라에 갔는데 마음 정리를 한 뒤에야 연락을 한다면서요.”
납골당에는 아이에게 게임기와 케이크를 선물하며 함께 찍었던 사진이 놓여있었다. 감정을 추스리기가 어려웠다. 유튜브를 더 이상 운영하기 힘들 것 같았다. 영상을 내려야 하진 않을까 생각하면서 답장을 보냈다.
“어머니께서 아이가 투병하느라 웃는 영상이 많지 않은데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영상을 지금도 가족들이 매일 본다고 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영상을 남기는 것이 추억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씨는 약 2년 전부터 긴 호흡의 ‘롱폼’ 영상 대신 1분 안팎의 짧은 ‘숏폼’ 영상으로 채널의 방향을 틀었다. 처음 1년 6개월 동안은 아이와 가족의 이야기를 20분 분량으로 담아냈지만, 구독자는 1만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개인 비용만으로 아이들의 소원을 계속 들어주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채널이 커져야 유튜브 수익이든 후원이든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물론 숏폼으로 바꾸는 데는 고민도 많았다. 아이들의 사연을 가볍게 소비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힘든 투병 과정을 이야기하는 장면에 빠른 음악을 입혀도 되는지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이러다 관심이 사라지면 소원 요청도 줄고 활동 자체가 끊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컸어요. 제 부족함 때문에 멈출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짧은 영상은 보호자들의 부담을 덜어줬다. 시청자들도 아이가 행복해하는 순간에 더 쉽게 다가왔다. 구독자는 숏폼 전환 1년 만에 10만명으로 늘었고 현재는 16만명에 달한다. 다만 촬영 원칙은 바뀌지 않았다. 일정이 여러 차례 바뀌더라도 아이의 건강이 최우선이다. 아이의 검사 수치가 좋지 않거나 컨디션이 흔들리면 촬영은 몇 번이고 미룬다.
이씨는 언젠가 사단법인 ‘도위시’를 세우고 싶다고 했다. 한 차례 알아봤지만 행정 절차와 비용의 벽에 막혀 현재는 잠시 내려놓은 꿈이다. 그는 “지금은 개인이 하는 조그마한 유튜브라 소원을 이뤄주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가령 일반 유모차는 30만~100만원이면 살 수 있지만, 척추를 잡아주는 기능이 들어간 장애인 유모차는 200만~300만원은 줘야 구할 수 있다. 그런 소원이 들어올 때마다 이씨는 “다른 도움이 될 방법은 없을까요”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사단법인이 되면 아이들 치료비 같은 더 큰 후원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남양주=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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