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따라 벌교 여행, 여기서 예습하면 좋습니다
여경수 2026. 7. 5. 16:08
태백산맥 문학기행... 작가 육필원고부터 배경 장소 정보까지, 태백산맥문학관을 다녀와서
[여경수 기자]
지난 6월 25일에는 5.18기념재단에서 발제를 한 후, 서광주역에서 오후 8시 14분 기차를 타고 벌교역으로 향했다. 벌교역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9시 52분이었다. 벌교천을 따라 숙소까지 걸어갔다.
벌교읍이 속한 보성군은 1908년 전남 의병전쟁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보성을 근거지로 활동한 안규홍이 이끈 의병부대는 일본이 가장 경계하던 세력 중 하나였다. 1908년 한 해 동안 보성 일대에서는 일본 헌병과 의병 사이의 교전이 여러 차례 발생했으며, 이후 일본이 실시한 남한대토벌작전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이 지역 의병세력이었다. 민간에서 전해지는 "벌교에 가서는 주먹 자랑을 하지 말라"는 말 역시, 일제강점기 청년들이 일본인들에 저항했던 기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나는 벌교를 포함해서 보성은 처음 방문했다. 벌교는 꼬막으로 유명한 동네이며,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 되는 곳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번 여행은 <태백산맥> 문학기행을 중심으로 했다. <태백산맥>을 읽었던 때가 1995년이니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그래도 등장인물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김범우가 이념을 넘어 민족주의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에 내 자신이 투영되기도 했다. 염상진과 염상구 형제의 애증 관계에서 가끔은 열등감에 사로잡힌 염상구에 더욱 눈이 갔다. 소설책의 수많은 등장인물 중 하대치에 대한 인상이 가장 강렬했다. 그는 묵직한 성격으로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인물이다. 최근 구례 지역사에서 알게 된 야산대 출신의 박종하가 하대치와 비슷해 보였다. 무당인 소화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태백산맥> 영화에서 오정해 배우의 연기 때문인지 활자보다는 영상으로 더욱 잔상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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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백산맥문학관에 전시된 태백산맥 책자 |
| ⓒ 여경수 |
<태백산맥>의 시대 배경은 한국전쟁을 전후로 한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순천사건이 발생한 이후, 벌교에도 일부 봉기군들이 진입했다. 여수에서 봉기한 후 주력 부대는 주로 순천과 광양, 구례를 거쳐 백운산과 지리산으로 입산했다. 벌교로 진출한 봉기군들은 진압군의 공격을 방어할 목적이었을 것이다. 해방 공간에서 벌교에서 활동했던 진보적인 세력들이 봉기군들과 합세했다. 소설 속의 염상진이 이들 세력을 지휘한다. 그들이 벌교읍내를 잠시 장악했으나, 곧이어 국군이 벌교를 장악한다. 봉기한 세력들은 산으로 들어가 한국전쟁이 발생할 때까지 빨치산 활동을 한다. 전체 10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1983년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하여 1986년 단행본 1권이 출간되었고, 1989년에 완간 된다. 국가보안법이 적용되어 오랜 법리 다툼 끝에 2005년 무혐의로 종결되었다. 예술을 형벌의 잣대로 재단했던 암흑의 시기였다.
<태백산맥>은 허구에 근거한 소설이지만, 큰 줄거리와 등장인물들은 묘하게 실존 인물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태백산맥>을 기록 문학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벌교를 중심으로 한 장소에 관한 소설가의 생동감 있는 묘사가 탁월해서 그러하다. 조정래 작가는 벌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꼼꼼한 현장 답사를 통해 벌교의 장소들을 소설의 배경으로 삼았다고 한다. 소설과 현실이 교차하는 감각이 있다. 지금도 벌교로 문학 기행을 오는 이들이 많다. 실제 해방된 공간에서 국제 정세에 따른 냉전의 여파가 이곳 벌교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좌우의 이념 대립과 친일파 청산 문제 등이 얽혀 결국 동족끼리 총칼을 겨루는 비극의 현장이었다. 당시의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나 적대 세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진실화해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에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어찌 보면 소설가가 과거의 진실을 국가보다 먼저 찾아 나선 결과물이 <태백산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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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백산맥문학관에 전시된 신문기사 |
| ⓒ 여경수 |
벌교에서 하룻밤을 잔 후 태백산맥문학관을 찾았다. 태백산맥문학관에는 조정래 작가의 육필원고를 비롯한 다양한 전시물이 있다. 이번 답사를 사전에 공부할 수 있는 최적의 학습 공간이다. 문화해설사가 있어 더욱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나는 <태백산맥>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표기된 지도를 한참 보았다. 벌교 공간은 작가의 상상력과 실존하는 공간이 만들어낸 태백산맥의 근원이 된다.
전시물 중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박현채의 사진이었다. 그는 실제로 빨치산 활동을 했던 인물이다. 지리산에서 하산한 이후 경제학자가 되어 조희연과 함께 <한국사회구성체논쟁>을 엮었다. 이 책 역시 내가 대학 초년생 시절 즐겨 보던 책이었다. 이후로도 이 만큼 우리 사회를 분석한 책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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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부자네 |
| ⓒ 여경수 |
1986년 <태백산맥>이 출간되자 박현채가 직접 조정래 작가를 찾아가 자신의 빨치산 경험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둘이서 지리산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빨치산의 현장을 살펴보았다고 한다. <태백산맥>에는 박현채를 모델로 한 조원제라는 소년 빨치산이 등장한다.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가진 등장인물이라고 한다. 태백산맥문학관의 뒤편에는 옹벽 벽화가 있다. 조각가가 민족 통일을 염원해서 만든 작품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한반도 그림이 새겨져 있으며, 고구려 고분에서 출토된 고구려인의 춤추는 맵시도 표현되어 있다. 밖으로 나와 박물관의 그늘에서 옹벽 벽화를 한참 바라보았다.
태백산맥문학관의 입구에는 '현부자집'과 '소화의 집'이 있다. 이 공간은 <태백산맥> 앞 부분을 이끄는 공간이다. 현부자집은 소설에서 술도가 아들 정하섭이 소화에게 은신처를 부탁하며 처음 묘사가 나온다. 벌교에서 대지주였던 현부자집은 건축 기법 역시 일본의 잔재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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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정리 돌담 교회 |
| ⓒ 여경수 |
벌교읍내로 내려가는 길에, 회정리 돌담교회가 눈에 띄었다. 이곳은 1935년에 돌로 만들어진 예배당이다. 외벽은 화강암을 이용했으며, 돌담 구조가 특징이다. <태백산맥> 소설에서 서민영이 야학을 열어 계몽 운동을 펼친다. 교육을 통해 민족의 미래를 열어간다는 의미는 심훈의 <상록수>에서도 잘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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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백산맥문학관 옹벽 벽화 |
| ⓒ 여경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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