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6년 만의 러시모어산 연설서 "반공산주의" 강조

박정길 2026. 7. 4. 19:2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독립기념일 앞두고 "미 정체성 예찬"으로 시작해 이민자·공산주의 경고로 전환

[박정길 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사우스다코타주 러시모어산 국립기념지에서 연설하기 앞서, 대통령 전용기가 조지 워싱턴·토머스 제퍼슨·시어도어 루스벨트·에이브러햄 링컨 등 4명의 전직 대통령 얼굴이 새겨진 암벽 위를 낮게 비행하고 있다.
ⓒ 트루스소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미국 독립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사우스다코타주 러시모어산 국립기념지에서 연설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곳에서 연설한 것은 2020년 이후 6년 만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연설은 2020년 연설이 있었던 날짜와 정확히 6년 만에 같은 날 이뤄졌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짚었다.

이번 연설은 넉 달 앞으로 다가온 중간선거를 겨냥한 것으로, 백악관이 최근 민주당 내 진보 진영을 견제하기 위해 사용해온 공격 노선을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더 날카롭게 다듬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NYT는 이날 연설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반대 세력을 "신을 믿지 않는 사악한(godless, evil)" 존재로 몰아붙였다고 전했다.

연설 전반부는 미국의 정체성과 예외주의를 예찬하는 데 할애됐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반부 연설 전체를 "여러분은 매우 특별한 곳에 살고 있습니다, 축하합니다 여러분"이라는 한 문장으로 압축했으며 청중이 이에 열광적으로 호응했다고 전했다.

실제 연설 영상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 나라의 정체성이 곧 그 나라의 운명"이라며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와도 다른 운명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다른 어떤 국민과도 다른 국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구세계는 가장 용감하고 대담하며 강인한 이들을 보냈다"며 영국은 물론 고대 아테네와 예루살렘, 로마로부터 이어져 온 가치와 전통이 미국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명"으로 꽃피웠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인들은 왕이나 정부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만 무릎을 꿇었다"며 이것이 공화국을 세우고 독립을 위해 싸운 정신의 원동력이었다고 말했다. 총기 소지권과 관련해서는 "제 대통령 재임 기간 거의 6년 동안, 저는 거의 혼자서, 존(존 튠 상원 원내대표)을 비롯한 훌륭한 분들과 함께 일하면서 여러분의 수정헌법 제2조를 지켜냈다"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후 연설은 이민자와 공산주의에 대한 경고로 방향을 틀었다. 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영어가 미국의 지배적 언어로 남지 않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다고 경고했으며, 총기를 빼앗으려는 세력이 있다고도 주장하면서 이를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방식과 위대한 성공에 완전히 반하는 사상을 받아들이는 이민자들"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산주의를 "1776년 7월 4일(미국 독립)의 적"이라 규정하며 진주만 공습이나 9·11 테러보다 더 큰 위협이라고까지 말했고, 카를 마르크스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공산주의는 생명, 자유, 행복 추구의 정반대다. 그것은 죽음이고 폭정이며 악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다만 공산주의를 진주만·9·11과 직접 비교한 부분은 역사적으로 검증된 사실관계라기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수사적 주장에 가깝다.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6년 전 같은 장소에서 했던 연설과 정반대의 이념적 프레임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2020년 재선을 앞두고 이곳을 찾았을 때는 코로나19 팬데믹과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인종차별 반대 시위, 동상 철거 논쟁이 한창이던 시기로, 당시 그는 "새로운 극좌 파시즘"의 부상을 경고했다. 이번에는 정반대로 "공산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필리버스터 폐지와 자신이 추진하는 선거 관련 법안인 '세이브 아메리카법'(SAVE America Act) 처리를 거듭 촉구했다. 이 법안은 유권자 신분증 확인 요건을 강화해 투표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존 튠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상원 공화당 의원들은 필리버스터 폐지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며 해당 법안 통과에 필요한 표가 부족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을 "공산당"이라 칭하며 불법 이민자와 범죄자, 일할 의지가 없는 이들로 구성됐다고 주장했고, 중간선거 패배 가능성에 대해서는 공화당 스스로 실수를 범하지 않는 한 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는 화려한 볼거리로도 주목받았다. 연설 도중 군용 헬리콥터가 산 앞을 오가며 비행했고, 록밴드 AC/DC와 레너드 스키너드의 곡("프리버드")이 울려 퍼진 데 이어 B-52 폭격기가 상공을 통과했다. 해 질 무렵에는 조명이 워싱턴, 제퍼슨, 루스벨트, 링컨 등 4명의 전직 대통령 얼굴이 새겨진 화강암 조각을 비췄다. 트럼프 대통령 도착 직전에는 탁구공 크기의 우박을 동반한 폭우와 번개가 몰아쳐 관람객들이 인근 기념품점과 카페로 대피하는 소동도 빚어졌다고 NYT는 전했다.

이날 행사에는 폭스뉴스 앵커 브렛 베이어, 극우 성향 인플루언서 로라 루머 등이 참석했으며, 더그 버검 내무장관과 래리 로든 사우스다코타 주지사는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자리를 지켰다. 전통 복장을 한 아메리카 원주민 남성이 관악기를 연주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경호도 삼엄해 워싱턴 대통령 두상 위에서 경계 근무를 서는 요원들의 실루엣이 포착되기도 했는데, NYT는 이를 영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의 한 장면 같았다고 묘사했다.

연설 말미 트럼프 대통령은 "공산당은 불법 이민자와 범죄자, 일할 의지가 없는 모든 이들로 구성돼 있다"고 마지막 일격을 가한 뒤, 다시 미국 예찬으로 돌아와 연설을 마무리했다. 연설이 끝난 뒤에는 불꽃놀이와 함께 빌리지 피플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약 30분간 이어진 연설에는 마이크 라운즈 상원의원과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등도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DC에서 열리는 별도의 독립기념일 행사에서도 기록적인 폭염 속에 장시간 연설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예고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