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보지 마세요’ 日예능 역풍… 웃음과 멸시의 경계[이세계도쿄]
女 앞에선 말 못하는 男 본심 토크
“남자가 더 똑똑” “여잔 몰라도 돼”
방송사 “의도 없어…예능으로 봐달라”
“기획 의도 흥미롭지만 내용 헛돌아”

일본 지상파 민영방송 TV도쿄의 심야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 후 논란에 휩싸였다. 제목은 ‘※여성은 보지 마세요’. 여성 앞에서는 말하기 어려운 남성들의 속마음을 다룬다는 기획이었지만 방송에서 나온 발언들은 “여성 비하적” “남녀 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불렀다. 방송사 측은 “여러 의견을 진지하게 수용하겠다”면서도 “버라이어티로 이해해 달라”고 했다. 이 사태는 특정 프로그램의 문제를 넘어 일본 예능의 현실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됐다.
첫 회인 지난달 8일 방송에서는 한 여성 출연자가 “만화를 좋아한다”고 말하자 남성 출연자들이 좋아하는 등장인물을 물었다. 여성이 “잊어버렸다”고 답하자 벽이 내려왔다. 남성들만 남은 공간에서 한 출연자는 “여성은 기본적으로 만화를 읽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여성의 80% 정도가 책장 넘기기를 어려워해 만화를 읽지 못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다른 출연자는 “남자 쪽이 역시 똑똑하다” “남자는 머리 회전이 빠르다” 같은 말로 받아쳤다.
또 다른 출연자는 “가끔 ‘드래곤볼’을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경우가 있다. 반가워서 물어보면 프리저를 모르더라”며 “‘어쨌든 남자한테 맞춰주자!’ 이런 느낌”이라고 하소연했다. 프리저는 드래곤볼의 주요 악당 캐릭터다. 한 출연자가 “여자는 화장하면서 보니까”라고 하자 다른 2명은 웃음을 터뜨렸다.

두 번째인 지난달 15일 방송에서는 한 여성이 나이를 21세라고 밝힌 뒤 벽이 내려왔다. 남성 출연자들은 “21살에 저 분위기로 술자리에 오는 여자라니” “남자 21살과 여자 21살은 맞지 않는다” “남자는 30살 정도가 딱 정신적으로 맞는다고 할까”라고 말했다. 이어 “연상의 남자들과 너무 많이 논 것 아니냐” “뒤에 아저씨의 그림자가 보이는 여자”라는 발언도 나왔다.
와인이나 바, 호텔 뷔페 등에 밝은 여성들이 있다는 화제가 나오자 “여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편이 낫다. 귀여우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쪽이, 뭐랄까, 전부 가르쳐 주고 싶다”는 대화로 이어졌다. “아는 게 많은 쪽이 싫다” “(너무 잘 알아서) 두 번째 장소를 정하는 여자는 싫다”고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예고 단계에서 제목, 시간, 출연진만 공지했을 뿐 내용과 형식을 전혀 공개하지 않은 방송이었다. 산케이신문 계열 스포츠 매체 산스포는 첫 방송을 앞둔 지난달 8일 “기획 내용이 미디어나 시청자에게 공개되지 않은 채 방송을 맞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됐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램은 두 차례 방송으로 종료됐다. 이후 같은 시간대에는 다른 프로그램이 편성됐다.
문제의 발언을 여성 비하로 받아들인 반응이 많았다. 한 시청자는 “여성은 책장을 넘기지 못하니 만화를 못 읽는다” “여자의 80%가 그렇다” “남자 쪽이 머리 회전이 빠르다”는 발언을 거론하며 “거짓말과 모욕으로 여성 때리기를 즐기는 비열한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한 블로거는 같은 발언을 두고 “이건 지나치다기보다 유치하다”며 “이성(여성)의 인간성을 부정하는 발언이라 재미없다. 예능인으로서 센스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잘 만든 풍자나 비꼼이라면 웃을 수 있지만 그냥 편견에서 나온 인격 부정이라 전혀 재미없다”며 “전문 예능인이라면 선입견으로 깎아내리지 말고 이성(여성)을 더 관찰해서 소재로 승화하라”고도 했다.

비판은 주요 출연자였던 인기 개그맨 세이야에게 집중됐다. “아내도 있고 여자 형제도 있어서 그런 균형 감각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저 그런 남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세이야를 좋아했기 때문에 충격이 크다. 라디오도 들을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정말 싫어질 것 같다” 같은 반응이 올라왔다. 그에게 최근 딸이 태어난 사실을 언급하며 “아이를 낳은 아내도 바보 취급하는 것이고 아이에게도 저주를 거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세이야는 비판이 잇따르자 X에 “늘 다정한 장모님에게 ‘이게 뭐냐’고 처음으로 추궁당했다”며 심하게 까불었을 뿐이라는 취지의 해명글을 올렸다. 방송을 두고는 “이제 아무도 보지 말아 달라”고 덧붙였다. 이 글에도 “실망했다. 당신은 이제 재미없다. 주변 여성을 방패로 삼지 말라. 비겁하다” “남편도 ‘여성 괴롭힘은 보기만 해도 재미없다’며 질색했다” 같은 댓글이 달렸다.
남녀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여성 비하 발언을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장치 없이 내보내 결과적으로 남녀가 서로 적대하는 구도로 소비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한 시청자는 “사회 내부의 증오를 부추기는 방송을 돈을 들여 대중매체에서 내보내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방송 때문에 남녀가 갈라서는 것은 좋지 않다. 문제는 TV 제작자 쪽에 있다”는 반응도 있었다.
일부는 이 프로그램을 여성 중심의 불만 토크에 대한 맞대응처럼 해석했다. 여성들이 남성의 단점을 말하는 예능이 적지 않은데, 남성이 여성에 대한 불만을 말하는 프로그램만 문제 삼는 것은 이중잣대 아니냐는 주장이다.
한 이용자는 “남자를 깎아내리는 여성 탤런트들은 논란이 되지 않는데, 이 프로그램만 논란이 되는 것은 이상하다”며 “정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달라”고 썼다. “그동안 남성이 당해온 것을 되갚는 것일 뿐” “평소 남성 쪽이 느끼는 것을 거침없이 말해줘서 정말 재미있다” 같은 반응도 있었다.
상반된 반응이 맞물리면서 이런 ‘불만 토크’가 성별 일반화로 받아들여질 때 어디까지 예능으로 볼 수 있는지를 둘러싼 논란으로 이어졌다. 한 시청자는 “맞대응을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로그램을 파고드는 능력이 낮아 맞대응조차 되지 못한다”며 “낡아빠진 여성혐오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남성이 여성을 더 낮은 수준으로 때리고 있을 뿐”이라고도 했다.

제작 의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나오지 않았다. 요시쓰구 사장은 “기본적으로 밝히지 않는다”며 “버라이어티라고 이해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와다 요시에 TV도쿄 이사는 “각자의 받아들이는 방식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어떤 방향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로 만든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인권 의식에 관한 질문에 와다 이사는 “인권 방침과 점검 절차를 회사 차원에서 발표하고 있다”며 “프로그램 스태프와 프로그램에 관여하지 않은 사원을 포함해 인권 의식은 충분히 높아져 왔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요시쓰구 사장도 “회사 전체로서 항상 상당히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이 두 차례 방송으로 종료된 것에 대해 와다 이사는 “당초부터 2편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논란 때문에 조기 종영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해명에도 비판은 가라앉지 않았다. 논란이 된 장면의 제작 의도나 편집 판단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버라이어티로 이해해 달라”는 요시쓰구 사장의 설명은 프로그램의 형식과 발언을 둘러싼 비판에 직접 답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다.
TV도쿄 기자회견에서는 비판의 화살이 출연자에게만 향하고 있지 않는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와다 이사는 “출연자분들과는 스태프가 제대로 소통하고 있다”며 “그런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나베는 “출연자에게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면서도 “프로그램 전체에 대한 위화감이나 불만을 출연자에게 집중시키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TV 칼럼니스트 히야마 다마미는 방송문화기금이 운영하는 웹매체 ‘HBF 매거진’에서 기획 의도와 실제 내용의 괴리를 지적했다. 그는 여성이 모여 남성에 대해 말하는 프로그램이 있는 만큼 그 반대 형식이 나오는 것 자체는 ‘불가사의한 일’이 아니라며 “기획 의도는 나쁘지 않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실제 방송이 남성의 본심을 깊게 보여주기보다 ‘여성을 한데 묶은 조잡한 일반론’에 머물렀다고 꼬집었다. 그는 “논의가 깊어지지도 않고 새로운 발견도 없었다”며 “그냥 여성혐오 아니냐”고 평가했다. 그는 “비슷한 유형의 여성 출연자만 모으면 예상 가능한 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논객형 여성을 넣었다면 다른 내용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탤런트 오쿠모리 사쓰키는 대중문화 웹매체 ‘QJWeb’에 연재하는 칼럼에서 이 이 프로그램에 대해 “여성이 남성에게 지적하는 프로그램이 늘고 있으니 반기를 든다 콘셉트”라며 ‘남성 디톡스 토크 버라이어티’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 콘셉트가 흥미로울 수 있지만 발언 수위에 선을 긋기 어려운 형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일부 소재는 남녀의 의사소통 차이를 토론으로 확장할 수 있었지만 실제 방송은 “불만을 말하는 데서 끝나 버렸다”고 지적했다.
오쿠모리는 이번 논란이 최근 예능 환경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그는 ‘※여성은 보지 마세요’에 대해 “주목을 모으기에는 꽤 좋은 제목”이었다면서도 ‘과격하지 않으면 봐주지 않는 시대’를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고 봤다. 이어 “버라이어티나 개그 프로그램이 줄어드는 것도 슬프지만 ‘논란 직전’을 노린 콘셉트의 프로그램이 늘어나는 것도 그것대로 슬프다”고 썼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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