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전환 버스에 탑승권 없자" 노동자들이 직접 버스 만들었다
[신문웅(태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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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일 오후 2시 충남 홍성 충남공감마루에서 열린 ‘발전노동자 재생에너지 협동조합’ 설립총회가 열렸다. |
| ⓒ 신문웅(이태성 제공) |
3일 오후 2시 충남 홍성 충남공감마루에서 열린 '발전노동자 재생에너지 협동조합' 설립총회는 단순히 하나의 협동조합이 탄생한 행사가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 산업전환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생존의 길을 찾고, 정의로운 전환의 주체가 되겠다고 선언한 역사적인 출발점이 됐다.
특히 이 협동조합은 국내 최초로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 설립한 재생에너지 협동조합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더 나아가 '자연배당'과 '정의로운 전환'을 정관에 명시한 첫 사례이자, 노동자가 참여하는 햇빛발전운동의 첫 모델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협동조합 운동과 에너지전환 정책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정의로운 전환 버스에 우리 좌석은 없었다"
정부는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석탄화력발전소는 순차적으로 폐쇄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수십 년 동안 발전소를 지켜온 수많은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새로운 일자리를 보장하는 '정의로운 전환'은 좀처럼 현실이 되지 못했다.
발전사 정규직과 지역경제에 대한 대책은 논의됐지만, 발전설비를 직접 운전하고 정비하며 위험한 현장을 책임졌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책의 사각지대에 머물렀다.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인 최성균 대표는 이를 "정의로운 전환 버스는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탑승권이 없었다"는 표현으로 압축했다.
그래서 그들은 기다리지 않았다. 정부 정책을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재생에너지 산업으로 진입하는 길을 선택했다. 협동조합은 단순한 법인이 아니라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설계하는 자구책이자 새로운 사회적 실험인 셈이다.
국내 최초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협동조합'
우리나라에는 노동자 협동조합이 적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 제조업이나 일반 기업의 직원협동조합 형태다. 반면 이번 협동조합은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 설립하고 운영하는 국내 첫 사례다.
조합원 상당수는 충남 태안화력과 보령화력, 한전산업개발 및 발전설비 유지관리 분야에서 근무해 온 노동자들이다. 여기에 노동계와 시민사회, 환경단체 등이 출자에 참여하며 총 34명의 조합원과 1440만 원의 출자금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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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성균 재생에너지 협동조합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 ⓒ 신문웅(이태성제공) |
이번 협동조합이 가장 주목받는 이유는 정관에 '자연배당'을 명시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협동조합 역사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시도다. 조합은 태양광 역시 결국 자연을 이용하는 개발 행위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래서 개발 이익을 사람만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도 돌려줘야 한다는 새로운 철학을 담았다.
정관에는 재생에너지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 이상을 자연배당기금을 통해 자연에 환원하도록 명시했다. 또한 잉여금의 상당 부분을 사회적 목적에 사용하고, 자연배당 기금과 고용 확대, 노동자 처우 개선 등에 활용하도록 규정했다.
기후위기 시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넘어 자연까지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겠다는 선언이다.
환경단체가 아닌 노동자 협동조합이 이러한 철학을 정관에 담았다는 점은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운동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사례로 평가받을 만하다.
정의로운 전환을 정관에 담은 첫 협동조합
협동조합의 목적 역시 명확하다.
정관 제2조는 "석탄화력 폐쇄로 인한 일자리 위기 극복과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의 재생에너지 일자리 창출"을 설립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동시에 공공재생에너지 확대와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 지역사회 공헌도 함께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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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일 오후 2시 충남 홍성 충남공감마루에서 열린 ‘발전노동자 재생에너지 협동조합’ 설립 총회에서 발기인들이 향후 발전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
| ⓒ 신문웅(이태성 제공) |
협동조합은 태양광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만든 조직이 아니다. 이들은 수십 년 동안 발전설비를 다뤄온 전문 기술자들이다. 전기와 기계, 안전 관리, 유지 보수 경험을 갖춘 인력이라는 점에서 태양광 시공과 유지 관리 분야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협동조합의 판단이다.
사업도 단계적으로 추진된다.
초기에는 태양광 시공사업에 참여하고, 이후 발전사업과 발전소 안전관리, 재생에너지 유지관리, 정책사업 등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보령지역에 1호 발전소 후보 부지를 확보하고 있으며 약 500kW 규모의 발전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회관 태양광 설치 사업과 충남 햇빛소득마을 시공 참여도 추진하고 있다.
사회적기업 도전… 공공시장으로 간다
협동조합은 단순 민간기업이 아니라 사회적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 사회적기업 창업사업에 선정됐으며 예비사회적기업 지정에 이어 인증 사회적기업으로 성장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공공기관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정의로운 전환과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실현한다는 구상이다.
사업 성공 여부는 단순한 수익성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 창출에 달려 있다는 판단이다.
재생에너지 산업이 또 다른 대기업 중심 시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노동자,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공공재생에너지 모델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태안이 정의로운 전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
태안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앞둔 지역이다. 발전소 폐쇄는 곧 지역경제와 일자리 위기를 의미한다.
그동안 정의로운 전환은 정부 정책이나 대기업 투자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논의돼 왔다. 그러나 이번 협동조합은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노동자가 직접 재생에너지 산업의 주체가 되고, 지역사회와 협력하며, 협동조합 방식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가겠다는 모델이다.
물론 현실의 벽도 높다. 자본도 부족하고 면허도 필요하며 시장 진입도 쉽지 않다. 그러나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과 충남에너지협동조합연대, 사회적협동조합 삶과 기술 등 다양한 협력체계를 구축하며 시장 진입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설립 이후 충남지사 협약, 지역 시공협약, 1호 발전소 준공, 전기공사업 면허 취득, 예비사회적기업 지정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정의로운 전환'은 더 이상 구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발전소를 폐쇄하면서 발전소 노동자의 삶까지 함께 폐쇄해서는 안 된다. 재생에너지 산업은 누군가의 새로운 시장이 되기 전에, 기존 산업을 떠나는 노동자들의 새로운 일터가 되어야 한다.
발전노동자 재생에너지 협동조합은 아직 작은 출발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우리 사회가 놓쳐왔던 중요한 질문이 담겨 있다.
탄소중립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재생에너지는 누가 소유할 것인가?
정의로운 전환은 누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가?
태안화력에서 묵묵히 일해 온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던진 이 질문은 태안만의 문제가 아니다. 석탄발전 폐쇄를 앞둔 전국 모든 발전지역이 함께 고민해야 할 시대적 과제다.
이번 협동조합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기업 성공이 아니라, 산업전환 시대 노동자가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대한민국 모델의 탄생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태안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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