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O’를 쓴다는 것

2026. 7. 3.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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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진
작가·번역가

단순한 감정의 격양이 아닌
생이 주는 경험과 고뇌 끝에
튀어나오는 파토스의 언어

문학평론가 브라이언 딜런의 저서 ‘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는 문장을 말하는 책이다. 저자는 25년 동안 노트에 필사해 온 문장들 중 28개를 발췌해 소개했다. 그는 이 문장들이 한 권의 책에 묶인 이유를 ‘끌림’이라고 설명한다. ‘끌림’은 일종의 힘이다. 방향을 바꾸거나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하거나, 마침내 움직이게 하는 힘. 백지에 고요히 누운 글자에도 그런 힘이 있다.

딜런의 문장들 중 내가 가장 끌렸던 것은 단연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오(O)’이다. 저자의 말처럼 셰익스피어의 ‘오’는 모든 곳에 편재한다. 사랑에 빠진 로미오가 줄리엣을 부를 때도, 맥베스의 비극적인 순간에도 ‘오’가 있다. 그중에서도 딜런이 소개하는 ‘오’는 ‘햄릿’의 마지막 순간이다. 그는 셰익스피어가 ‘O, o, o, o’라는 형태로 햄릿의 죽음을 표현했다고 말한다. 대문자에서 소문자로 점차 줄어드는 ‘O’의 여정은 비통함에서 죽음으로, 절규에서 침묵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단 네 글자가 이토록 멀고 비장한 길이 된다.

햄릿의 입술을 빌려 세상의 무게를 모두 짊어진 말을 굴리다가, 결국 작은 ‘o’만을 남겨둔 셰익스피어의 언어에 나는 속절없이 끌린다. 인간이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이성적인 수사를 지우고 원초적인 언어로 회귀한다는 사실에 무릎을 치게 된다. 어떤 인생을 살았건, 우리의 마지막 말은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억’, ‘아’, 어쩌면 ‘읍’ 같은 것들. 때때로 우리는 복잡한 의미를 덜어낸 그 소리에서 가장 진실한 무언가를 발견한다. 제아무리 정교하게 다듬은 문장도 이 소리를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햄릿의 ‘오’를 단순한 배설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가 얼마나 많은 고뇌의 말을 통과해 왔는지 안다면, 그의 ‘오’가 마침내 모든 수식의 껍질을 벗고 도달한 ‘지성의 최종 형태’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무분별한 감정 과잉이 아니라, 이성이 제 한계를 마주한 벼랑 끝에서 터져 나오는 외침인 셈이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메데이아’에서 배신당한 주인공은 결정적인 순간에 정돈된 대사가 아니라, 피맺힌 비명인 ‘오이모이’, 가슴속의 절망을 숨처럼 내뱉는 ‘페우페우’ 같은 단어로 말한다. 로고스(이성)를 강조했던 그리스 사회에서도 논리의 매끄러운 표면을 뚫고 나오는 이 언어를 허락했다. 글쓰기는 설명이 아니라 어떤 시간과 감정을 온전히 살아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멀찍이 떨어져 진실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언어만으로는 삶의 질량을 다 담아낼 수 없다. 때로는 그 아득한 감정의 한복판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야 비로소 우리의 몸을 통과해 나오는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파토스(감정)의 언어라고 부르고 싶다. 설명할 수 없음을 설명하려 들지 않고 이성의 한계에 가두지 않는 이 정직한 언어를 마주할 때마다 자유로움을 느낀다. 글쓰기의 벽에 작은 구멍이 뚫리는 것 같다.

쓰는 사람으로서 무엇을 말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지 근원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글쓰기가 내게 구원처럼 찾아온 날에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오이모이’와 ‘페우페우’였음을 기억한다. 삶의 가장 내밀한 상처, 나와 타인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질 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던 파토스의 언어들 말이다. 물론 이 외침은 단순히 감정의 격양이 아닌, 생이 주는 경험과 고뇌를 온몸으로 살아본 끝에 건져 올린 깊은 성찰의 결과물이어야 할 것이다.

생의 희로애락이 마침내 하나의 단어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덜어내야 할 것과 깎아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본다. 모든 말이 결국 침묵을 향해 가는 것이라면, 이 긴 여정은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생각을 벼리고 벼려 마침내 핵심에 가닿는 절제이자 정제의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정교하게 직조된 이성의 문장들이 끝나는 곳에서, 가장 뜨겁고 새로운 언어가 탄생함을 기억하자. 햄릿의 마지막 ‘오’와 메데이아의 비명 그리고 숨소리처럼.

신유진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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