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來 최저’ 엔저에 발묶인 원화… 헤어나오기 힘든 고환율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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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가치가 약 40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밀리자 원화도 함께 흔들리고 있다. 달러 강세와 미·일 금리차, 일본 재정건전성 우려 등이 겹치며 엔화 약세가 길어지고 그 여파가 아시아 주요 통화인 원화로 번지는 흐름이 확인된다.
달러가 강해지고 엔화가 급격히 약해지면 투자자들은 원화도 약세 압력 가능성이 크다고 인식하게 된다.
원화가 엔화만큼 약해지지 않으면 한국 수출기업이 가격 측면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에 반영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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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금리 올려도 엔저 흐름 안 꺾여
원·엔 동조 현상에 달러 매수 심리↑
미·일 금리차 못 좁히면 반등 힘들 듯

엔화 가치가 약 40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밀리자 원화도 함께 흔들리고 있다. 엔저는 더 이상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달러 강세와 미·일 금리차, 일본 재정건전성 우려 등이 겹치며 엔화 약세가 길어지고 그 여파가 아시아 주요 통화인 원화로 번지는 흐름이 확인된다.

2일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62.54엔을 기록했다. 플라자 합의 이듬해인 1986년 12월 17일(164.02엔) 이후 약 40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외환시장에서 원화와 엔화는 모두 ‘아시아 주요 통화’로 묶인다. 달러가 강해지고 엔화가 급격히 약해지면 투자자들은 원화도 약세 압력 가능성이 크다고 인식하게 된다.
실제 원화도 엔저 파장에서 자유롭지 않다. 2일 원·달러 환율은 1555.8원 수준까지 올랐다. 최근 한 달간 원화 가치는 달러 대비 2% 넘게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엔화가 달러당 160엔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원화 역시 1550원 안팎의 고환율 압력에서 쉽게 내려오기 어렵다고 본다. 박형중 우리은행 연구원은 “앞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긴축 등 환율 상승을 이끌 재료가 남아 있어 고환율 여건이 쉽게 진정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은행도 원화와 엔화의 동조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한은은 지난 3월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지난해 하반기 이후 원화가 엔화와 유사한 약세 흐름을 보였다”며 “특히 원화와 엔화의 상관관계가 다른 주변국 통화보다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엔화 약세 압력이 커질 경우 원화의 개선 흐름도 제약될 수 있다는 의미다.

엔저가 곧바로 원화 매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엔화 약세는 아시아 통화 전반에 대한 달러 매수 심리를 키우는 신호로 작용한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연구원은 “한국과 일본의 경제 구조가 유사하고 산업 구조도 비슷해 외환시장에서도 엔화와 원화의 동조화가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박 연구원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출범 이후 원화와 엔화의 동조성이 강화되면서 엔화 약세가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엔저가 좀처럼 꺾이지 않는 핵심 배경은 미·일 금리차다. 일본은행은 지난달 16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단기 정책금리를 0.75%에서 1.00%로 올렸다. 그럼에도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는 연 3.50~3.75%로 일본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상단 기준 미·일 금리차는 2.75% 포인트에 이른다. 문 연구원은 “일본의 금리 인상보다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가 커져야 엔화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은행의 추가 긴축만으로는 엔저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고, 미국 금리 인하 기대가 커져야 달러 강세가 완화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본 내부 요인도 엔화 약세를 키우고 있다. 일본은행의 긴축 속도가 시장 기대보다 더딘 데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적극재정 기조로 재정건전성 우려가 커졌다. 외환시장에서는 일본의 금리 인상에도 엔화를 빌려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여전히 가능하다는 판단이 이어지고 있다.
에너지 수입 부담도 엔화 약세 요인이다.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일본은 원유와 가스 대금을 주로 달러로 결제한다. 중동 리스크 등으로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달러 수요가 늘고,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악화 우려가 엔화 매도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
엔저는 한국 수출기업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한국과 일본은 자동차, 기계, 전자부품, 철강 등 주요 제조업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다. 엔화 가치가 크게 떨어지면 일본 기업의 가격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원화가 엔화만큼 약해지지 않으면 한국 수출기업이 가격 측면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에 반영될 수 있다.
외국인 자금 흐름도 원화 약세 압력을 키우고 있다. 달러 강세와 엔저가 겹치면 외국인투자자는 원화 자산의 환차손 가능성을 의식하게 된다. 이 경우 국내 주식과 채권 비중을 줄이고 달러를 확보하려는 수요가 늘면서 원·달러 환율은 다시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
향후 원·달러 환율의 방향도 엔화 흐름에 상당 부분 묶일 가능성이 크다. 일본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은 엔화 약세 속도를 일시적으로 늦출 수 있다. 하지만 미·일 금리차가 크게 좁혀지지 않는다면 엔화 반등은 제한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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