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K우먼]"성평등은 남녀 대결 아니다"…허명 회장이 말한 '통합의 언어'

김희윤 2026. 7. 2. 15:4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끄는 허명 회장
성별 차별 거절하되, 갈등 키우는 언어는 넘어서야
저출생 해법은 현금 지원보다 믿고 맡길 보육
여성은 여성을 지지해야 다음 세대가 큰다

문을 열고 나갈 때,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지 돌아보는 일. 허명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은 성평등의 출발점을 거기에서 찾았다. 거창한 구호보다 먼저 배워야 할 것은 타인을 향한 감각이라는 뜻이었다. 독일에서 오래 살며 교육학을 공부하고 두 딸을 키운 그는 그곳의 학교에서 반복해 본 단어를 기억했다. 함께함, 책임, 성취. 그는 그것을 "사회적 인간을 만드는 교육"이라고 했다.


허 회장이 말하는 여성운동도 그 연장선에 있다. 부당한 차별에는 단호해야 하지만, 오늘의 여성운동은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인터뷰 내내 반복한 단어는 '투쟁'보다 '통합', '권리'보다 '책임', '도움'보다 '함께'였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1959년 창립된 대표적 여성단체다. 허 회장은 제21대 회장에 이어 제22대 회장으로 연임했다. 다음은 허 회장과의 일문일답.

허명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이 서울 용산구 협회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을 맡으며 가장 먼저 붙잡은 문제의식은 무엇이었나.

▲통합이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는 여러 회원단체가 있고, 각 단체마다 역사와 목소리가 있다. 그런데 조직이 하나로 모이지 못하면 밖으로 어떤 메시지도 힘 있게 나갈 수 없다. 내가 회장을 맡으며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하나 된 여협'을 만드는 일이었다. 내부의 분열을 극복하고 방향성을 하나로 모아야 추진력이 생기고, 대외적으로도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봤다.

-회장직을 맡기 전 협의회를 바라보는 외부 시선도 녹록지 않았다고 했다.

▲주변 언론인들에게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어떤 단체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회장으로 나가려고 한다고 했더니 반대하는 분들도 있었다. 쉽지 않은 자리라는 뜻이었다. 와서 보니 재정 문제도 있었고, 손볼 곳도 많았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가서 하나 된 여협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직을 정비하고, 회원단체들이 같은 방향을 볼 수 있게 하는 일이 필요했다.

-개인적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멀리 돌아가야 했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나.

▲나는 막내딸로 자랐지만 집에서 차별을 크게 느끼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심어주셨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마음먹은 것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성이라서 손해 본다고 생각하기보다, 내가 목표를 정하면 그 목표를 향해 가는 편이었다. 집에서 정해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고 유학을 떠난 것도 그런 선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가족들이 그것을 받아준 데 대해 감사한 마음이 크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지난 4월,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6월 3일 지방선거에서 여성 후보를 최소 30% 이상 공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허 회장은 “현재 여성 단체장과 의원 비율이 매우 낮으며, 법과 당규에 있는 여성 공천 기준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여성은 다양한 분야에서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음에도 정치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독일에서의 유학 및 체류 경험이 여성운동에 영향을 줬나.

▲독일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공동체 의식이었다. 학교마다 함께함, 책임, 성취 같은 가치가 있었다. 함께하기 위해서는 남을 배려해야 한다. 내가 맡은 일은 책임져야 한다. 또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야 한다. 그런 교육이 사회적 인간을 만든다. 민주주의의 기본도 자유와 공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현실에는 아직 공정하지 못한 분야가 많다. 특히 여성에게 그렇다.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데 내가 기여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됐다.

-요즘 여성운동은 세대와 정치 성향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무엇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예전에는 남존여비, 여필종부 같은 생각이 강했다. 그때의 여성운동은 투쟁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오늘의 여성운동은 여성의 권리만 외치는 방식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회가 더 조화롭고 화목하게 함께 번영할 수 있는지를 말해야 한다. 여성들이 사회에서 더 편안하게, 더 잘 살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리고 설득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다소 거리를 두고 말했다.

▲솔직히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여성운동을 하다 보니 페미니즘을 말하게 되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갈등의 언어처럼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있다. 오늘날 페미니즘을 다시 설명한다면, 성별에 따른 부당한 차별 대우를 거절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성별에 따른 차이를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자세가 있다면 갈등은 줄어들 수 있다. 더 많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순화된 언어가 필요하다.

허명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가운데)이 지난 1일 독립기념관 겨레의집에서 열린 제25회 유관순상 시상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유관순 열사의 정신을 기리는 기념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오래된 여성단체가 낡지 않기 위해 가장 절실하게 바꿔야 할 것은 무엇인가.

▲선배 세대가 해온 여성 인권, 차별 금지 운동은 중요한 성취였다. 하지만 지금은 젊은 세대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봐야 한다. 젊은 여성이 정치, 경제, 기업, 공공 영역에 더 많이 진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 여성 정치 참여가 부족한 이유가 무엇인지 토론하고, 성별 임금 격차와 STEM 분야 여성 진출 문제를 공론화하는 일도 필요하다. 후배 여성을 키우고 사회 곳곳의 여성을 더 많이 알리는 것이 지금 여성단체가 해야 할 일이다.

-젊은 여성들과 전통적 여성단체가 다시 연결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보는지.

▲먼저 들어야 한다. 나이 든 세대가 "그건 내가 다 겪어본 일"이라고 말하며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무시하면 안 된다. 젊은 여성들이 겪는 문제를 열린 자세로 듣고, 그 안에서 해결해야 할 지점을 찾아야 한다. 외국에는 멘토·멘티 프로그램이 잘돼 있다. 우리도 여성단체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 말하기 어려운 속상함을 듣고, 사회 구조가 그들을 조금 더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저출생 문제에 대해서는 현금 지원 중심 정책에 비판적이었다.

▲아이를 낳는 것은 국가가 "낳아라"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개인과 가정이 아이를 갖고 싶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돈을 주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바꾸고, 실제 불안을 덜어주는 일이다. 0세부터 3세까지 아이를 가장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보육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부모가 편안한 마음으로 직장에 갈 수 있어야 한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믿고 맡길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이다.

허명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이 서울 용산구 협회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다. 조용준 기자

-출산 이후 경력단절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출산과 경력단절은 가장 중요한 문제다. 대기업은 비교적 제도가 갖춰져 있지만 중소기업은 여력이 부족하다. 기업에만 "잘해주라"고 할 수 없다. 국가가 기업을 도와야 한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으로 대체 인력을 써야 할 때 기업에 세제 혜택이나 재정 지원을 해주는 방식이 필요하다. 기업도 함께 동참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가정 안에서의 변화도 강조했다.

▲남편의 역할이 중요하다.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내가 도와줄게"라고 하지 말고 "그건 내가 할게"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집안일과 육아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이 아니라 함께 해야 하는 일이다. "도와줄게"라고 하면 여성이 원래 맡은 일을 남성이 거들어주는 것처럼 된다. 남편도 바뀌어야 하고, 여성도 서로 조금씩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가정이 편안해야 사회도 편안해진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늘었지만, 고위직 여성 대표성은 여전히 낮다.

▲여성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굳어진 관행과 조직 문화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시험이나 전문 분야에서 여성들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남성들은 퇴근 후에도 선후배 관계를 만들고, 조직 안에서 커넥션을 쌓는다. 여성은 집으로 돌아가 가사와 돌봄을 맡는 경우가 많다. 그런 구조가 승진과 대표성에 영향을 준다. 또 여성끼리 서로 지지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나는 "여성은 여성을 지지해야 한다"고 자주 말한다.

-미래의 여성 리더, 파워K우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대한민국은 짧은 시간에 정말 크게 성장한 나라다. 다만 빠르게 성장한 이면에는 정지된 역할과 틀, 공정하지 못한 구조도 있다. 우리는 더 공정하고, 거짓이 없고, 함께하는 사회로 가야 한다. 젊은 여성들이 더 당당해지고, 여성들이 서로를 더 지지했으면 한다. 똑똑하고 능력 있는 여성이 정말 많다. 그들이 한 명이라도 더 앞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프로필허명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은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교육학 학사와 석사를 취득했다. 한국여성항공협회 회장, 사단법인 밝은미래 이사장 등을 지냈으며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제21대 회장에 이어 제22대 회장으로 연임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1959년 창립 이후 여성 권익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목표로 활동해온 대표 여성단체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