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타그램] 사람의 시간과 철골 생명체

허영한 2026. 7. 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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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만에 서울 도심에서 열린 국군의날 기념 퍼레이드에서 '스키부대'가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갔다. 건너편에는 호텔을 짓고 있었고, 타워크레인 하나가 우뚝 서서 그 장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듬해 늦은 겨울, 서울 아현고가 철거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고가를 걸어 볼 수 있게 개방했다. 함박눈이 내렸고 사람들은 눈송이 같은 웃음을 지으며 고가를 걸어갔다. 멀리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 타워크레인 여러 대가 죽순처럼 솟아 있었고, 고가 옆 아현동은 재개발을 위한 철거가 한창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살아가고 바라보는 풍경 속 어딘가에 타워크레인은 존재한다.

2013년 10월, 국군의날 기념 시가행진에서 특전사 '스키부대' 대원들이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고 있다. 건너편에는 호텔 신축공사를 하고 있다. ⓒ허영한
2014년 2월, 서울 아현고가 철거를 앞두고 시민들에게 고가를 걸어본 기회를 주는 행사가 열렸다. ⓒ허영한

사람은 앉거나 쉬거나 눕거나 돈을 벌기 위해 집이 필요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목적이 만나 건물을 짓는다. 지구상에 없던 새 건물이 만들어지는 동안 그 구조물들은 어김없이 나타나고 건물이 제 모습을 갖추면 사라졌다. 사라졌으나 사라지지 않고 시야 어딘가에는 어김없이 그것들이 옮겨 자리 잡고 있다. 이제 그것들은 우리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다. 철골로 만들고 증식하는 생명체 같다.

2014년 3월, 서울 광희문에서 소방대원들이 문화재 화재 진압 훈련을 했다. 호스에서 물을 뿜는 소리에 쉬고 있던 비둘기들이 높이 날아올랐다. ⓒ허영한
2013년 10월, 서울 광화문 앞에서 관광경찰대 발대식이 열렸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가롭게 바닥 돌의 글씨를 읽고 있다. ⓒ허영한

타워크레인은 마천루와 대규모 주거지 개발, 토목 공사 등 현대 인프라 구축의 핵심이자 상징이기도 하다. 상징으로 보자면 그것들은 권력이고 욕망이고 자본주의고 많은 이들에게 절실한 생계다. 공사의 규모에 따라 한두 대만 있기도 하고 수십 대가 숲을 이루기도 한다. 현재 대한민국에 등록되어 가동 중인 타워크레인은 5천 대가 넘는다.

2014년 3월, 해외 순방을 마친 대통령 일행을 태운 공군1호기가 성남 기지에 착륙하고 있다. ⓒ허영한
2015년 4월, 출근길 명동성당 앞 버스 정류장에 봄비가 내리고 있다. ⓒ허영한

눈이 오거나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밤이나 낮이나 그것들은 우리 곁에서 살아간다. 사람이 살고자 하는 곳에 그들이 살고, 사람은 그 아래 산다. 그 아래에서 늘 어떤 일은 일어나고 어떤 날은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도 일어난다.

2015년 4월, 퇴근시간 시민들이 독립문 근처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허영한
2015년 12월, 크리스마스 전날 '서울로7017' 고가도로 공사장을 시민들에게 임시 개방했다. ⓒ허영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도 사람들은 그 아래에서 살아가므로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은 없다. 지난 5월 말 타워크레인 조종사 노조원들의 파업은 나흘 만에 끝났다.

2022년 2월, 고려대학교 졸업식날 졸업생도 가족들도 식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마스크를 쓴 채 기념사진만 찍었다. ⓒ허영한
2021년 11월, 경기도 성남시 탄천에 HD현대중공업 R&D센터 공사장과 석양이 비치고 있다. ⓒ허영한

허영한 사진팀장 youngh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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