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2000억 들인 청년 일경험, 정작 경력 안 된다 [신입 구함, 경력 필수⑤]

김은빈 2026. 7. 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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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의 미래내일 일경험 프로그램 포스터. 고용노동부 제공
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하는 취업 지원 사업인 청년일경험 프로그램이 청년들의 실제 취업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 2000억 원대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사후 관리가 부실해 청년들의 직무 능력 향상 보다는 단순 업무 경험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경험 프로그램은 2023년 처음 도입된 이후 고용노동부가 가장 주력하고 있는 청년 일자리 사업이다. 청년이 기업·기관에서 실제 업무를 경험하며 직무 역량을 쌓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올해 일경험 프로그램은 본 예산 2076억 원에 지난 3월 1차 편성된 추경 예산 265억 원까지 2341억 원이 투입됐다. 현재까지 일경험에 약 1만3000개 기업과 약 4만5000명의 청년들이 참여했다. 고용노동부는 청년일경험에 대해 ‘수시·경력직 채용경향 심화에 대응하여 직무경험이 필요한 청년에게 민·관 협업 기반으로 양질의 일경험 기회를 제공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쿠키뉴스 취재 결과, 다수의 청년들이 정부의 청년일경험을 기업에 어필할 만한 경력이 안 되는 프로그램으로 여기고 있었다. 대부분 문서 작업이나 시험 보조 등 제한적인 업무에 그쳐 이력서에 쓸 수 없는 단순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이오 기업의 일경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김진의(24·가명)씨에게 2개월 동안 주어진 업무는 간단한 문서 작업과 시험 보조가 전부였다. 김씨는 “경력보다는 단순 교육이나 체험에 가까웠다”며 “직접 시험을 진행하거나 업무를 주도적으로 수행할 수 없었다”고 떠올렸다. 결국 김씨는 일경험을 이력서 ‘경력’에 적지 못하고, ‘대외활동’ 항목이나 자기소개서에 기재하고 있다.

프로그램 진행 기간이 짧은 점도 문제다. 언론사에서 2개월간 일경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최시후(25·가명)씨는 “2개월은 보통의 인턴보다 짧은 기간”이라며 “일경험은 일반 인턴이나 계약직과 달리, 취업하려는 기업에 어필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가 제시한 ‘실제 업무 경험을 통한 직무 역량 강화’라는 일경험의 핵심을 구현하기엔 업무의 질이 낮고 기간도 짧은 것이다.

취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되지만, 청년들은 일경험 프로그램에 몰려들고 있다. 경력직을 선호하는 채용시장 분위기 때문이다. 이력서 경력에는 적을 수 없는 경험이지만,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선 어필할 만한 실무 경험으로 활용할 여지가 있다. 최씨는 “자기소개서와 면접에 실무 경험을 해봤다고 말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단기 성과에 머무는 현재의 일경험 프로그램을 장기적인 경력 형성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프로그램 개수를 늘리는 것보다 실제 경력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종진 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일경험 프로그램이 의미 있는 제도가 되려면 청년들에게 하나의 경력으로 형성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며 “일경험 일자리 수를 늘리는 식으로 접근하면 단기 목표 중심의 정책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청년들에게 2~3개월 일해보라고 하는 것은 취업 연계가 아니다”라며 “청년들이 잠시 거쳐 가는 경력용 프로그램보다, 예산을 더 들여서라도 실제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취업 연계 프로그램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중소기업정책연구실장은 “청년들이 일경험 프로그램을 단순한 아르바이트처럼 느끼는 이유는 제대로 배우고 성장하는 경험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기업과 청년을 연결하는 정책을 넘어, 실제로 청년들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기업이 실질적인 업무를 가르치는 사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연간 2100억 쓰는 일경험 사업, 평가지표는 ‘청년 만족도’ 뿐

일경험 프로그램은 고용노동부에서 진행하는 14개의 청년 일자리 사업 중 4번째로 큰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청년일자리도약장려금, 국민취업지원제도처럼 현금을 직접 지원을 하는 제도나 KDT(첨단산업·디지털 핵심 실무인재 양성)처럼 고액의 직무훈련 지원 제도를 제외하면 가장 큰 규모의 사업이다. 2023년 553억3000만 원으로 시작한 일경험 예산은 2025년 2155억8800만 원으로 도입 2년 만에 4배 넘게 늘었다. 지난해까지 누적 4436억7700만 원이 투입됐고, 올해는 2187억6300만 원이 배정됐다.

청년 취업을 위한 프로그램이지만, 정작 청년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예산이 늘어난 건 아니다. 사업 평가 대상에 기관·기업이 실제로 질 좋은 훈련을 제공했는지, 참여 이후 실제 채용으로 이어졌는지 여부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대신 고용노동부는 일경험 사업의 성과지표를 ‘참여 청년 만족도’로 측정하고 있다. 참여 청년이 직무탐색 도움, 직무역량 향상 정도를 스스로 평가한 주관적 점수가 예산 증액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일경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들의 만족도는 91.2점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는 쉬었음 청년 같은 취업 취약 청년들도 일경험 사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려면 성과를 만족도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30일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구직단념청년, 고립‧은둔청년의 경우 바로 취업시장에 뛰어들기 어렵지 않나”라며 “(일경험 사업의) 취업률을 강조하면 취업 연계가 될 만한 청년들만 참여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취업 연계만 성과로 보지 않고 만족도도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경험 참여자 가운데 대학생도 많고, 바로 취업하길 원하지 않는 청년들도 있는데 강제로 취업 연계를 할 수는 없지 않나”라며 “일경험이 청년들의 취업에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은 맞지만, 취업으로 연계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프로그램의 내실이나 결과에 대한 사후 평가가 없다 보니, 참여 기업의 책임감도 느슨해지기 쉽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장은 “일경험 사업은 기업의 인턴십을 국가가 주도적으로 대신해주는 형태”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기존에 기업이 책임지고 뽑아서 관리하던 인턴 제도를 국가가 대신 나서서 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기업들은 일경험 참여자가 괜찮으면 채용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프로그램이 종료될 때 내보내는 식으로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일경험 프로그램이 단순 경험에 그치지 않고 취업 준비 청년들에게 필요한 직무 능력 향상으로 이어지려면 일경험 평가지표를 세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백기홍 국회 예산정책처 인구전략분석과 분석관은 “일경험 프로그램은 단순히 경험 기회를 제공하는 데서 그치고 있다. 짧은 기간의 단순 업무 경험은 청년에게도 직무 숙련으로 남기 어렵고, 기업 입장에서도 채용 신호로 작동하기 어렵다”라며 “청년이 어떤 직무 역량을 습득했는지, 기업은 어떤 훈련을 제공했는지, 참여 이후 실제 채용이나 임금·경력 개선으로 이어졌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오 기업의 일경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김진의(24·가명)씨의 일경험 프로그램 수료증. 독자 제공
청년들 위해 만든 일경험, 오히려 짐 됐다

일경험 프로그램이 ‘신입 사원에게 직무 경험을 요구해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로 기업에 전달돼 청년들의 경력 쌓기 경쟁을 부추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재은 전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위원은 “청년들이 취업 전 일경험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일경험 제도를 양적으로 확대했으나, 이는 오히려 스펙 경쟁이라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백 분석관도 “기업이 실제로 청년을 채용하고 훈련할 유인이 약하다면, 청년 개인의 스펙 쌓기 경쟁만 심화될 수 있다”고 했다.

청년들 사이에선 일경험 프로그램을 취업 전 거쳐야 하는 추가 관문으로 여기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최유진(27·가명)씨는 “정부가 일경험 프로그램을 제공하다 보니, 취업준비생 사이에선 일경험도 필수적인 스펙으로 여겨지고 있다”라며 “일경험조차 없으면 게을러 보일까 걱정돼서 대학생 때부터 일경험 프로그램에 참여해 미리 스펙으로 준비해 두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일경험 프로그램에 집중하는 것보다 중소기업 채용 지원 등 ‘양질의 일자리’ 확대가 더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도 “일경험은 직접 고용으로 연결되기엔 한계가 있는 사업”이라며 “취업으로 연결되는 직접 일자리 정책이나 기업에 고용 장려금을 주는 정책 등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은빈 김수지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편집자주] 신입 지원자에게 경력을 요구하는 모순. 기획의 시작이었다. 기업은 신입 채용 공고에 ‘경력 우대’를 기본으로 적는다. 정부는 취업 준비 청년들에게 일경험을 권한다. 신입 면접장엔 인턴과 경력자가 가득하다. 무경력 청년들은 조용히 수백만 원을 들여 경력을 사거나, 시간을 경력으로 바꾼다.경력이 기본 스펙이 된 시대. 궁금해졌다. 경력 없는 신입 지원자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경력을 쌓고 있나. 신입 사원을 교육하던 기업의 비용은 누구에게 전가됐나. 정부의 취업 정책은 어떻게 기능하고 있나. 쿠키뉴스가 채용 시장의 구조 변화를 추적했다. 13편에 걸쳐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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