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반감 가진 남성들, 대화로 만나야"
[우예나 기자]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는 점점 더 두꺼운 경계선 안에 갇히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는 주로 '여성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를 오히려 남성들이 더 목소리를 내야 하는 영역으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이한 남성과함께하는 페미니즘(아래 남함페) 대표는 '남성과의 대화'를 강조했다.
"페미니즘에 반감을 갖고 있는 남성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 안에서 잘못된 이해와 그들만의 결핍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지점을 분노가 아닌 대화로 풀어나가야 합니다."
그가 활동하며 가장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이다.
"막상 남자인 제가 여성 의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면 불편해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들 때도 있었어요. 자칫하면 오히려 제가 마이크를 빼앗는 일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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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 '남성과함께하는 페미니즘' 대표 |
| ⓒ 기자(우예나) |
-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남성 활동가는 기존 사회가 정해 놓은 선을 넘었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계기가 무엇이었을까요?
"시작은 '강남역 살인사건'이었어요. 그 사건을 계기로 제 주변 사람들이 겪은 부당한 경험, 차별적인 경험, 위험했던 일들을 들으면서 '우리 사회에 중요하고 필요한 논의인데, 제가 너무 모르고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넓혀가게 됐습니다.
저와 함께 활동하는 다른 남함페 활동가들도 비슷해요. 대단한 책을 읽었다거나 큰 사건이 있었다기보다는 애인이나 친구, 가족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관심을 갖고 활동을 시작한 경우가 대다수예요."
- 최근 강남역 10주기 추모 집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지만, '페미니즘'이 낙인의 영역이 됐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실 이 문제가 한국 사회만의 문제도, 지금 생긴 문제도 아니라는 거예요. 페미니즘이라는 운동이 만들어진 이래로 그런 비난과 조롱은 늘 따라왔어요. 페미니즘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서프러제트(Suffragette) 운동' 당시에는 더 심했죠. 세상의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반대 집단은 필수불가결하게 있을 수밖에 없어요.
이제 이 반감의 물결을 우리가 계속해서 뚫고 나가야 해요.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하는 거죠. 왜냐하면 그들이 비난을 한다는 건 그들에게 우리의 목소리가 닿았다는 뜻이잖아요. 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해요.
속도는 느릴지 몰라도 페미니스트들은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고 있어요. 여성 참정권을 이뤄냈고, 우리나라를 보더라도 아직 부족한 점은 있지만 여성 정치인이 늘어났고 여성 대통령도 배출했죠. 그러니 '우리나라 페미니스트는 엉망이야'와 같은 극단적인 생각에 매몰되지 않는 게 중요해요. 계속 목소리를 내야죠."
- 활동하면서 백래시와 조롱을 많이 마주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 남성을 계속 만나야 한다고 강조하시는데, 어떤 방식으로 이끌어내야 할까요?
"사실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며 마주하는 낙인과 조롱은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저희가 이야기하는 것은 1+1=2 같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세상에서 우리가 안다고 믿었던 것들을 뒤집고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과정에서 불편함은 생길 수밖에 없어요.
여기서 그래도 '남성들을 계속 만날 것인가', '그들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득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어요. 왜냐하면 저희가 하고 싶은 것은 남성들을 변화시키는 것인데, 만나서 싸우기만 하면 서로 기분만 상할 뿐 변화는 생기지 않잖아요.
그래서 남성들이 집중할 수 있는 언어와 방법, 장소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최근 남함페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남성들이 느끼는 외로움'이에요. 왜냐하면 남성들은 서로를 돌보지 않거든요. 그러다 보니 그 결핍을 여성에게 의존해 해결하려고 해요.
그래서 이를 남성끼리 함께 해결해 보고자 행사를 진행했어요. 자신의 속사정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면,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마음이 풀리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모습을 직접 마주했어요.
결론은 남성들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는 거예요. 대화를 통해 저변을 넓혀간다면 느리더라도 우리 주변부터 더 안전해지고,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요?"
왜 더 많은 남성이 말해야 하는가
- 남함페는 기존의 남성성이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남성성을 하나의 모습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규정하는 순간, 똑같은 피라미드 구조가 모습만 바뀐 채 재생산되는 거예요.
지금 사회도 과거와는 다른 형태의 피라미드 구조를 보이고 있어요. 과거에는 힘세고 과격한 남성이 가장 권위를 가졌다면, 지금은 좀 더 세심한 남성들이 위계를 차지하고 있죠. 그렇다고 해서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남성성의 모습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 위계적인 질서를 타파하는 거예요.
저희 남함페는 위계질서가 강한 남성 사회에서 그 위계에서 벗어나도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해결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온 게 <여성신문>의 연재 중인 '미스터 페미니즘'이에요. 이 피라미드 밖에 있는 남성들의 삶도 충분히 괜찮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면, 느리더라도 위계적인 질서가 무너지지 않을까요?"
이러한 문제의식은 해외 남성 해방 운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네덜란드 남성 해방 운동단체 이멘시페이터 재단 설립자인 옌스 판 트리흐트는 지난 2023년 5월 18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분법적 성별 고정관념에 근거한 남성성 규범은 남성에게도 해롭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통해 남성성에서 해방된다면, 남성은 그동안 '남자답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을까 봐 무시하고 부정하며 억눌러 온 자질을 포용하고 발전시키면서 개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여성, 사랑하는 사람, 아이들, 세상과의 관계도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 과거에 '언젠가 페미니즘이 당연한 것이 되어서 남성과 함께라는 수식어가 무의미해지는 날이 올 수 있길 바란다'고 했는데, 왜 더 많은 남성이 페미니즘을 본인의 영역으로 받아들이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사회 구조적으로 여성 페미니스트들이 이 의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에요. 너무 큰 위험을 수반하기 때문이죠.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상대적으로 폭력 등 보복 피해 가능성이 적은 남성들이 이 의제를 이야기함으로써 파급력이 더 커질 수 있어요.
남성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페미니즘이 정말 당연하고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본인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목소리를 내는 데 머뭇거리지 말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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