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손 빌려 ‘중고차 불신’ 씻어낸다

‘위잉, 찰칵-’ 매물로 나온 중고차 차량번호를 입력하고 ‘점검’ 버튼을 누르자, 검사장의 원형 회전판에 들어선 중고차를 향해 로봇팔 4개가 동시에 다가갔다. 로봇팔은 차량 표면에 할로겐램프로 짧고 강한 열을 가한 뒤, 열화상 카메라로 문짝·펜더·범퍼 등을 찍으며 구석구석을 훑기 시작했다.
29일 인천 서구 피알앤디테크베이에서 만난 이지원 헤이딜러 팀장은 ‘헤이딜러 아이’ 모니터에 뜬 색지도를 가리키며 “인공지능(AI) 분석 결과 조수석 뒤 펜더에서 도장과 판금 흔적이 확인됐다”며 “차량 성능점검기록부에는 교환·판금 이력이 없다고 돼 있는데, 사람 검사원이 미처 찾아내지 못한 사고 흔적을 AI가 열화상 스캔 데이터를 픽셀 단위로 분석해 잡아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중고차의 외장 검사는 숙련된 검사원이 맨눈으로 외관을 살피고, 경험에 따라 표면 상태와 수리 여부를 판단하는 게 일반적인데 AI를 통해 더 빠르고 정확한 진단이 가능해졌다. AI로 중고차의 수리흔적을 검사하는데 걸린 시간은 단 105초, 사람 검사원이 약 15분 정도 하던 검사시간을 약 88% 단축한 것이다. 하루 최대 160대의 차량을 진단할 수 있다. 헤이딜러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시작한 ‘헤이딜러 아이’의 검수 차량 3200여대 중 검사원이 ‘완전 무사고’로 분류했던 차량 중 약 37.4%에서 수리 흔적이 확인됐다.
정보 비대칭성으로 대표적인 ‘레몬마켓’(판매자·구매자 사이의 정보 차이가 커서 나쁜 상품이 좋은 상품을 밀어내는 시장)으로 꼽히던 중고차 시장이 AI로 변화를 맞고 있다. 헤이딜러는 개별 차량의 AI 검사 결과와 검사 장면을 녹화해 플랫폼에 올리고 있다. 소비자가 차량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구매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다른 중고차플랫폼 ‘KB차차차’는 그간 쌓아온 방대한 중고차 거래 빅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새로운 매물의 적정 시세와 잔존가치를 예측하는 ‘AI 시세’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엔카닷컴’도 그간 쌓아온 차량 거래와 이미지 데이터를 바탕으로 ‘엔카 비전 AI’를 개발해, 차량정보·옵션·차량사진 등록 등 반복적 업무를 자동화했다. 또 AI챗봇을 도입해 구매자가 대화하듯 자신이 원하는 차량을 좁혀 매물을 추천받을 수 있도록 했다.
완성차업계의 ‘인증 중고차’ 사업도 중고차 시장의 신뢰 회복과 외연 확대를 이끌고 있다. BMW·메르세데스-벤츠 등 수입차 브랜드를 비롯해 현대차·기아도 2023~2024년 인증 중고차 사업에 뛰어들어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제조사가 직접 차량 상태를 점검해 품질 보증을 제공하고, 금융·보증 연계 등을 강화해 소비자 신뢰를 높인 것이다.
허위매물과 사고 이력 은폐 등으로 소비자 불신이 컸던 중고차 시장은 점차 신뢰를 회복하며 성장 속도도 가파르게 확대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모르도르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국내 중고차 시장 규모는 올해 251억6000만 달러(약 35조4400억원)에서 2031년 311억3000만 달러(약 48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신차 가격 상승과 고금리, 경기 둔화 등으로 합리적인 가격대의 차량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지만, 그간은 허위·미끼 매물과 차량 상태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시장 신뢰가 낮았다”며 “AI가 등장하며 차량 상태나 가격 등을 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됐는데, 점차 정보 비대칭성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줄어들고 시장의 자정 기능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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