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탈모가 삶의 질 문제라면, 희소질환은 삶 자체의 문제다

서이슬 2026. 6. 29.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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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사회적 차별과 삶의 질이 기준이 되는 사회 환영하지만... 희소질환 먼저 살펴야

[서이슬 기자]

청년 탈모 건강보험 적용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포퓰리즘이라지만, 외모로 인한 사회적 차별과 삶의 질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우선순위다. 그동안 선천성 희소질환 환자들의 삶의 질은 '생명이 위협 받는 중증'이 아니라는 이유로 언제나 후순위에 있었다.

내가 대표를 맡고 있는 '한국 PROS 환자단체'는 'KT 증후군'을 포함한 선천성 희소복합혈관이형성 질환 환자와 보호자들이 모인 곳이다. 흔히 '복합혈관기형'으로 불리지만, 나는 '기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기형'이라는 단어가 주는 함의를,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삶의 질이 중요하다면서, 정작 사각지대에 놓인 희소질환은?

KT증후군은 국내 환자 수가 500명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완치법은 없고, 일부 증상을 완화하는 약물이 시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맥과 모세혈관, 림프 등 혈관계의 여러 요소가 과도하게 자극을 받아 몸 곳곳에 모반과 정맥류가 생기고, 팔다리 중 한쪽이 커지고 길어지는 병이다. 남다른 외모로 인한 불편한 시선과 위축감, 사회적 차별, 삶의 질 저하는 내 눈에는 예쁘기만 한 내 아이가 지금껏 내내 겪어온 문제다. 그렇기에 묻는다. 사회적 차별과 삶의 질 저하가 건강보험 보장성의 기준이 될 수 있다면, 왜 선천성 희소질환 환자들은 여전히 건강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인가?

KT 증후군의 대표 증상으로 화염상 모반이 있다. KT증후군 환자들은 이런 모반을 전신에 걸쳐 갖고 있다. 그런데 이 모반을 옅게 만들어주는 레이저시술은 평생에 걸쳐 단 6회만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그것도 얼굴처럼 눈에 보이는 곳에 있어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는 경우"에 한해서만 건보 적용이 된다고 보건복지부 고시에 써있다.

선천성 희소질환자인 KT 증후군 환자들의 모반은 남에게 혐오감을 주니까 6번까지만 건보 적용을 해주고, 청년 탈모는 청년들이 위축되니까 건보 적용을 해주겠다는 건 앞뒤가 안 맞지 않은가? 게다가 KT증후군 환자들은 적어도 10회 이상, 평균 수십회 이상의 모반 레이저 치료를 받고 있는데, 6회까지만 건보 적용하겠다는 일괄적인 기준은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일까?

하지정맥류도 마찬가지다. KT증후군 환자들은 평생에 걸쳐 반복적으로 하지정맥류 시술을 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통증, 보행 장애, 궤양, 부종, 혈전증 등으로 일상생활이 어렵다. 하지만 대부분의 하지정맥류 시술은 비급여로 분류돼 있다. 희소질환 진단 코드를 받으면 산정특례 대상자가 되지만, 산정특례는 비급여 시술에 대해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비급여 앞에서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들
 6개월에 한 번, 50만 원을 들여 맞춰 신는 특수신발도 자부담이다
ⓒ 서이슬
그뿐만이 아니다. 나의 아이는 모반이나 정맥류 문제는 완전히 후순위로 밀릴 만큼, 다른 증상이 더 심하다. 척추측만증, 다리 부피 차이, 발 모양 변형으로 인한 보행 불편, 림프액 축적으로 인한 출혈 등으로 일상생활이 점점 더 버거워지고 있다. 사회는, 보건복지부 고시는, 이 아이의 몸을 보고 '혐오스럽다'고 할지 모르지만, 내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다.

그런 아이가 매일 아침 척추보조기, 붕대, 압박스타킹, 특수맞춤신발로 자신의 몸을 꽁꽁 싸매야 하는 모습을 봐야 하는 내 심정을 정부는 알고 있을까? 줄줄 새어나오는 림프액 섞인 출혈로 몇 시간에 한 번씩 붕대를 갈아치워야 하는 아이의 불편과 불쾌감은? 척추보조기 135만 원, 압박스타킹 12만 원, 특수맞춤신발 50만 원, 그 비용 모두 오롯이 부모가 감당하고 있는 사실은? 지난 3개월간 나는, 아이 수술 소견을 받고서 수술비 마련을 위해 일을 더 늘려야만 했다. 장애등록 해서 신발값이라도 아껴보고 싶은데 장애등록도 안 된다. 실손보험은, 당연히 못 들었다.

이 문제가 불거지면서 회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봤다. 전체 회원 150여 명 중 응답자는 74명. 이중 86.8%가 건강보험 적용의 한계 때문에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현재까지의 누적 본인부담금이 1천만 원을 넘는다는 응답이 40.8%, 3천만 원을 넘는다는 응답이 19.7%였다. 3명 중 1명은 비용 때문에 필요한 치료를 포기하거나 미룬 경험이 있다고 했다.

건강보험, 병명이 아니라 삶을 보장해야

청년 탈모의 사회적 영향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는 희소질환 환자들의 현실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사각지대에 놓인 희소질환자의 삶을 지키기 위해, 의학적 필요와 삶의 질을 중심으로 급여기준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 산정특례 제도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희소질환자에게 필요한 시술과 약제, 보조기, 신발 등 소모품에 대해 급여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

건강보험은 사람의 삶을 보장하는 제도여야 한다. 그런데, 내 주변에는 잦은 병원행으로 안정적인 직장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 치료비 걱정에 쓰리잡을 뛰는 부모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몸을 가지고 태어난 것을 미안해하는 어린 환자들이 있다. 지금은 성인이 된 한 회원은 과거를 돌아보며 이번 설문조사 의견란에 이렇게 적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결국 제가 먼저 치료를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청년들의 위축감과 삶의 질 문제를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건강보험 제도 안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삶을 위협 받는 희소질환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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