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도 복사집도 학생이 없다"…종이 사라진 캠퍼스
복사집 매출 곤두박질…대학 전자책 비중 30%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알맞은 변화 뒤따라야"
우웅, 철컥, 슈우욱.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 동문회관 1층. 나직한 기계 작동음 사이로 압축됐던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만이 한적한 공간을 채웠다. 사방에 켜켜이 쌓인 제본용 플라스틱 링과 표지들은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곳에서 3년째 복사집을 운영 중인 공유덕씨(49)는 "매년 매출이 20~30%씩 감소하고 있어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학교 안에 입주하면 사정이 좀 나을까 싶어 3년 전 역 주변에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기대는 무너졌다. 새 학기가 시작된다 해도 전공 서적을 제본하거나 교수가 올려준 강의 자료를 인쇄하려는 대학생들의 발길은 찾아보기 힘들다. 공씨는 "요즘은 논문마저도 종이로 보는 시대가 아니지 않느냐"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디지털화 바람이 대학가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두꺼운 전공책과 강의실 책상마다 펼쳐지던 종이 인쇄물은 자취를 감췄고, 그 자리를 태블릿과 노트북이 채웠다. 대학가의 터줏대감이었던 교내 서점과 인쇄소들은 수익성 악화로 소리 없이 문을 닫는 '무지(無紙)의 시대'를 맞이했다.
26일 아시아경제가 서울 지역 주요 대학 10곳의 서점 운영 현황을 조사한 결과, 최근 3년 새 최소 5곳의 교내 서점이 문을 닫았다. 2023년 8월 서강대를 시작으로 중앙대(2023년 10월), 성균관대(2024년), 한국외국어대·한양대(2025년) 등 서점들이 줄줄이 폐업했다. 공씨의 복사집이 들어선 공간 역시 지난해 6월까지 전공 서적을 팔던 서점이 자리를 뺀 곳이다.
학기 초마다 교재를 사기 위해 서점 앞에 길게 줄을 서는 풍경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동국대 재학생 조가연씨(24)는 "우리 학교도 서점이 한번 폐업한 뒤 중앙도서관에 조그맣게 다시 들어왔지만 대부분 이용하지 않는다"며 "수업에 가도 노트북만 켜놓거나 PDF 전자책을 다운받아 필기하는 게 훨씬 간편하고 공부 효율을 높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양대 재학생 한제인씨(23) 또한 "서점이 없어졌지만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며 "어차피 강의 교재를 노트북으로 내려받아 쓰기 때문에 스무 살 이후로 서점에 간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학생들이 종이책을 외면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와 가격 부담, 디지털 기기가 주는 편의성 때문이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대 태블릿 보유율은 2021년 33.4%에서 지난해 45.2%까지 늘었다. 절반은 태블릿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10대 보유율은 54.9%로 더 높았다. 학업 과정에서의 디지털화 흐름은 앞으로 한층 강해질 것으로 분석된다.
종이 대신 전자책(e북)을 선택하는 흐름도 수치로 증명된다. 교보문고가 온·오프라인 대학 교재 매출액을 분석한 결과, 전체 대학 교재 매출 중 종이책 대비 전자책 비중은 2021년 7.1%에서 해마다 성장을 거듭해 지난해 기준 29.9%까지 치솟았다. 5년 새 4배 이상 늘었다.
한 권에 1.5㎏에 달하는 두꺼운 전공 서적을 여러 권 가방에 넣고 다니는 물리적 수고를 기기 단 한 대로 해결할 수 있게 된 결과다. 수요가 몰리자 일부 대학가 주변에는 전공 서적을 파일로 변환해 주는 '스캔방'이 성업을 이루며 개강 시즌마다 예약이 밀리기도 한다.

종이가 사라진 캠퍼스는 상권의 변화를 넘어 대학 특유의 소통 방식도 바꿨다. 굵은 매직으로 시대를 호외하며 캠퍼스 벽면을 빼곡히 채우던 대자보는 이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에 밀려났다. 조별 과제를 위해 빈 강의실이나 동아리방에 모여 머리를 맞대던 모습은 줌(Zoom)이나 구글 미트 등 화상 채팅 애플리케이션(앱)과 노션 등 공유 앱을 활용한 디지털 협업으로 대체됐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러한 변화를 거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짚었다. 강 교수는 "요즘 어린 친구들이 종이보다 메모하기 편리하고 휴대하기 좋은 전자책 등에 훨씬 익숙한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며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수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인 만큼 대학가의 풍경이 바뀌는 흐름을 대세로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박호수 기자 lake@asiae.co.kr
이지예 기자 eas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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