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싸게 살 수 있으려나" 치열한 눈치싸움…'내 집 마련' 꿈 몰린 경매장
베테랑부터 전세사기 피해자까지 눈치싸움
2022년 대비 지난해 경매등기 61.5% 급증
잔금 대출 묶이면서 경매장도 양극화 경향
"지금 경매장은 현금 부자들의 리그예요."
지난 23일 오전 11시께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 112호 경매법정. 이날 감정가만 18억7899만원에 달하는 서울 구로구 오류동의 한 근린시설을 6억7540만원에 낙찰받은 유모씨(55)가 귀띔했다. 이 건물은 경매에서 다섯 차례 유찰되면서 최저입찰가가 6억1571만원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경매에 참여하기 위해 광주에서 올라왔다는 유씨는 "경매 투자로 여러 차례 쏠쏠한 수익을 거뒀다"며 "이번 건물은 재건축 후 매매 차익을 실현할 생각"이라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조금은 절박한 이유로 경매법정을 찾은 사람도 있었다. 절차가 낯선 듯 서류를 연신 들여다보던 조모씨(36)는 기자에게 "서류에 이렇게 적는 게 맞느냐"라고 물었다. 전세사기 피해로 보증금 1억6000만원을 떼였다는 그는 자신이 세 들어 사는 집의 경매에 참여했다. 조씨는 "경매로 넘어간 집을 낙찰받으면 피해액을 일부라도 회수할 수 있을 것 같아 처음 법원에 와봤다"고 말했다.
저마다 다른 목적을 갖고 법정을 채운 70여명은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였다. 아들의 결혼 선물로 빌라를 보러 온 중년 여성, 경매를 통해 '내 집 마련'에 도전하겠다는 청년들, 차익을 노리는 투자자까지 다양했다. 30년 넘게 경매 정보지를 배포해왔다는 60대 김모씨는 "오늘은 물건이 없어서 사람도 적은 편"이라며 "인기 있는 날은 몇백 명씩 몰려들어 미어터진다"고 설명했다.

자산 증식을 노리는 이들부터 주거 안정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이들까지 한데 몰리면서, 법원 경매장이 부동산 시장의 축소판으로 주목받고 있다.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의 실거주 의무가 적용되지 않아 틈새 투자처로 주목받던 과거와 달리, 다주택자 중과세 시행 이후 '내 집 마련'을 노리는 무주택자 위주로 재편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대출 규제 여파로 자금력이 넉넉한 응찰자가 유리해지면서 경매시장에서도 양극화가 나타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경매·공매에 의한 소유권이전등기 신청 건수는 올해 5월 기준 5328건으로 집계됐다. 2022년 3300건과 비교하면 4년 새 61.5% 급등했다. 2023년 3141건, 2024년 4137건, 지난해 4635건으로 매년 상승세다. 기자가 경매법정을 찾은 날 재개발사업이 예정된 서울 금천구 독산동 한 빌라에 6명이 몰리면서 3억1034만원에 낙찰됐다. 이는 감정가 2억6300만원보다 4734만원 높은 가격으로,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118.0%에 달했다.
법원 경매는 응찰자 등이 각자 원하는 가격을 종이에 적어 비공개로 제출한 뒤 한꺼번에 개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가장 높은 금액을 적어낸 사람이 낙찰받는 치열한 눈치싸움이다. 입찰표는 한 번 제출하면 수정이나 취소가 불가능하다. 차량 경매에 참여한 60대 이모씨는 최저입찰가 2480만원인 기아 쏘렌토에 2910만원을 써냈지만 낙찰 소식을 듣고도 웃지 못했다. 가격을 높여 적었지만 응찰자는 자신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지난번에는 더 높은 금액을 적어낸 사람에게 낙찰을 빼앗겨 500만원 높게 썼다"며 "오늘은 완전히 작전 실패"라고 눈을 질끈 감았다.

이날 경매가 진행된 매각물건 72건 중 실제 입찰자가 붙은 것은 15건에 불과했다. 물건당 응찰자는 1~6명 수준에 그쳤다. 법정을 채운 상당수는 공부하러 온 '경매 투어' 참가자였다. 부동산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한예령씨(28)는 "전세 매물은 줄어드는 데다 집값이 더 오를 거란 불안감 때문에 경매를 내 집 마련의 대안으로 본다"며 "가장 어린 수강생은 2004년생"이라고 전했다. 수학강사 여모씨(52)는 "유튜브로 경매를 공부하다가 분위기가 궁금해 현장을 찾았다"고 했다.
문제는 경매시장에 사람이 몰릴수록 자금력에 따른 격차도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 매매시장 진입이 어려워진 이들이 경매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정부의 대출 규제 기조가 이어지면서 발이 묶였다. 대출에 의존해야 하는 무주택 실수요자는 실제 입찰에 나서기 쉽지 않다. 낙찰자가 잔금을 치르기 위해 받는 '경락잔금대출' 문턱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은행은 낙찰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선순위 채권과 세입자 보증금 보호분 등을 반영해 대출 한도를 정한다.
앞서 오류동의 근린시설을 낙찰받은 유씨는 "체감상 대출 규제로 전체적인 경쟁률과 낙찰가가 하락하고 있다"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들까지 피해를 보지 않겠느냐"라고 지적했다.

여러 전문가는 대출 규제가 이어지는 한 경매시장에서도 자금력에 따른 격차는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특히 권리관계에 따라 유치권 등 예상치 못한 부담을 떠안을 수 있는 만큼 시세보다 저렴하게 취득할 수 있다는 기대만으로 접근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동산 시장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대출을 조일수록 돈을 빌리는 데 의존해야 하는 사람들은 고통받는다"며 "가계부채를 관리하기 위한 정책인 만큼 경매시장만 예외적으로 규제를 완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 집 마련을 위해 경매시장에 관심을 두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라면서도 "재정적 여력과 형편을 냉정하게 따져보고 철저한 준비 과정을 거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근 서울남부지법에서는 감정가 18억8000만원으로 책정된 영등포아트자이 아파트(전용면적 143㎡)가 172억9600만원에 낙찰되는 일이 벌어졌다. 응찰자가 17억2960만원을 적으려다 숫자 '0' 하나를 더 쓴 것으로 전해졌다. 낙찰을 포기할 경우 보증금 약 1억5000만원이 몰수된다. 매수 신고인은 매각 불허가 신청과 탄원서를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지예 기자 eas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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