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거래’ 확인한 중동 패닉…“이란전쟁은 재앙적 전환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 맺은 종전 합의가 중동 국가들의 동맹과 안보의 ‘재앙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을 전략적 동반자로 보고 미국 중심의 안보전략을 짜왔던 중동 동맹국들이 이번 전쟁과 합의 과정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적’ 시각을 확인하면서 오히려 이란과의 관계를 개선할 거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이란과의 합의 직후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중동 3개국을 연쇄 방문한 것도, 동맹국들의 불안감이 심각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안보 불신 확대…이란과 관계 개선 가능성
미 국무부는 24일(현지시간) 전날 루비오 장관의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과의 접견과 관련 “UAE의 리더십과 지원에 감사를 표하고 이란의 공격에 맞서 보인 용기와 끈기에 찬사를 보냈다”며 “UAE의 안보에 대한 미국의 공약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미 국무장관이 직접 UAE에 대한 안보 공약이 변함 없다는 점을 공식 문서로 남겨 공개한 것을 두고, 그만큼 UAE의 안보 불안이 커졌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루비오 장관은 UAE에 이어 곧장 쿠웨이트와 바레인을 찾아 동맹국들을 안심시키는 설득전을 이어갔다.
루비오 장관은 이번 순방 내내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에 그들(중동 동맹국)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하겠다. 그들은 우리의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CNN은 “걸프국들의 관심은 이미 미국의 안보 보장이 아니라 이번 합의가 전쟁 전보다 유리한지 여부로 옮겨갔다”고 보도했다. 이번 합의로 미국이 오히려 이란의 힘만 키워줄 수 있다는 우려다.

협상에서 미사일은 빼고…재건 기금 요구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에서의 군사적 긴장 고조를 우려한 중동 국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란 공습을 강행했다. 이란은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중동 국가들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가했지만 미국은 이를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더 나아가 이란과의 합의 과정에선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관리권을 인정하는 듯한 여지를 뒀고, 중동 국가들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이란의 탄도미사일 관련 사안은 아예 합의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란에 제공하기로 한 재건기금 3000억 달러에 대해선 한국을 비롯해 중동의 동맹국들이 대(對)이란 투자 형식으로 사실상 떠안도록 했다.
루비오 장관은 “3000억 달러 기금 문제는 아직 먼 이야기이며, 미사일 문제는 (핵 협상에서) 분명히 논의될 것”이라며 중동 국가들을 설득하고 있지만, 이란과의 협상은 협상의 출발점인 핵사찰 수용 여부를 놓고도 이견이 노출된 상태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하산 알하산 선임연구원은 CNN에 “미국이 이 지역에서 후퇴하는 더 큰 흐름의 일부”라며 “중동국의 관점에서 이번 전쟁은 역내 안보질서의 ‘재앙적 전환점’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미국이 점차 중동에서 발을 빼는 상황에서 이란으로 흘러들어갈 자금은 이란을 더욱 대담하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나토 수장에 “실망했다…충성하라”
중동 국가들의 우려는 이날도 확인됐다. 이날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한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이란의 탄도미사일 보유를 용인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모든 것을 언급할 수 없다”며 답변을 피했다. 탄도미사일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반박하기 어려운 상황일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 이란과의 합의에서 탄도미사일이 빠진 것과 관련 “이란만 갖지 못하게 막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라며 “이웃 나라들의 보유 수준에 맞춰 이란도 상대적인 비율로 미사일을 일부 가지는 것은 괜찮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뤼터 사무총장과의 회담 뒤엔 “우리는 (나토에) 실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 문제(이란 전쟁)에서 전혀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우리도 돕고 싶다’고 말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전쟁 지원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나토 동맹국을 몰아세웠다.
옆에 있던 뤼터 사무총장이 트럼프를 말려보려고 했지만, 그는 “나는 단지 그들(나토 동맹국)의 충성심을 원한다”며 “우리는 그들의 돈이 필요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전쟁을 시작하면서 ‘이란이 유럽을 공격할 핵무기와 미사일을 만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란 명분을 들었지만, 탄도미사일은 결국 합의 사안에서 빠졌다.
일각에선 루비오 장관의 이번 중동 순방국에 이스라엘이 빠진 것 역시 종전 합의 과정에서 미국과 의견 차이를 노출한 이스라엘의 입장을 배제하기 위한 의도란 해석도 나온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양해각서(MOU)에 따라 모든 전선에서 군사작전이 중단됐음에도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겨냥한 공습을 이어가는 것은 미국으로서 적지 않은 부담이다. 다만 25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 완충지대 일부에서 병력을 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과 29일 또는 30일 실무회담”
이런 가운데 루비오 장관은 MOU 이행을 위한 기술 협상팀이 “29일이나 30일에 다시 모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들은 여러 주제별 작업반으로 나뉘어있다. 그들은 스위스로 돌아갈 것”이라며 “내 생각에는 30일일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타히르 안드라비 파키스탄 외무부 대변인도 정례 브리핑에서 “회담은 다음주, 아마도 화요일(30일)에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며 “월요일(29일)이나 수요일(7월 1일)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과 이란이 본협상이 진행될 60일간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봉쇄를 해제하기로 합의한 가운데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호르무즈해협에 발이 묶였던 한국 선박 다섯 척이 추가로 해협을 빠져나왔다. 이들 선박엔 한국인 선원 총 21명이 승선하고 있다. 다섯 척 가운데 목적지가 한국인 선박은 한 척이다. 이에 따라 호르무즈해협 안쪽에 남아 있는 한국 선박은 13척으로 줄었다. 해협 내 한국인 선원은 외국 선박에 승선 중인 33명을 포함해 모두 87명이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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