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환율에 ‘속수무책’ 외환당국…달러 0.7% 오를 때 원화 6.7% 밀렸다

박세환 2026. 6. 25.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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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1540원대를 넘나들며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등은 원화 약세에 편승한 투기적 거래를 차단하기 위해 주요 외국환은행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외환공동검사에 나섰지만 시장 불안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539.1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지만, 다음 날 오전 2시 야간 거래에서는 1559.0원으로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8일 외환당국의 공동 구두개입 이후 2거래일 연속 하락했지만, 10일 공동검사 착수 당일 다시 상승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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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 은행 환전소 모니터에 달러 원화 구입가가 1600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뉴시스

원·달러 환율이 1540원대를 넘나들며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등은 원화 약세에 편승한 투기적 거래를 차단하기 위해 주요 외국환은행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외환공동검사에 나섰지만 시장 불안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최근 환율 급등은 단순한 ‘강달러’ 현상으로만 보기 어렵다. 올해 초와 비교해 최근까지 미국 달러 가치가 주요 교역 상대국 통화 대비 0.7% 오르는 동안 원화 가치는 6.7%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달러 강세 폭보다 원화 약세 폭이 10배 가까이 컸던 셈이다. 글로벌 달러 강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원화 나홀로 약세’가 나타난 것이다. 해외투자 확대와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거래 증가 등이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5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에 따르면 Fed의 명목 광의 달러지수는 지난 1월 2일 119.6059에서 지난 18일 120.3958로 0.7% 상승했다. 명목 광의 달러지수는 미국의 주요 교역 상대국 통화를 무역 비중에 따라 반영한 지표다. 유로화 비중이 큰 달러인덱스(DXY)보다 글로벌 달러 흐름을 넓게 보여주는 지표로 평가된다.

반면 같은 기간 원·달러 환율(Fed 자료 기준)은 1달러당 1444.45원에서 1540.64원으로 6.7% 뛰었다. 달러 가치가 주요 교역 상대국 통화 대비 0.7% 오르는 동안 원·달러 환율은 그보다 10배 가까운 폭으로 상승한 것이다. 원화 약세를 단순히 ‘달러가 강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단순 계산으로 보면 차이는 더 뚜렷하다. 원·달러 환율이 Fed의 명목 광의 달러지수 상승률만큼만 움직였다면 지난 18일 환율은 1454원 안팎에 그쳤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환율은 1541원 수준이었다. 약 87원은 글로벌 달러 강세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원화 고유 약세분으로 볼 수 있다.

24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하고 있다. 뉴시스

실제 환율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2.7원 오른 1541.8원에 주간거래를 마쳤다. 주간 종가 기준으로 원·달러 환율이 1540원을 넘어선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이후 17년 만이다.

이례적인 것은 한국 경제의 대외지표가 나쁘지 않다는 점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4월 경상수지는 282억9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올해 1~4월 누적 경상수지 흑자는 1026억7000만 달러에 달했다.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5월 수출도 전년 동월 대비 53.2% 증가한 877억5000만 달러로 월간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도체 수출은 169.4% 급증하며 전체 수출 증가세를 이끌었다.

통상 경상수지 흑자가 커지면 국내로 들어오는 달러가 늘어 원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한다. 반도체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무역수지와 경상수지가 대규모 흑자를 내면 환율은 내려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최근 외환시장에서는 이 공식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한국이 상품과 서비스를 팔아 달러를 벌어들이는 속도보다 국내외 투자자가 달러를 사들이거나 해외로 빼내는 속도가 더 빠르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배경으로는 해외투자 확대가 꼽힌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해외 증권투자는 1403억달러로 2024년(670억달러)의 두 배를 넘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도 같은 기간 3.6%에서 7.5%로 뛰었다. 개인투자자의 해외주식 투자도 미국 주식 중심으로 빠르게 늘었다. 한국예탁결제원 집계에서 지난해 3분기 말 국내 투자자의 외화증권 보관금액은 2202억6000만달러로 전분기보다 19.4% 늘었고, 이 가운데 외화주식 보관액만 1660억1000만달러에 달했다. 특히 외화주식 보관액의 93.7%가 미국 주식이었다.

여기에 국민연금도 지난 3월 말 기준 금융부문 자산의 58.1%(886조2000억원)을 해외에 투자하고 있다. 한국이 수출로 달러를 벌어도 개인과 기관이 해외 주식·채권·대체투자를 늘리기 위해 다시 달러를 사들이면 외환시장에서는 원화 매도와 달러 매수가 동시에 발생한다. 경상흑자가 곧바로 원화 강세로 이어지던 과거와 달리, 금융계정의 달러 수요가 환율 흐름을 더 크게 흔드는 구조가 된 셈이다.

22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 환전소에 원·달러 환율 등 통화별 환율이 표시돼 있다. 뉴시스

미국 재무부도 지난 1월 환율보고서에서 원화 약세의 배경으로 해외투자 확대를 꼽았다. 문제는 한국이 달러를 못 벌어서가 아니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2024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1년간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GDP의 5.9%에 달해 1년 전(4.3%) 보다 비중이 확대됐다. 하지만 같은 기간 민간의 해외 주식·채권 투자 자금 유출은 1070억달러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에 머물기보다 해외투자 수요로 다시 빠져나간 것이다.

재무부는 특히 국내 개인투자자의 해외주식 매수 확대를 주요 원인으로 봤다. 낮은 배당 성향, 낮은 주가순자산비율(PBR), 재벌 중심 지배구조 등으로 국내 증시에 머물 자금이 해외로 이동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한은 분석도 비슷하다. 해외투자가 평균보다 3% 늘면 원·달러 환율을 약 0.7%포인트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지금의 원화 약세는 단순히 달러가 강해서가 아니라, 한국이 벌어들인 달러가 해외자산 매입 수요로 다시 빠져나가는 구조적 변화와 맞물려 있다는 뜻이다.

국내 기관투자가의 해외자산 잔액도 이미 거대한 규모로 불어났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주요 기관투자가의 외화증권 투자 잔액은 5033억3000만 달러에 달했다. 1분기에는 중동전쟁에 따른 주가 조정과 미국 국채금리 상승 등으로 잔액이 전 분기보다 42억6000만 달러 줄었지만, 전체 규모 자체는 5000억 달러를 웃돈다. 국민연금과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 장기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해외투자를 늘릴수록 외환시장에는 상시적인 달러 수요가 만들어진다.

외국인 자금 흐름도 원화 약세를 키우고 있다. 최근 국내 증시가 빠르게 오른 뒤 외국인 투자자의 차익 실현성 매도가 나오면 주식 매도대금은 달러 환전 수요로 이어진다.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팔고 달러로 바꿔 나가면 외환시장에서는 원화 매도와 달러 매수가 동시에 발생한다. 정부도 최근 원화 약세의 원인 중 하나로 외국인 투자자의 차익 실현과 포트폴리오 조정을 지목했다. 수출이 좋아도 금융시장에서 달러가 빠져나가면 환율은 쉽게 내려오지 않는다.

역외 NDF 시장의 영향력 확대도 원화 약세를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NDF는 만기 때 실제 원화를 주고받지 않고 약속한 환율과 실제 환율의 차액만 달러로 정산하는 선물환 거래다. 현물 달러가 오가지 않지만, 역외시장에서 형성된 원화 약세 기대는 다음 날 서울 외환시장의 개장 가격에 영향을 준다. 밤사이 뉴욕 등 역외 NDF 시장에서 환율이 오르면 서울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이를 기준으로 호가를 제시한다. 역외시장의 가격이 서울 외환시장의 출발점을 끌어올리는 셈이다.

8일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 은행 환전소 모니터에 달러 원화 구입가가 1600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뉴시스

최근에는 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흐름도 뚜렷해졌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NDF 일평균 거래액은 155억5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44.9% 증가했다. 전 분기와 비교해도 33억8000만 달러, 27.7% 늘었다. 전체 선물환 거래 규모 189억4000만 달러 가운데 대부분을 NDF가 차지했다. 비거주자의 NDF 순매입 규모도 지난해 4분기 53억7000만 달러에서 올해 1분기 270억3000만 달러로 확대됐다. 원화 약세에 베팅하는 역외 거래가 커질수록 국내 환율도 그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야간 시간대 환율 상승폭이 주간 거래보다 커지는 현상도 외환당국이 주시하는 대목이다. 낮에는 외환당국의 구두개입과 실개입 경계감이 작동하지만 거래량이 줄어드는 야간에는 작은 주문에도 환율이 크게 출렁일 수 있다. 지난 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539.1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지만, 다음 날 오전 2시 야간 거래에서는 1559.0원으로 마감했다. 주간 종가보다 19.9원 높은 수준이다. 같은 날 뉴욕 등 NDF 시장에서도 원화는 장중 1560원을 넘어섰다.

원화가 엔화·위안화 등 아시아 통화와 함께 움직이는 특성도 부담이다. 글로벌 투자자는 원화를 한국 경제만 보고 거래하지 않는다. 원화는 엔화, 위안화, 대만달러 등 아시아 제조업 통화 묶음 안에서 같이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중국 경기 불확실성, 일본 통화정책 변화, 미국 금리 전망이 겹치면 원화도 동반 약세 압력을 받는다. 한국의 수출과 경상수지가 좋더라도 아시아 통화 전반에 대한 투자심리가 나빠지면 원화만 따로 강세를 보이기 어렵다.

고환율 국면에서 한은과 금감원은 지난 10일부터 시장 공동검사에 착수했다. 외국환은행이 직접 외화 시세를 변동 또는 고정하거나, 투기 세력에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외환시장 안정에 지장을 초래했는지 점검하기 위한 조치다. 한은과 금감원의 외환 공동검사는 2012년 10월 이후 13년 6개월 만이다.

당국은 이번 검사에서 야간 거래와 NDF 시장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본 것으로 알려졌다. 주간보다 거래량이 적은 시간대에 일부 시장 참가자의 일방향 거래가 환율을 과도하게 밀어 올렸는지, 외국계 은행을 통한 원·달러 NDF 거래가 환율 상승을 부추겼는지 등이 핵심 점검 대상이다.

다만 공동검사는 아직 완전히 마무리된 상태는 아니다. 1차 현장검사는 끝났지만 서면자료 등 추가 제출이 필요한 부차적 절차가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은 제출 자료와 현장검사 내용을 토대로 외환시장 질서를 교란한 행위가 있었는지 추가로 들여다볼 방침이다.

21일 서울 명동 한 환전소에서 이용객들이 환전을 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나 공동검사 착수 이후 2주가 넘도록 시장 안정 효과는 제한적인 모습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8일 외환당국의 공동 구두개입 이후 2거래일 연속 하락했지만, 10일 공동검사 착수 당일 다시 상승 전환했다. 이후에도 환율은 1500원대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외환당국이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구두개입은 단기적으로 시장 심리를 누르는 효과가 있지만 달러 수급 자체를 바꾸기는 어렵다. 외환보유액을 활용한 달러 매도 개입도 가능하지만 고환율이 장기화할 경우 실탄을 무한정 쓸 수 없다.

한은은 올해 기준금리 인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기준금리를 올리면 원화 방어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가계부채와 내수 둔화 부담을 키운다. 환율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내수와 부동산, 취약차주 부담이 커지고 금리를 내리면 한·미 금리차와 달러 수요 부담이 커지는 딜레마가 생긴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환율을 잡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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