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포기 각서 받고 잠 못 들던 엄마의 대변신

이동철 2026. 6. 25.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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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철의 노동OK] 노동감독관 증원, 노동 인권 감수성 충만한 노동 행정으로 이어지길

[이동철 기자]

제가 노동 상담일을 직업으로 삼게 된 계기는 엄마 때문입니다. 엄마는 평생을 식당 일을 했습니다. 15년 전 경기도의 어느 관광 호텔에서 '찬모'로 불리는 조리사 보조 일을 했습니다. 예식장을 겸하는 호텔에서 숙박객과 하객들의 음식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숙박객의 아침을 마련하기 위해 새벽같이 출근했습니다.

새벽 별 보며 출근해 밤에 달 보며 퇴근한 엄마한테 날아온 것
 평생 식당 일을 해 온 엄마가 겪은 일.
ⓒ _cybelle on Unsplash
사업주인 호텔 회장은 찬모님의 음식 솜씨가 좋다며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근로 계약으로 정하지도 않았던 교대 근무 직원들 밥까지 챙겨 달라 부탁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요. 엄마는 그렇게 새벽에 별을 보며 출근해 밤에 달을 보며 퇴근할 만큼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장은 엄마를 불러 사직서를 내밀었습니다. 퇴직금 포기 각서가 뒷장에는 담겨 있었습니다. 최저임금이 올라 엄마를 비롯한 직원들의 임금을 올려줘야 해 사업주로서는 인건비 부담이 커졌습니다. 가장 경력이 높은 엄마를 자르고 신입 찬모를 채용하기로 정한 겁니다.

생계가 막막한 엄마는 고민해 보겠다고 했지만, 회장은 지금 사직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주방 일을 하는 동안 남은 음식과 식재료를 집에 가져간 엄마의 행위를 절도죄로 고소하겠다 협박했습니다. 당시 그 사업장에서는 조리 책임자가 남은 음식들을 집에 가져가는 걸 허락해 줬습니다.

동료들까지 처벌 받을까 두려웠던 엄마는 퇴직금을 포기하고 수년 간 정들었던 호텔을 그만뒀습니다. 적당히 현실에 타협할 나이의 엄마였지만, 그 상황이 쉽사리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했습니다. 일이야 새로 구하면 되지만 엄마는 분노와 허탈감에 며칠 밤을 잠을 못 자고 뒤척였습니다.

차마 어쩌지 못하는 억울함, 몸을 갈아 넣고 감정을 소진해 가며 일을 하고 그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못 받는 일은 이처럼 억울한 일이었습니다. 보다 못한 저는 이리저리 근로기준법 내용을 뒤져가며 진정서라는 걸 처음으로 썼습니다.

근로기준법에는 이미 제공한 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대가인 임금은 퇴사 후 14일 이내에 전액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인 퇴직금을 사전에 포기하기로 정한 각서도 효력이 인정되기 어렵다는 점도 알았습니다.

억울한 사건의 경위와 사용자의 법 위반 사항을 담아 절절하게 작성한 진정서를 들고 엄마는 일하던 사업장을 관할하는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을 찾았습니다. 쭈뼛거리며 민원실을 찾는 엄마에게 어느 여성 근로감독관이 어떻게 오셨느냐 친절하게 물었고 엄마는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시냐"며 엄마에게 사건 진정 절차를 안내한 그 근로감독관은 엄마의 사건 담당자가 되었습니다.

국가가 내 편이라 느껴질 때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월 14일 서울 서초구 양재 엘타워에서 열린 현장 감독관과의 대화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2026.1.14
ⓒ 연합뉴스
엄마는 국가 기관을 방문했을 때 그렇게 친절하고 자기편을 들어 주는 공무원을 만난 기억이 별로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진정서에서 법 적용 내용이 틀린 부분과 주장 내용을 입증할 만한 방법을 엄마에게 조곤조곤 설명해 줬습니다. 그렇게 다정하던 근로감독관은 노동청의 출석요구에 묵묵부답이던 사용자에게는 추상같이 처벌의 가능성을 통보하며 체불된 퇴직금이 청산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엄마를 도왔습니다.

엄마의 일을 계기로 노동단체에서 노동 상담일을 시작하고 엄마와 같은 사례가 보편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느꼈습니다. 제가 일하는 상담소를 찾아오는 수많은 노동 사건, 피해자들이 정부 노동 행정의 무력함을 비판합니다.

사장님이 연장 근로를 시켜 놓고도 연장 근로 가산 수당을 주지 않아 고용노동지청에 진정한 어느 청소년 노동자에게 담당 근로 감독관은 진정 취하를 종용했습니다 "소비 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을 먹었다고 사업주가 맞고소할지도 모른다"라며 겁을 잔뜩 주면서 말입니다. 게다가 청소년 노동자가 주장하는 연장 근로의 증거가 없다며 양쪽의 주장이 엇갈려 수당의 지급을 명령할 수 없다고 했답니다. 그 감독관의 말에 그 청소년 노동자는 "세상이 이런 거냐며 다시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겠다"라고 분노했습니다.

피해 노동자들이 가장 분통을 터뜨리는 일은 그들의 처지를 살피지 못하고 사무적으로 대하는 공무원들의 냉정함이었습니다. 부당 해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해 노동자에게 "부당해고 사건은 지방노동위원회로 가야지 왜 노동청에 왔냐?"며 호통치는 근로감독관에게 고개 숙여 죄송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는 어느 상담자의 사연이 기억납니다.

노동 행정 절차와 법적 지식이 부족한 현장 노동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입니다. 이러한 피해 노동자들이 엄마가 만났던 그 근로감독관을 만났더라면 어땠을까요?

정부는 안전한 일터와 공정한 노동 시장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도록 노동감독관(지난 3월 근로감독관에서 노동감독관으로 명칭 변경)을 지난해에 1000명을 증원하고 올해도 1000명을 증원할 계획입니다. 그동안 업무량이 많아 피해 노동자들의 사건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없었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임금체불이나 산업재해 등 노동자의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노동 현장에 대한 적절한 예방적 지도·감독도 잘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증원된 노동감독관, 전태일을 만나다
▲ 전태일 열사 54주기 전태일 열사 54주기인 지난 2024년 11월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 다리에서 전태일 재단 소속 노동자들이 추모 분향소를 마련하고 있다.
ⓒ 이정민
물론 노동감독관의 수만 늘어 났다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만난 신임 노동감독관 교육을 담당하는 노동부의 간부는 걱정했습니다. 여전히 노동감독관 업무가 절대적 업무량이 많고 노사 양측으로부터 많은 민원에 시달리는 상황이라 기피 업무가 되었다고 말입니다. 전문성을 키우기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부는 이들이 노동 인권의 감수성을 바탕에 두고 노동 사건 수사 역량과 사업주의 법 위반 가능성을 줄이는 예방적 노동 행정 역량까지 키워 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최근 새로 임용된 610여 명의 고용노동부 노동감독관들이 전태일 기념관에서 직무 교육을 받는다는 소식을 언론으로 접했습니다. 1970년대 평화시장 재봉사로 일하며 동료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스스로를 불살랐던 그의 희생과 용기를 기리기 위해 마련된 공간에서 노동감독관들이 자신의 직무를 시작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앞서 엄마가 살아가며 가장 억울했던 일 중의 하나인 퇴직금 포기 사건은 국가의 노동 행정 기능이 정상 작동하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엄마는 국가에 대한 믿음이 커졌습니다.

그 사건 이후 엄마는 5인 미만으로 영세한 산업단지의 공장 식당을 전전하며 일했습니다. 사업주와 합의해 고용보험 같은 4대 보험은 적용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나라에서 시키는 일이니 해야 한다고 고용센터가 운영하는 영세사업장 고용지원 제도를 찾아 사업주를 설득했습니다. 법이 제대로 작동해 효능감을 느낀 시민이 정부에 대해 느끼는 신뢰는 이다지도 큰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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