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다마고치·카프리팬츠의 귀환…‘느껴본 적 없는 향수’ 찾는 MZ 감성

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주말인 탓에 대부분의 매장이 문을 닫은 가운데 유독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 있었다. 구형 디지털카메라를 판매하는 매장들이다. 매장 앞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방문객들이 줄을 이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카메라를 이리저리 살피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약 40년째 카메라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규태씨는 “어느 순간부터 젊은 세대의 데이트 코스로 자리잡은 것 같다”며 “디자인을 중요하게 보는 사람도 있고 푸르거나 노리끼리한 특유의 색감을 찾는 등 취향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고화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지만 Z세대가 20여년전 유행했던 디지털카메라를 찾아 나서고 있다. 다마고치와 MP3 플레이어처럼 한때 자취를 감췄던 전자기기와 Y2K(2000년대 초반) 패션도 다시 주목 받고 있다. 경험하지 못했던 과거를 새롭게 즐기고,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레트로 소비가 확산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일본 중고거래 플랫폼 메루카리를 통해 카메라를 구매했다는 대학원생 이모(26)씨는 “굳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 행위가 낭만적으로 느껴진다”며 “그 시절을 제대로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그렇기에 새롭다. 느껴보지 못한 것에 대한 향수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구형 디지털카메라를 구매했다는 이모(25)씨도 “스마트폰은 사실적이지만 옛날 디카는 덜 사실적인 게 좋다”며 “화질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감성이 중요한 것”이라고 전했다.
과거 전자기기에 대한 관심은 중고 거래 시장에서도 확인된다. 당근에 따르면 최근 한 달(5월 18일~6월 17일) 다마고치 거래량은 전년 동기 대비 394% 증가했다. MP3 플레이어는 265%, 디지털카메라는 120% 늘었다. 턴테이블(47%)과 아이팟(32%) 등도 증가세를 보였다.
이 같은 흐름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일본 도쿄에서 디지털카메라가 판매 부활을 맞았다고 보도했다. 카메라·영상기기공업회에 따르면 독립형 카메라 출하액은 지난해 55억 달러로 5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었다. 디지털카메라 시장은 2010년 1억2100만대로 정점을 찍은 뒤 스마트폰 확산으로 2023년 770만대까지 줄었지만 지난해 940만대로 반등했다.
후지필름 관계자는 FT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피고 답해야 하는 기술 환경에 압도되고 있다”며 “이를 상쇄하려는 경향이 카메라 수요 증가의 배경 중 하나”라고 말했다.

레트로 열풍은 전자기기를 넘어 패션과 식품 등 소비시장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에 따르면 올해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 주인공은 슬림한 핏의 7~8부 기장 ‘카프리 팬츠’다. 지그재그가 2021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봄(3월 1일~4월 16일) 바지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2023년 처음 판매량 6위에 오른 카프리 팬츠는 올해 3위에 등극했다. 올봄 판매량은 2024년 대비 97배 증가했다.
허리선을 낮춘 로우라이즈 바지도 인기다. 올해 로우라이즈 판매량은 2023년 대비 576% 급증했다. 젤리슈즈도 돌아왔다. 여름철 비와 햇볕에 모두 강한 것은 물론 다양한 파츠로 신발을 꾸미는 ‘신꾸(신발 꾸미기)’ 트렌드가 맞물리며 최근 한 달(5월 10일~6월 9일) 젤리슈즈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3397% 올랐다.

유통·식품업계도 과거의 감성을 적극적으로 소환하고 있다. 다이소는 올해 초 ‘트렌드코리아 2026’ 기획전으로 초코파이와 빼빼로, 크라운산도 등 국민 과자 9종의 초기 패키지를 복원한 ‘근본이즘’ 시리즈를 선보였다. 라면 시장에서도 복고는 흥행카드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농심은 1975년 출시했던 ‘농심라면’을 재출시했고, 삼양은 우지(소기름)을 사용한 ‘삼양1963’을 선보여 호응을 얻었다. 기성세대에는 추억을, 젊은 세대에는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가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레트로 소비의 성격도 변화하고 있다. KPR 인사이트연구소에 따르면 레트로 감성 관련 연관어는 과거 ‘빈티지’, ‘LP’, ‘아날로그’ 등 과거의 스타일 재현 중심에서 최근 ‘위로’, ‘공감’, ‘낭만’, ‘어린시절’ 등 감정 중심으로 이동했다. 과거를 재현하는 복고를 넘어 감정까지 현재의 맥락에서 다시 경험하려는 ‘정서적 재발견 소비’로 전환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10~20대 초반에게 디지털카메라는 신문물이지만, 20대 중후반 이상에게는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을 떠오르게 한다”며 “단순히 제품을 사는 게 아니라 추억과 분위기를 소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동 조작이 필요한 카메라엔 불완전함의 매력이 존재한다”며 “첨단 기술보다 경험과 감성을 중시하는 탈기능주의 소비가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주은 기자 ju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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