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팀 막내 또 사표냈다…몰락한 ‘신의 직장’

30대 A씨는 5년 동안 다녔던 공기업을 지난해 퇴사하고 올해 민간 대기업으로 옮겼다.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직장이라 자부심이 컸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연봉과 높은 업무 강도, 경직된 사내 문화를 더는 버틸 수 없었다. A씨는 “본가가 있는 서울과 멀리 떨어져 지방에서 근무하는 것도 힘들었다”며 “연차가 더 쌓이면 결정하지 못할 것 같아 이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한때 ‘신의 직장’으로 불렸던 공기업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정년 보장 등 고용 안정성을 앞세워 대기업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지만, 최근에는 임금 경쟁력 약화와 지방 근무 부담 등을 이유로 회사를 떠나는 직원이 크게 늘고 있다.
23일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실 등을 통해 확보한 자산 규모 상위 10대 공기업의 최근 5년간 퇴사자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이들 공기업 중 6곳에서 의원면직 퇴사자가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의원면직은 정년 또는 명예퇴직이 아닌, 직원이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둔 경우를 뜻한다. 이 중 입사 10년 미만의 20~30대 저연차 직원의 퇴사가 뚜렷하게 늘었다. 국가 경제에 필수적인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공기업에서 젊은 인재의 이탈이 그만큼 심했다.

‘퇴사 러시’가 가장 두드러진 곳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다. 코레일의 의원면직자는 2021년 313명에서 지난해 602명으로 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퇴사자가 1601명에서 1774명으로 10.8% 늘어나는 사이 의원면직자는 92.3% 급증했다. 연령별로는 30대 이하 퇴사자가 지난해 579명(전체 퇴사자의 32.6%)으로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2021년 282명(17.6%)였던 것에서 배 이상 늘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정도 비슷하다. LH를 나간 이 가운데 의원면직자는 2021년 202명에서 지난해 246명이었다. 전체 퇴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5.3%에서 42.0%로 껑충 뛰었다. 특히 입사 1년도 안 된 퇴사자가 5년 사이 25명에서 62명으로 2.5배 늘었다. 한국수자원공사에서도 근속 10년 이하 퇴사자가 같은 기간 158명(45.8%)에서 191명(52.5%)으로 증가했다. 한국전력공사(한전)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한국석유공사 등 대형 에너지 공기업도 젊은 직원 탈출에 속수무책이었다. 지난해 의원면직자가 각각 160명(21%), 136명(31.3%), 20명(32.8%)으로 전체 퇴사자 10명 중 2~3명이 스스로 관뒀다.
공기업 퇴사가 증가하는 세부 이유는 기관마다 다르지만, 공통점으로는 과거에 비해 낮아진 연봉 경쟁력이 꼽힌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 통계를 보면 이들 10대 공기업의 올해 신입사원 초임은 3865만~5263만원 수준이다. 초임만 따지면 민간 대기업보다 크게 적다고 보기 어렵지만, 성과급과 임금 상승 속도, 직무별 보상 격차를 고려하면 과거만큼 압도적인 선호 직장이 아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500인 이상 대기업 대졸 초임은 구매력평가(PPP) 환율을 기준으로 5만5161달러로, 약 8000만원이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최근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민간 대기업이 임금에 더해 성과급까지 챙기며 공기업 직원의 불만도 상대적으로 커질 수 있다”며 “젊고 유능한 직원이 빠져나가는 것은 공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방 소재 한 공기업 관계자는 “우리 기관은 전문성이 중요한 분야인데, 지역에 있다 보니 인재 확보가 어렵다. 갈수록 민간 기업 대비 기관 역량이 떨어지는 게 체감돼 걱정이 크다”고 토로했다.
지방 순환 근무를 해야 하는 부담도 젊은 직원이 이탈하는 요인 중 하나다. 상위 10대 공기업 중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제외한 9곳은 본사가 수도권 밖에 있다. 출범 때부터 본사가 대전이었던 코레일을 제외하면, 한전·LH·도로공사·한수원·가스공사·수자원공사·석유공사·중부발전 등 8곳은 모두 과거 수도권 등에서 지방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한 비수도권 소재 공기업 관계자는 “예전에는 어렵게 들어온 공기업을 쉽게 그만두는 분위기가 아니었지만, 최근엔 입사 5년 내에 퇴사를 빠르게 결심하고 나가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었다”며 “미혼의 젊은 직원은 오지 근무와 순환 근무 등 잦은 이동을 단점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어 “수도권 통근버스가 끊긴 것도 알게 모르게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북에 본부가 있는 공공기관 직원인 30대 B씨는 “결혼 초기에는 주말 부부도 괜찮았지만 아이가 태어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며 “형편상 맞벌이를 계속해야 하는데 주중에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아내가 힘들어하는 게 눈에 보여 이직을 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했다.
도입한 지 8년이 지난 ‘공공기관 지역인재 의무채용제’의 부작용이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의 2024년 보고서를 보면, 광주·전남 지역을 의무채용 대상으로 하는 한전은 대졸 지역인재 전형 합격자(2018~2023년) 중 59%가 전남대, LH는 67%가 경상대 졸업자가 차지하는 등 특정 대학 편중이 뚜렷했다. 입법조사처는 “조직 구성이 특정 대학에 편중되면 기관 내 파벌 형성을 가져오고, 궁극적으로 공공서비스 품질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한 공기업 퇴사자 C씨도 “해당 지역인재가 아니면 배제되는 분위기가 스트레스였다”고 말했다. 임도빈 교수는 “진짜 지방에 애착이 있는 인재를 뽑으려면 초·중·고부터 해당 지역에서 생활했는지 등을 함께 봐야 한다”며 “단지 대학을 그 지역에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혜택을 주는 제도는 공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위상 의원은 “정부는 공공기관의 경직된 임금 체계와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인재가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정착할 수 있도록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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