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AI로 게임 만드는 시대… “경쟁력은 기술 아니라 맥락”
업무에 생성형 AI 도입 70% 넘어
“게임이 AGI 테스트 베드 됐다”
창작자 대체·저작권 등 우려

인공지능(AI)이 가져온 생산성 향상은 게임업계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개발 비용과 시간이 줄고 누구나 게임을 손쉽게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시장은 ‘초경쟁’ 국면에 들어섰다. 게임사에 AI가 단순한 도구 이상의 의미가 된 이유다. 쏟아지는 게임 속에서 차별화를 향한 게임사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공급 과잉은 수치로 확인된다. 스팀 연간 출시작은 지난해 2만개를 넘어서며 5년 새 배 이상 늘었다. 신작 3개 중 1개 꼴로 AI를 활용하면서 ‘슬롭(저품질 양산물)’ 범람 우려도 번지고 있다. 도입 속도는 국내에서도 두드러진다. 국내 게임업계의 생성형 AI 도입률은 70%로 콘텐츠 산업 가운데 가장 높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에서도 종사자의 72%가 업무에 AI를 활용한다고 답했다. 우려도 적지 않다. ‘게임 개발자 콘퍼런스(GDC) 2026’ 보고서에서는 생성형 AI가 산업에 부정적이라는 응답이 1년 새 30%에서 52%로 늘었다. 특히 저작권과 창작자 대체 문제에 종사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지난 17일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NDC)’ 둘째 날 강연에서 구글 딥마인드의 알렉상드르 무파렉 디렉터는 텍스트 한 줄, 영상 하나만으로 게임을 자율 생성하는 월드 모델 ‘지니’의 개발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니는 2024년 16프레임의 짧은 2D 환경에서 출발해 1년 반 만에 720p·초당 24프레임으로 물리·조명·중력까지 일관되게 시뮬레이션하는 ‘지니 3’로 발전했다. 텍스트를 플레이 가능한 3D 월드로 바꾸는 시험판 ‘프로젝트 지니’는 지난 1월 미국 구독자에게 처음 공개됐다. 지난달 ‘I/O 2026’에서는 스트리트 뷰와 결합해 실제 장소를 토대로 월드를 생성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그는 “비디오 게임이 범용인공지능(AGI)으로 가는 핵심 테스트 베드(시험대)가 됐다”고 평가했다.
국내 최대 게임 개발자 행사인 NDC의 대부분 강연이 AI로 채워졌다는 사실은 ‘AI 붐’에 대한 업계의 깊은 고심을 보여준다. 이 자리에서 제시된 해법은 ‘맥락’과 ‘안목’이었다. 이정헌 넥슨 일본법인 대표는 “모두가 같은 도구를 손에 쥔 시대라면 차이는 결국 게이머에 대한 이해와 공감에서 나올 것”이라며 “AI와 경쟁하려 하기보다 도구이자 수단으로 정의해 주도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대현 넥슨코리아 공동대표는 구현 비용이 적어질수록 경쟁력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이용자와 함께 쌓아온 경험·관계·커뮤니티 문화 등 ‘맥락 자본’에서 나온다고 진단했다.
게임사들의 차별화 시도는 이미 시작됐다. 지난해 ‘AI 퍼스트’ 기업 전환을 선언한 크래프톤은 지난 17일 ‘배틀그라운드’ 아케이드에 이용자가 AI 캐릭터 ‘엘라’와 팀을 이뤄 생존 경쟁을 하는 ‘얼라이 듀오’ 베타를 선보였다. 엔비디아 기술을 기반으로 한 이 협업형 캐릭터(CPC)는 음성으로 전략을 논의하고, 파밍·교전·생존 중 어떤 행동을 취할지 스스로 판단해 유연하게 대응한다.
엔씨의 AI 자회사 NC AI는 지난주 NDC에서 음성만 입력하면 얼굴 애니메이션이 자동 생성되는 기술을 공개하며 그래픽과 모션 품질이 상향 평준화된 시대의 차별화 요소가 ‘표정’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에서 펴낸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게임 이용률은 2022년 74.4%에서 지난해 50.2%로 떨어졌다. 매출 증가율도 1%대에 머물러 있다. 한 중견 게임사 고위 관계자는 “AI는 업계에 악재가 될 수도, 호재가 될 수도 있다”며 “AI가 생산성을 높이고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공급자 중심의 프레임을 넘어 수요와 선택의 관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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