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의 시대는 지났다…AI로 도래한 ‘알고리즘 전쟁’

심희정 2026. 6. 2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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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로 우위 선점할 수 있지만, 승리 담보는 어려워”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20세기 전쟁의 우위를 핵이 결정했다면, 21세기는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한 인공지능(AI)이 전쟁을 지배하고 있다. 최종 공격 결정을 내리는 주체가 사람 대신 AI로 바뀌면 전쟁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란 전쟁에서 확인했듯 전장에 침투한 AI는 이미 전쟁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23일 미 워싱턴 싱크탱크 전략국제연구센터(CSIS)에 따르면 미군은 이란전 첫 24시간 동안 1000개 이상 목표물을 타격했다. 이는 이전과 비교해 10배 증가한 수치다. 이란전 38일 동안 1만3000개 표적 작전에 AI가 활용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 국방부는 미군이 이란 내 주요 시설을 공습한 ‘에픽 퓨리’ 작전 기간 96시간 만에 2000발 이상의 폭탄을 투하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 국방부의 군사용 AI 플랫폼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MSS)’을 활용한 데 따른 것이다. MSS는 위성사진이나 드론 영상 등에서 차량이나 시설을 자동으로 탐지해 분류한다. 여러 출처의 정보를 한 화면에 모으면 AI가 의심 표적이나 움직임을 표시하고, 인간 분석관과 지휘관이 이를 보고 판단해 표적을 격추한다.

표적 선정 과정에 AI가 개입하면 공격 속도는 빨라진다. 미 중부사령부는 AI가 수 시간 또는 수일 걸리던 과정을 초 단위로 줄인다고 설명했다. 적국이 AI를 활용해 공격을 단행하면 사람의 의사결정은 이미 늦은 것이 되는 셈이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공군 장관을 지낸 프랭크 켄들은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시간”이라며 “인간이 감독하고 AI의 작동을 지켜볼 수는 있지만, 개입하려 들면 결국 전쟁에서 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CSIS는 “20세기에는 최초로 핵무기를 개발한 국가가 한 세대 동안 전략적 우위를 점했지만 21세기에는 자율 전쟁을 위한 통합 지휘 체계를 최초로 구축하는 국가가 이와 유사한 우위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며 “치명적인 결정을 내리는 주체는 더 이상 비행하는 무기가 아니라 그것을 지휘하는 소프트웨어”라고 분석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다만 기술의 진화가 반드시 전쟁의 승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란 전쟁에서도 미군은 군사력에서 앞섰지만 전략에서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차정미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군사력이 압도적 우위에 있다고 해서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다. 약한 군사력을 가진 국가들이 꼭 패배하지는 않는다”며 “미군이 AI를 활용한 군사력에서는 일정한 우위를 점했지만, 전투의 기술이 모든 것을 압도하지는 않기 때문에 미국은 기술이 실패했다기보다 전략이 실패했다고 평가하는 게 더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국방연구원 박재혁 연구위원은 ‘미국-이란 전쟁 분석: 기술·경제안보 차원의 시사점’ 보고서에서 “항모 전단과 첨단 AI 기술이 투입된 압도적인 기술 우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완전한 군사적 승리를 달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마치 ‘다윗과 골리앗’과 같은 구조적 역설이 있다”며 “AI의 정밀 타격이 아무리 완벽하더라도 분산된 의지를 지닌 저항 세력을 완전히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정밀성 이상의 정치적·외교적 수단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란 전쟁은 AI가 전장의 지휘통제 체계로 기능하는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실증하는 동시에 기술 우위만으로는 전략적 승리를 담보할 수 없다는 고전적 명제를 AI 시대에 재확인했다”며 “개전 24시간 내 1000개 표적을 무력화하는 AI의 압도적 속도 우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란의 분산된 모자이크 방어와 저단가 드론 소모전 앞에서 결정적 우위를 발휘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사진과 공습에 파괴된 이란 여자초등학교 모습. AP연합뉴스


잘못된 표적 정보와 AI 기반의 판단이 잘못 결합할 경우 생기는 문제도 치명적이다. 지난 2월 28일 이란 남부 미나브 지역의 한 여자 초등학교가 공습을 당해 최소 175명이 숨졌다. 미군의 표적 설정 오류로 인한 오폭으로 알려졌는데, 7년간 갱신되지 않은 위성사진을 사용한 것이 원인으로 꼽혔다. AI의 직접적 개입은 없었지만 잘못된 표적 설정과 부실한 검증에 AI가 관여했을 경우 책임 소재가 모호해지는 문제가 빈번하게 생길 수 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는 “AI 기반 표적 설정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위험을 완화하고, 잘못된 목표물을 타격해 민간이 사상자를 발생시키는 오류를 줄이기 위한 국제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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