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이명과 코골이

2026. 6. 23.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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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식 수필가

일찍 찾아온 더위를 피해 친구들과 산을 찾았다. 기왕이면 안 가본 곳을 가자는 말에 충청북도 영동, ‘무진장’으로 불리는 무주·진안·장수에서 순창으로 가는 코스를 잡았다. 친구들 중 누군가는 새소리 좋은 영동에 가면 세상을 잊고, 물소리 좋은 무진장에 가면 나를 잊게 된다는 말도 보탰다.

잘 닦인 지방도에서 샛길로 들어서자 작은 마을들이 보였다. 영동의 마을 어귀에서는 까치와 까마귀가 찢어지는 울음소리로 영역 다툼을 벌이다 서로 지쳤는지 이내 조용해졌다. 모내기를 끝낸 마을 앞 논에는 참개구리 한 마리가 논물에 몸을 반쯤 담근 채 눈만 꺼벅거리고 있다. 논두렁 건너 작은 개울에는 왜가리가 한발을 구부린 채 우두커니 서 있다.

「 나는 알지 못하는 코골이처럼
내 단점을 스스로 알기는 어려워
일방적 주장은 코골이가 될 수도

김지윤 기자

흙냄새와 풀 냄새를 따라간 무주의 숲에서는 쫑긋 놀라는 고라니 가족과 조우하고 밭고랑을 어슬렁거리는 멧돼지도 보았다. 진안 마을 뒷산에서는 늙은 참나무에 겹겹이 붙어있는 운지버섯을 보며 생로병사를 실감하고, 꽃대를 타고 올라가는 무당벌레를 통해 생명을 느꼈다.

장수에서는 귀향한 친구 봉수를 만나 우화 같은 전쟁영화 ‘웰컴 투 동막골’을 연상케 하는 마을에 들렀다. 일행은 등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추억 속 칡뿌리를 다시 씹어봤다. 봉수는 칡이 위장에만 좋은 줄 알았는데, 이웃의 권유로 칡을 씹은 후 이명이 가셨다고 했다. 이명 증상에 대해 자세히 묻자, 어릴 때 듣던 오포(午砲)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원래 오포는 정오(正午)를 알리는 대포소리인데, 농촌 사람들은 이 오포 소리로 점심때를 알았다. 인간의 대화가 시끄러웠는지 뒤영벌 한 마리가 오므린 호박꽃 봉오리 속으로 들어간다.

이명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친구가 코골이로 수면무호흡증이 생겨 양압기까지 껴야 하는 불편을 호소했다. “주변 사람들 말이 코를 그냥 고는 게 아니라 숨을 내뱉기도, 들이키기도 한데. 어떤 때는 물 끓는 소리까지 난다고 해 골방에서 혼자 자기도 했는데 코를 골다 갑자기 숨을 멈추기도 해 많이 불안했다네.”

두 친구의 대화를 들으며 불현듯 ‘이명(耳鳴)은 나만 알고 남은 모르고, 비한(鼻鼾) 즉 코골이는 나만 모르고, 남만 아는 일’이라고 말한 연암 박지원 선생의 비유가 떠올랐다.

연암은 이명과 코골이 비유를 통해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알고 보면 우린 자기의 단점을 스스로 알기 어렵고, 남이 단점을 지적해 주는 일도 드물어 자신이 코를 곤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사고·언행·표정에서 ‘코골이’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지간해선 자신에 대한 남의 생각을 알기 어렵다. ‘의사소통의 가장 큰 적은 의사소통이 잘 되고 있다는 착각’이란 말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입신양명’이나 ‘역경극복’ 같은 말과 함께 성장한 세대의 가르침도 젊은이들에게는 자칫 코골이가 될 수 있다.

나만의 세계에 빠져 있으면 사고의 전체성을 잃고 만다. 2차대전 무렵 간디는 독일의 침공을 우려하는 영국 의회에 ‘무기를 버리고 비폭력 무저항으로 맞서라’는 조언을 했다. 물론 영국은 간디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특한 간디가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간디는 세계를 인도로 보고 인도에서 먹혔던 민족애로 세계적 갈등을 풀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우리의 남북문제나 국제정세를 보는 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남의 창(窓)을 통해서만 진정한 우리를 볼 수 있다.

일상에서도 남과 소통하는 능력은 인격을 넘어 경쟁력이다. 문제는 남들이 나를 꺼려하는데 그 사실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경우다. 남들이 나를 피하면 고립되어 고독해진다. 사실 고독이나 유혹 같은 말속에는 은연중 남을 탓하는 뜻이 숨겨져 있다. 언제까지 누구를 탓하겠는가? 세상사 자작자수(自作自受)다.

일행은 여정의 마무리로 순창 ‘앵무새 농장’에 갔다. 앵무새에 다가가 “이름이 뭐야?”라고 묻자 앵무새가 ‘아하’라는 엉뚱한 답만 반복한다. 말도 뜻이 통해야 말이 된다. 교감과 소통이 안 되는 말은 그저 소리일 뿐이다. 요즘은 대화나 통화 대신 메신저로도 소통을 하다 보니 편향적 주장을 담은 긴 글도 상대방을 언짢게 해 ‘톡화(talk禍)’를 부를 수도 있다. 조심해야 한다.

곽정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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