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속 세균, 장까지 이동… 간질환 악화·사망 위험 높인다

평소 건강한 구강 관리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입속 세균이 장으로 이동해 간병변과 간암 등 간질환을 악화시키고 사망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한림대춘천성심병원 소화기내과 석기태 교수팀은 건강한 사람을 포함해 지방간, 간염, 간경변, 간암 등 환자 1168명의 대변 샘플과 전 세계 공공 장내 미생물 유전체 데이터 2376건을 통합한 총 3544건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간질환이 진행될수록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유해·유익균의 균형적 서식)이 점차 줄어드는 현상이 관찰됐다. 건강한 장 환경이 무너지면서 특정 세균만 남는 방향으로 변화한 것이다.
미생물 다양성 감소에 그치지 않고 질환 단계에 따라 장내 미생물의 기능 자체도 달라졌다. 간염 단계에선 특정 세균의 활동이 증가하는 변화가 나타났고, 간경변 단계에선 몸에 해로운 독성 물질을 만드는 기능이 늘어났다. 간암 단계에선 간세포 손상 관련 물질이 더 많이 생성됐다.
주목할 점은 구강 유래 세균의 장내 이동이다. 연구팀은 간경변과 간암 환자에게서 베이요넬라, 리길락토바실러스 같은 구강 세균이 공통적으로 증가한 것을 확인했다. 타액과 대변 샘플을 확보한 120명을 분석한 결과, 입안에서 발견된 베이요넬라균이 장에서도 동일하게 검출됐다. 이는 구강 세균이 실제 장으로 이동해 정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베이요넬라와 리길락토바실러스는 유익균과 유해균의 속성을 모두 갖고 있다. 리길락토바실러스는 잇몸병과 입냄새를 막아주지만, 관리가 안 되면 치아를 부식시킨다. 베이요넬라는 충치 산성 물질을 줄여주지만 입냄새를 만들고 플라크를 키운다. 두 세균 모두 건강한 구강에서는 정상 생태계를 유지하는 조절자이지만, 양치가 잘 안 돼 당분이나 플라크가 쌓이면 순식간에 유해균의 행동을 개시한다.
생존율 분석에서는 더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다. 간경변·간암 환자 183명의 분석 결과 장에서 베이요넬라가 많이 검출된 환자군의 생존율은 20% 초반에 머문 반면, 적게 검출된 환자군의 생존율은 약 60%로 나타났다.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이 크게 감소해 특정 세균만 우세하게 남은 환자들 역시 예후가 좋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구강 유래 세균의 장내 정착 여부와 장내 미생물 균형 상태가 간질환자의 사망 위험과 예후를 내다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석 교수는 22일 “향후 침습적인 간 조직 검사 대신 대변 검사를 통한 장내 미생물 분석으로 간질환의 조기 진단법은 물론, 미생물을 표적으로 한 맞춤형 예방·치료 전략 개발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영국 소화기학회지(GUT) 최신호에 발표됐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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