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 부른 ‘역대급 보너스’…‘초과세수’는 어디로 가나

양민철 2026. 6. 22.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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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재정이 반도체발(發) 초과세수 기대감으로 들뜨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슈퍼 사이클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 이익 전망치가 치솟으며 법인세를 중심으로 한 국세수입이 당초 정부 예상을 크게 웃돌고 있어서다.

초과세수는 정부가 예상한 올해 세수(세입예산)보다 실제 거둬들인 국세수입(결산액)이 더 많을 때 발생한 차액을 말한다.

미국 주 정부는 경기 호황기에 발생한 초과세수나 여유 재원을 적립해 향후 재정적자가 발생했을 때 대규모 지출 확대나 지방채 발행 없이 필요 재원을 충당하는 완충재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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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사이드] 초과세수 쓰임은 어떻게
재경부 ‘국부펀드’ 검토…위기에 취약
예산처 ‘기금’ 고려…정치 동원 우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입구를 직원들이 오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6~18일 사흘간 상반기 글로벌전략회의를 열고 하반기 주요 사업 전략 구상에 나섰따. 연합뉴스

대한민국 재정이 반도체발(發) 초과세수 기대감으로 들뜨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슈퍼 사이클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 이익 전망치가 치솟으며 법인세를 중심으로 한 국세수입이 당초 정부 예상을 크게 웃돌고 있어서다. 앞서 청와대에선 초과세수를 국민에 환원하는 ‘국민배당금제’ 아이디어가 등장했다. 정부는 초과세수를 관리·운용할 별도의 ‘독립 기금’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 곳간이 두둑해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고유가·고환율 충격 속에 고성장 흐름은 일부 대기업과 일부 계층에 집중돼 있다. 영세 자영업자와 한계기업은 “다른 세상 이야기”라며 박탈감을 호소하는 기묘한 양극화가 펼쳐지는 양상이다. 역대급 초과세수는 한국 경제에 어떤 의미일까. 정부 재정에 유례가 없던 ‘달콤한 보너스’를 둘러싼 논쟁을 정리했다.

반도체에 달린 초과세수

최근 정부의 세수오차는 반도체 사이클, 경기 국면과 긴밀하게 연동돼 왔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을 맞은 2017년과 2018년엔 초과세수가 각각 23조1000억원, 25조5000억원 발생했다. 거꾸로 반도체 다운 사이클이 도래한 2019년(-1조3000억원)과 코로나19 팬데믹 충격을 겪은 2020년(-6조5000억원)엔 세수결손 사태가 벌어졌다.

초과세수는 정부가 예상한 올해 세수(세입예산)보다 실제 거둬들인 국세수입(결산액)이 더 많을 때 발생한 차액을 말한다. 결산액이 더 크면 초과세수가 발생한다. 반대로 전망보다 실제 세수가 부족하다면 세수결손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 5년간 세수 출렁임은 더 컸다. 코로나 비대면 시대와 반도체 경기 회복 국면이던 2021년에는 61조3000억원, 2022년에는 52조6000억원이라는 역대급 초과세수가 발생했다. 부동산·주식 등 자산시장 호조와 반도체 기업 실적 개선이 정부 예상을 크게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반도체 한파로 SK하이닉스가 적자를 기록한 2023년엔 -56조4000억원, 2024년엔 -30조8000억원의 세수결손을 겪었다. AI 반도체 시대를 맞이한 지난해부터 세수결손 폭이 줄었고, 올해는 수십조원 규모의 초과세수가 예상된다. 반도체 특수의 지속 기간에 따라 내년 이후까지 대규모 세수가 이어질 전망이다.

세계는 어디에, 어떻게 쓰나

세계 각국은 초과세수와 재정 흑자를 어떻게 쓸까. 재정 빙하기에 대비하는 완충 장치로 쓰거나, 미래 세대를 위해 국가의 부를 증대시키는 ‘국부펀드’로 활용하는 두 가지 흐름으로 나뉜다. ‘재정 완충 장치’ 대표 사례는 미국의 ‘불황대비기금’(Rainy Day Funds)이다. 미국 주 정부는 경기 호황기에 발생한 초과세수나 여유 재원을 적립해 향후 재정적자가 발생했을 때 대규모 지출 확대나 지방채 발행 없이 필요 재원을 충당하는 완충재로 사용한다.

캐나다는 매년 세입예산안을 짤 때 최악의 경제 시나리오를 전제로 ‘예비비’를 편성한다. 경제 위기가 발생하지 않아 초과세수 형태로 남게 된 예비비는 전액 국채 원리금을 상환하는 데 쓴다.

아일랜드와 호주는 일시적 초과세수와 재정 흑자를 ‘국부펀드’로 전환한 국가다.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아일랜드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이 국제 과세를 피해 지식재산권(IP)을 아일랜드로 이전하며 2024년 법인세(281억 유로·한화 약 49조원)가 10년 만에 7배로 폭증했다. 이에 고령화 등에 대응하기 위한 ‘미래아일랜드기금’(FIF)을 만들고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0.8%를 의무 납입하도록 법제화했다.

호주도 철광석·석탄 수출 급증으로 대규모 재정 흑자가 발생한 2006년 ‘미래펀드’를 설립했다. 운용 수익을 재투자해 20년 만에 자산을 4.4배(2690억 호주달러·약 289조원)로 불렸다.

펀드? 기금? 우리는 어디에

한국의 초과세수 활용 논의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거시경제를 총괄하는 재정경제부는 ‘국부펀드’를, 국가 곳간 열쇠를 쥔 기획예산처는 ‘미래대응기금’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일회성 지출에는 선을 그은 상태다. 이 대통령은 지난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일반 세수 취급을 해서 재정 지출로 소진하는 건 일단 배제해야 될 것”이라며 “가장 중점적으로는 미래 세대를 위한, 반도체와 같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것에 투자를 해야 되겠다”고 말했다.

국부펀드와 미래대응기금의 성격은 엇갈린다. 국부펀드는 투자를 통해 덩치를 불리는 전략을 쓴다. 현세대의 ‘반도체 보너스’를 미래 세대와 나눠 쓰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할 수 있다. 미래대응기금은 고령화·기후 위기 등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을 비축하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기금 일부를 투자해 불황이나 세수 결손이 닥쳤을 때 꺼내 쓰는 ‘비상금’이 된다.

국부펀드, 위기에 취약·기금, 정치화 우려

관건은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다. 국부펀드는 호황기엔 좋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나 자산 버블 붕괴 땐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정권이 펀드 투자 지침을 쥐고 흔들기도 한다. 호주는 2024년 노동당 정부가 국가 우선순위에 따라 펀드 운용 지침을 바꾸면서 설립 이후 18년간 유지해온 ‘수익 극대화’ 원칙이 흔들리기도 했다.

기금은 최우선 가치를 ‘안정성’과 ‘유동성’에 둔다. 저수익 국공채 등 안전 자산에만 장기간 묶어둘 경우 낮은 수익성에 머물게 된다. 공공성을 명분으로 정권 역점 사업에 기금이 동원될 가능성은 우려되는 지점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반도체 슈퍼 사이클로 늘어난 세수를 미래 세대를 위한 자산으로 바꾸자는 생각 자체는 충분히 검토할 만하다”면서 “(국부펀드 등의) 재원 규모와 운용 원칙이 적절하지 않으면 좋은 의도도 위험한 제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반도체 호황에 따른 초과세수는 일시적 성격이라는 한계도 있다. 정부가 세수 예측을 정교하게 해 세수가 남거나 모자람 없이 재정 계획을 짜는 게 우선이다. 예측을 뛰어넘는 ‘깜짝 실적’으로 인한 초과세수는 단기적 현상으로, 이를 얼마나 현명하게 쓰느냐가 핵심이다. 일부는 재정 건전성 관리를 위한 국채 상환 등 기존 방식의 활용 가능성도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이번 초과세수는 구조적 세입 확충 기반이 마련된 결과가 아닌, 비반복적 성격의 재원”이라며 “중장기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국채 상환 및 재원 활용 방안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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