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추자도 바다에서 발견한 '은빛 등'의 정체... 놀랍다

정소은 2026. 6. 22. 11:1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6 환경생태 현장르포 - 핵발전소와 재생에너지]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박성준 활동가·MARC 장수진 대표 인터뷰

인류를 구원할 것 같은 기술 문명이 실은 뭇생명을 죽이고, 지역을 초토화하며 공동체를 찢어놓으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AI 산업은 더 많은 에너지를 내놓으라고 우리를 닦달할 뿐 그 무엇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방향을 모르고 전력질주하는 기술 개발을 당장 멈추어야 합니다. 핵발전소 없이 살아갈 수 있지만, 물과 깨끗한 공기, 흙과 이웃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게 생명입니다. 생명으로서 우리가 빼앗기는 것이 무엇인지 잊지 않으려 합니다. 연재는 (사)세상과함께, 길동무가 함께 기획했습니다. <기자말>

[정소은 기자]

신대륙 개척 시대에 유럽인들은 선점할 영토를 찾아 헤맸다. 그들은 토착 원주민들의 삶터를 '빈 곳'이라 여기며 깃발을 꽂아댔다. 누군가는 바다를 그렇게 여긴다. 단 한 순간도 '빈 곳'인 적 없었던 바다임에도.

추자도 서쪽 바다에 이상한 물체가 띄워졌다. 일명 풍황계측기. 부표 위에 놓인 계측기는 언뜻 보면 장난감 배처럼 보이기도 한다. 생김새도 낯선 이 기계는 바다를 떠다니며 풍속, 풍향, 기온, 기압, 파고, 해류 등의 데이터를 수집했다.

몇 년간의 임무를 마친 풍황계측기의 주인은 노르웨이에 있었다. '에퀴노르(Equinor)'라는 이름의 노르웨이 국영 에너지 기업. 지구 반 바퀴 너머 추자도 해역의 풍부한 바람 자원에 이끌려 풍황 데이터를 수집하러 온 것이다. 해상풍력 기업의 이미지를 내세우곤 있지만, 사실상 수익 대부분을 석유·가스에서 얻는 세계적인 화석연료 기업이다.(참고 : https://www.clientearth.org/projects/the-greenwashing-files/equinor/)

육상의 공유지에 뭔가를 설치할 때 허가가 필요하듯, 바다도 마찬가지다. 에퀴노르는 2020년 제주시 허가를 받아 풍황계측기를 설치했다. 허가 자체는 적법했다. 그러나 주민들에게 "대규모 해상풍력단지를 지으려 한다"는 사업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논란이 일었다.

추자도 동쪽 바다에도 풍황계측기가 나타났다. 에퀴노르보다 2년 늦게 추자도에 발을 들인 추진(주)라는 국내 컨설팅 업체가 띄운 거였다. 이들은 발 빠르게 어촌계와 업무협약을 맺었고, '상생 자금'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지급했다. 어촌계 해녀에게는 300만 원, 선주에게는 최대 1000만 원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액수에 차등을 두는 방식은 결과적으로 공동체에 균열을 냈다.

민간사업자가 추자도 바다에서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작은 섬은 금세 술렁였다. 이내 반대 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섬은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며 균열이 깊어져 갔다.
 추자도 해상풍력 설치 예정지
ⓒ 상괭이편
'추자도'는 하나의 섬이 아니다.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군도(群島)'다. 인구 1500명(2025년 기준)이 조금 넘는 이 작은 섬에는 여러 정체성이 교차한다. 행정구역상 제주시에 속하지만, 지리적으로는 전남 완도에 더 가깝다. 조선 시대 이후 완도·해남·진도 등지에서 이주해온 이들의 후손이 살던 섬이기에, 제주와 전라도의 말씨와 문화가 뒤섞여있다. 제주와 전남 사이 어딘가에 속한 경계인으로 살아온 추자도 주민들에게, 제주 본섬 중심으로 돌아가는 행정 정보망은 멀기만 했다. 공청회도, 설명회도, 해상풍력 관련 정보도 그들에겐 늘 뒤늦게 닿았다. 찬성이든 반대든, 제대로 된 정보 없이 선택을 강요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사이, 사업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2023년 11월, 에퀴노르가 추진(주)을 인수했다. 그렇게 추자도 동·서 해역의 풍황 데이터가 전부 에퀴노르의 손에 들어갔다. 이듬해 2024년 9월, 오영훈 제주지사는 직접 노르웨이로 날아가 에퀴노르 본사 경영진을 만났다. 사업자가 지자체장을 찾아온 게 아니라, 지자체장이 사업자를 몸소 찾아간 것. 추자해상풍력발전사업에 에퀴노르의 참여는 당연한 수순처럼 보였다. 그러나 상황은 달리 흘러갔다.

추자도의 데이터를 가진 곳은 에퀴노르뿐이었다. 공정성 문제가 불거졌기에, 제주에너지공사는 연간 1300억 원의 도민 이익 공유금에, 전력을 제주 안에서만 팔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러자 2025년 7월 공모가 시작됐지만 에퀴노르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어 10월에 진행된 재공모에도 에퀴노르는 불참했다. 한국중부발전이 홀로 응모해 1단계 평가를 통과했지만, 2026년 2월 최종 사업 제안서를 끝내 제출하지 않았다. 그렇게 추자도 해상풍력 사업은 잠시 멈추는 듯했다.

소외되는 추자도 주민, 배제되는 상괭이... 그들 편에 선 '상괭이편' 프로젝트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아래 '파란')이 추자도에 처음 갔던 건 해상풍력 반대대책위가 결성되던 무렵이었다. 당시 파란 멤버들은 제주 지역에 지정된 해양보호구역들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 그 실태를 조사하고 주민 인터뷰를 진행하는 '해양보호구역 탐사대' 프로젝트를 하는 중이었다.

추자도 바다의 안부를 묻고자 파란의 박성준 활동가를 만났다. 그는 어민들과 인터뷰를 시작할 때 늘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고 한다. "오늘 바다 어떤가요?"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박성준 활동가를 지난 5월 20일에 만났다. 추자도 바다에서 찍은 상괭이 모습이 담긴 굿즈를 들고 있다.
ⓒ 정소은
"어민분들은 수온에 무척 민감하세요. '오늘 바다 어떤가요?'라고 여쭤보면 '바다에 더 이상 잡을 물건이 없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요즘 잡혀야 하는 어종이 잘 안 나온다, 예전보다 수온이 더 올라갔다, 기후 위기에 바다가 가장 빨리 반응한다고 하셨어요. 해수 온도 1, 2도만 올라도 해조류도 산호도 살 수가 없어요. 농업·어업 하시는 분들은 기존 방식으로 생산을 할 수 없고, 도심에서 배달하는 분들은 폭염에 쓰러지기도 하고... 기후위기 대응 방안을 논할 때, 그 위협 앞에 가장 취약하게 노출된 존재들이 주된 의사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거기에서 논의가 출발해야죠."

바다는 급변하고, 어획량은 날로 줄어가고, 노후 대책은 필요하고. 그렇다면 이 바다에서 마지막으로 기대할 수 있는 수입원은 해상풍력이 아니었을까. 변해가는 바다 앞에서 추자도 어민의 불안은 깊어졌을 것이다. 바닷속에 '잡을 물건'이 사라지고 있으니 풍성한 바닷바람에라도 기대보고픈 심정이었을 터. 해상풍력 사업자들은 어민들의 불안을 비집고 들어왔다.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한 주요 의사결정에서 추자도 주민들은 제주 본섬 사람들에 비해 늘 뒤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철저하게 배제된 이들이 있었다. 공론장에도, 협상 테이블에도 자리조차 없었던. 바로 해양 동물이다. 파란이 추자도 바다에서 그 존재를 처음 감지한 건 주민들과의 대화에서였다.

"추자도에 처음 와서 주민분들과 해상풍력에 관한 얘기를 나누던 중에, 여기 바다에 상괭이가 산다는 걸 들었어요."

하루는 날씨가 좋지 않아 예정했던 조사 활동을 취소했다. 그날은 파란 멤버이기도 한 이정준 감독이 만든 상괭이 다큐멘터리를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해양다큐멘터리 팀 돌핀맨의 이정준 감독은 파란의 해상·수중 활동에서 선장이자 길잡이 역할을 맡고 있어, 멤버들 사이에서 '캡틴'으로 통한다.

"안강망(조류에 밀려 들어오는 어류를 잡는 자루 모양의 고정식 그물)에서 질식사한 상괭이들 사체가 창고에 잔뜩 쌓여있는 장면을 보면서, 그날 조사 활동에 참여한 8명이 다 같이 울었어요. 지금 상괭이가 이 추자도 바다에 살고 있다는 건데, 만약 여기에 거대한 해상풍력 단지가 들어오면 그들은 살 곳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거잖아요. 그 순간 '그럼 우리가 상괭이를 위한 활동을 해보자'는 마음이 모였고, 그렇게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어요."
 혼획으로 죽은 상괭이의 사체들이 창고에 쌓여 있다.
ⓒ 이정준(무단 사용 및 재판매 DB 금지)
팀 이름부터 만들었다. '상괭이의 편이 되자'는 뜻에서 '상괭이편'. 악인·의인, 찬성·반대로 나뉘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조건 없이 어떤 존재의 편이 되어보자는 뜻을 담았다.

"'편이 되어 준다'는 걸 달리 말하면, 상대의 '취약함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누군가의 편이 된다는 건, 그의 취약한 상황을 온전히 감각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요즘 우리는 각자의 취약함이 버거워서 그런지 몰라도, 누군가의 '편'이 되어주는 걸 자꾸 회피하게 되는 것 같아요. 기후 위기가 전망하는 안 좋은 상황들이 있고, 거기에서 벗어나고는 싶지만, 그게 내 일이라고는 쉽게 연결 짓지 못하는 거죠."

상괭이의 데이터 공백을 채운 1년의 항해

상괭이편은 2024년 11월부터 추자도로 매월 정기 항해를 시작했다. 한 번 나가면 최소 2박 3일, 이듬해 12월까지 이어진 조사였다. 국내 상괭이 연구자료는 극히 드물다. 서식 현황에 관한 자료는 더더욱. 국가 연구 기관의 데이터는 외부에 쉽게 공유되지 않는다. 그나마 공개되는 자료 중 대표적인 것이 해양수산부 산하 고래연구센터가 집계하는 '연간 상괭이 폐사 신고 건수' 정도다. 국내에서 상괭이의 존재를 말해주는 데이터 대부분이 삶이 아닌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상괭이편의 목표는 '상괭이에 관한 공식적인 데이터를 만들어 그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항해 중 관찰·기록한 내용과 주민들의 증언 등을 공식적 힘이 실린 데이터로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학술지 등재 요건을 충족할 만큼의 과학적 방법론이 적용되어야 하고, 설득력 있는 결과물이 되기 위해선 숙련된 연구 경험이 있어야 했다. 뭔가 보완책이 필요했다.

"배도 몰 줄 알고, 상괭이 관찰하는 방법도 훈련했고, 주민분들 증언도 들어서 상괭이들이 주로 어느 지점에 나타나는지도 알고 있었죠. 열심히 여러 논문들 참고해서 조사 활동 경로도 짜고, 기록 형식을 만들고, 사전 훈련도 몇 번씩 했어요. 그러다가 MARC(마크/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의 장수진 박사님 만나서 조언을 구했는데, 한참 들여다보시더니 조금 난감해하셨어요. 이런 방식으로는 어렵겠다고 하셨죠. 그렇게 잠시 고민하시다가 그 자리에서 '저도 합류하겠습니다' 하셨어요."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는 고래류와 바다거북 같은 대형해양동물의 생태연구와 보전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다. 13년 전 제돌이 방류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제주에 오게 되었고, MARC 설립 후 공식 활동은 8년째다. 장수진 대표와 김미연 부대표 두 사람이 주축이 되어 움직이며, 경우에 따라 외부 동료들이 조력하기도 한다.

MARC가 결합하면서 상괭이편 활동은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상괭이는 수면에서 탐지하기 어려운 생태적 특성이 있기에 그에 최적화된 접근법이 중요했다. 배에서 관찰하는 방법, 운항 속도, 기록 형식 등 하나씩 자리를 잡아갔다. 전방 180도 안에 나타나는 대상만을 기록한다거나, 숙련된 관찰자가 외형·행동·이동 방향을 확인해 중복 개체 여부를 걸러내는 방식 등으로 데이터 신뢰도를 높여갔다. 그리고, '보는 법'도 훈련했다.

"'보는 기술'도 중요해요. 우리 눈이 계속 똑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으면 지루해지잖아요. 그래서 처음 승선했을 때 가장 먼저 훈련받았던 게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 그리고 '바다 수면을 볼 때 거리를 가늠하는 방법'이었어요."

파도의 상태도 매우 중요했다. 상괭이는 바다가 매우 잔잔할 때를 맞춰서 가야 만날 확률이 높다. 출항 때마다 날씨와 파도 등 여러 기상 조건을 균일하게 유지해야 했다.

"상괭이를 처음 봤던 순간이 잊히지가 않아요. 상괭이의 그 매끈한 은빛 등이 수면 위로 보이는데, 너무너무 아름다웠어요. '추자도 바다에 상괭이가 진짜 있었구나!' 하고 감탄했죠. 어떤 날은 우리 배가 완전히 상괭이들에 둘러싸인 적이 있었어요. 걔네들은 숨 쉴 때 "퓩! 퓩!" 소리를 내면서 수면 위로 숨을 뱉거든요. 그 소리가 정말 아름다워요."
 추자도 바다에서 만난 상괭이. 수면 위로 상괭이의 매끈한 은빛 등이 반짝인다.
ⓒ 상괭이편
물론 상괭이를 못 보는 날도 많았다. 그러지 않으려 해도, 그런 날이면 실망스러운 마음이 남긴 했다. 하지만, 야생동물 조사 과정에서는 만남의 성사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MARC 김미연 박사님과 함께 조사 나갔을 때, 제가 갖고 있던 고민을 말씀드렸더니 이런 얘길 해 주셨어요. '그날 상괭이가 안 보인 것 자체도 '기록'이다. '부재' 자체가 데이터다. 당신이 매번 정해진 시간, 정해진 조건 안에서, 이 바다 위에서 눈을 똑바로 뜨고 그 상황을 목격한 존재라는 것. 그날 당신이 그 현장에 존재했었다는 사실 자체가 기록이다' 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소위 '공치는 날'이란 없다. 상괭이편 멤버들이 한날한시에 추자도 바다 위에 존재했기에, '그 계절 그날 상괭이가 출현하지 않았다'라는 데이터 하나가 생긴 것이지, 공친 날은 아니라는 것. 상괭이편 활동을 전개하는 과정 속에서 그들은 편을 들거나 곁을 지키는 존재임을 넘어서, 증인이자 목격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여러 고민에 놓일 때마다, 연구 방법론 세팅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은 MARC의 몫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해주셨어요. 그때 '과학자가 이 조사 활동의 동료라는 사실이 참으로 든든하고 좋다' 이런 생각이 들었죠."
 좌) 첫 조사를 하루 앞두고 진행된 사전 워크숍. 항해 루트, 고래 관찰 방법, 기록지 작성법 등을 공유했다. 우) 베롱호 망루 위에서 포즈를 취한 상괭이편 멤버들. 추자도 바다를 누비며 상괭이의 존재를 기록했다.
ⓒ 상괭이편
'없는' 것처럼 취급되던 존재를 '있는' 존재로
MARC는 상괭이편 활동에 참여한 후, 올해 4월부터 대형 고래 연구를 위해 돌핀맨 이정준 감독과 함께 포항에 머물고 있었다. 포항에서의 조사 활동이 막바지에 접어든 5월 말, MARC 장수진 대표를 만났다. 추자도에서의 상괭이 연구 목적과 세부 주제를 먼저 물었다.
 포항에서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 장수진 대표를 지난 5월 28일에 만났다. 그는 장시간 고래 조사활동을 위해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착용했다. 바다 위에서는 초여름에도 바람막이가 필수다.
ⓒ 정소은
"'추자도에 상괭이가 산다는 것을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기자'. 이게 연구 주제예요.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상괭이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발전 지구로 지정되기 전에 그 지역에 어떤 보호종들이 사는지 파악하는 게 올바른 순서잖아요. 추자도 쪽은 고래류 조사가 거의 되어있지 않아서 데이터가 없었어요. 추자도에 상괭이가 산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 근거가 데이터화되어 있지 않으니,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공식적 자료로 남겨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개발의 욕망은 바다를 그저 '빈 공간'으로 바라볼 뿐이다. 수익을 창출해 줄 미래의 보고(寶庫). 동물에게는 발언권도 협상권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나 여기 있어요'라고 주장할 수도 없다. 각종 특별법이 개발에 힘을 실어주고 환경영향평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기에, 그만큼 과학자의 연구 데이터는 소중하다. 바닷속 생물이 여기 살고 있음을 입증하고 개발에 맞서는 방어 논리가 되어준다.

조사 활동을 나가는 이들의 욕망은 고래 관광선 관광객과 반대로 향한다. 그날의 만남 성사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이 이 바다에 존재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서식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상괭이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한 개체라도 더 기록해 데이터에 포함하고픈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만큼 조사 방법의 엄격한 체계가 중요했다. 구체적 방법론에 관해 물었다. 장수진 대표는 '모든 공간에 동일한 노력량을 사용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조사 경로와 방법론을 세팅한다고 말했다.

"저희가 실행한 조사는 섬 주변 경로의 밀도 함수를 계산하는 방식이에요. 보통은 상괭이가 나타나면 눈에 보이는 개체를 다 카운트할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연구를 위해 경로를 짜서 움직일 땐 기준을 정하죠. 배 앞쪽(선수/船首)에서 발견한 상괭이는 카운트하지만, 배 뒤쪽(선미/船尾)에서 나타난 개체는 포함하지 않는다던가. 가령, 앞에서 나왔던 개체가 물속으로 들어가 뒤쪽으로 이동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느 각도까지 관찰 범위에 포함할 것인지를 정해야 하죠. 그리고, 각 개체의 동일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숙련된 조사자가 동승했을 때와 아닐 때의 변수도 감안해야 하고요. 그런 세부적인 부분들을 조금씩 조정·보완했어요."

방법론을 다듬고, 오차를 줄이고, 계절을 넘기며 쌓아온 약 1년의 기록들. 그 데이터는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현재까지 확보된 데이터를 놓고 좀 더 고민해 봐야 하지만, 일단 '상괭이가 있다'는 게 입증된 거죠. 조사 기간이 1년이라는 걸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건 '상괭이가 추자도 바다를 계절에 따라 반복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기가 상괭이 서식지로서 기능할 가능성이 매우 유력하다' 정도예요. 단순히 '상괭이가 여기 사는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 '연구 기간 1년으로 어떻게 장담하느냐'라고 묻는다면, '그렇지, 1년밖에 못 봤으니 더 연구해 봐야겠지' 이런 생각이 들겠죠."

과학자로서 연구 결론을 표현할 때 가급적 보수적으로 눌러 말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괭이의 개체수와 규모까지 입증하려면 최소 몇 년 치 평균 데이터는 필요하다고 한다. 야생동물 연구에서 데이터는 쌓일수록 그만큼 유의미해지는 것이니까.

인간 사회에서 법이 최상위 규범으로 작용하는 건 불가피한 사실이다. 그러나 법은 스스로 현실을 관찰하지 못한다. 그래서 법조인의 손을 빌려 판결을 내린다. 국내에서 아직 생태법인이 제도화되지 않은 지금, 법 테두리 내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과학적 연구 데이터뿐. 법의 눈으로 바라보는 자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상괭이편의 활동은 상괭이라는 존재가 법의 시야 안으로 들어오도록 만드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개발 위기를 앞둔 상황에서 시간이 충분치 않다. 얼마 전 위성곤 제주지사 당선인은 에너지 고속도로와 슈퍼 그리드 사업을 선언했다. 파란과 MARC를 인터뷰하는 동안, 개발을 막을 수 있을 만큼 상괭이의 존재감을 최대한 키우고픈 조바심이 커졌다. 이 데이터가 해상풍력 사업에 제동을 걸 만큼 충분한 것인지 염려스러웠다. 심지어 연구결과를 부풀리고 싶은 충동마저 생겼다.

"'추자도 바다에 상괭이가 산다'는 건 명확해요. 그런데 그간의 여러 개발사업을 보면, 보호종이 살고 있음에도 감행한 사례가 너무도 많았어요. 하지만, 추자도 해상풍력사업 문제를 놓고 볼 때, '(상괭이가)있다, 그럼에도 추진하겠다'라는 것과, '(상괭이가)있는지 없는지 아직 모른다, 그럼에도 추진하겠다'는 완전히 다른 얘기잖아요. 즉, 저희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통해 '추자도 바다에 해양 보호 생물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 연구 데이터를 통해 입증되었다, 그럼에도 당신들은 개발을 감행하였다'라는 주장을 할 수 있게 되겠죠."

국제법에서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의 핵심 요건을 가르는 기준은 '고의'냐 '과실'이냐다. 즉, '추자도에 상괭이가 산다'는 연구 기록이 인정받게 되면, 바다를 오로지 자원으로만 바라보는 개발 행위는 법적 의미의 학살에 한걸음 가까워진다. 그런 의미에서 상괭이편의 활동은 단순 생태 조사 이상으로, 무분별한 개발 세력의 면죄부를 사전 박탈하는 힘을 갖는다.

'여기 상괭이가 산다'는 짧은 한 문장을 얻기 위해, 그토록 많은 공이 필요했다. '없는' 것처럼 취급되던 존재를 '있는' 존재로 내세울 수 있는 무기를 획득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장수진 대표는 담담하게 말한다.

"저는 이 조사 결과를 통해 '그걸(해상풍력발전사업)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이전까지 국가 조사에서도 '비어 있던' 이 공간에, '상괭이가 사는지 안 사는지조차 모르던' 이 공간에, '어쨌거나 여기 상괭이가 살고 있다'는 공식적 근거 자료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대규모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들어서면, 그것이 세워진 바다의 기초 생태계는 완전히 무너진다고 봐야 한다. 공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피해는 물론, 발전기가 발생시키는 소음과 진동은 청력에 의존해 소통하고 먹이 활동하는 해양포유류에게 치명적이다. 전자기장의 영향을 받는 상어나 가오리 등을 비롯해, 유럽에서는 박쥐까지 해상풍력의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요소들에까지 영향받는 다양한 생물종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수진 대표는 '사후 평가'와 '누적 영향 평가'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해상풍력 단지가 들어서게 되더라도, 이후 생태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시간이 지난 후 회복은 이루어지고 있는지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그 조사는 발전 지구 지정 후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형식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지역에서, 훨씬 이른 시점부터 시작됐어야 했다.

"정말 필요한 작업이었다고 생각해요. 해상풍력 발전 지구로 지정되는 상황에서도 '추자도에 상괭이가 있다'는 얘기는 계속 들려오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저희도 몇 번 기회를 만들어 보러 간 적도 있었죠. 어느 시기에 상괭이들이 나타난다는 걸 공식적 데이터로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당시엔 자체적으로 진행할 만한 여건이 아니어서 아쉬워하고 있던 참에, 마침 파란과 돌핀맨과 함께 진행할 수 있었으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죠."
 좌)MARC의 장수진 대표 / 중)선수: 김미연 부대표, 망루: 안현진 인턴 / 우)돌핀맨 이정준 감독 (포항에서 대형 고래 조사 중인 MARC와 돌핀맨을 만나 '베롱호'에 승선, 오전 11시 출항해 17시경 복귀했다. MARC 연구진은 선미/선수/망루 등 각자의 위치를 지키며 조사에 집중했다. 출항한지 지 서너 시간 남짓 지났을 무렵, 큰머리돌고래와 마주치는 행운도 얻었다.)
ⓒ 정소은
바다는 풍경이 아닌 삶터

사업 공모는 두 번의 유찰 이후 잠시 주춤한 상태이지만 멈춘 거라 보기 어렵다. 지자체장이 당선되자마자 언론을 통해 선언한 메시지(추자해상풍력 2.3GW 임기 내 착공)는 주민과의 소통도, 해양 동물의 존재도, 모두 패싱했다. 추자도 주민 공동체에 남아 있는 상처를 돌보기도 전에 선언부터 하는 것은, 개발을 확정해 놓은 채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취재 과정에서 제주에 있는 한림해상풍력과 탐라해상풍력 현장에 가보았다. 광활한 자연 앞에서 압도당해 본 적은 있지만, 인간이 만든 구조물 앞에서 그런 감각을 느껴보긴 처음이었다. 한림해상풍력발전 현장을 바라보며 '만약 추자도 앞바다에 해상풍력 단지가 들어선다면?' 하고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한림 규모의 30배에 달한다는 추자도의 광경은 상상조차 어렵다. 63빌딩보다도 높은 풍력발전기 200개가, 서울시 면적의 70%에 달하는 규모로, 추자도 앞바다를 가득 채운다. 총발전 용량 3GW. 대형 원전 3기에 가까운 용량이다. 바다 위에 하나의 산업단지가 들어서는 셈이다.
 제주 한림해상풍력발전단지. 서울 여의도 두 배 넓이의 바다에 높이 180m짜리 발전기 18기가 서 있다.
ⓒ 정소은
기사에 넣을 사진을 찍다가 흠칫 놀랐다. 나도 모르게 구도를 예쁘게 담으려 애쓰고 있음을 발견했다. 바다 한복판에 들어선 거대한 풍력발전 현장을 바라보며, 나는 웅장한 현대미술 작품 앞에서나 느낄 법한 기묘한 미적 쾌감을 얻고 있었다. 그 감각이 나로 하여금 계속 셔터를 누르게 만들었다. 문득 밀양의 송전탑과 소성리의 사드를 떠올렸다. 만약 저 거대한 풍력발전단지가 바다가 아닌 우리 집 뒷산이나 논밭 한가운데 들어섰다면, 나는 과연 같은 태도로 셔터를 눌렀을까.

바다는 인간에게 너무도 쉽게 '풍경'이 되어버린다. 그 순간 추자도 어민들도, 상괭이도, 모두 배경으로 밀려나 사라진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바다는 비어 있지 않다. 그리고, 추자도 해상풍력발전 사업도 멈추지 않았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