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배터리 파우치’ 믿어도 될까…소방당국 실험 현장 가보니
소방당국 실험 결과 제품별 차이…“국가 차원 기준 마련 필요”

주황색 불꽃이 굉음을 내며 위로 치솟았다. 순식간에 회색 연기가 실험장을 뒤덮었다. 불길이 잦아든 자리에는 검게 탄 파편과 재, 매캐한 냄새만 남았다. 방염 보관 파우치에 넣은 보조배터리에 열을 가하자 나타난 모습이다.
보조배터리 화재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시중에는 방염·난연 기능을 강조한 보관 파우치가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그러나 화재 안전성과 관련 공인 성능 기준이 없어 실제 성능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본부는 지난 19일 서울소방학교 화재감정연구센터에서 ‘보조배터리 보관 파우치 화재 적응성 실험’을 진행했다. 소방당국은 시중에서 판매되는 파우치 4종을 대상으로 실제 화재 상황을 가정한 실험을 실시했다. 보조배터리를 가방 안에 넣은 상태에서 과충전으로 발화를 유도한 뒤 연기 누출과 화염 확산, 온도 변화, 화재 지연 효과 등을 확인했다.
실험에는 일반 파우치 1종과 방염 기능을 내세운 제품 4종이 사용됐다. 일부 제품은 나일론 소재 가방 안에 넣어 실제 사용 환경과 유사한 조건을 구현했다. 사용된 보조배터리는 모두 1만mAh급이었지만 제조사와 종류는 서로 달랐다.
정태진 서울소방재난본부 화재감정연구센터장은 “동일한 배터리에 어느 정도 과전압을 가해야 발화하는지에 대한 표준 자체가 없는 상황”이라며 “실제 유통되는 다양한 제품 환경을 고려해 실험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소방당국이 주목한 것은 단순한 내열 성능이 아니었다. 화재 발생 시 이용자가 대피할 시간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 주변 가연물로 불길이 번지는 것을 얼마나 늦출 수 있는지가 핵심이었다.
정 센터장은 “방염 성능이 있는 파우치를 사용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다”면서도 “제품마다 성능 차이가 큰 만큼 화재 지연 효과와 화염 억제 능력, 배터리 용량에 따른 적정 규격 등을 판단할 수 있는 통일된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실험이 주목받는 이유는 보조배터리 화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서울에서 발생한 보조배터리 화재는 107건으로 집계됐다. 이로 인해 2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으며 재산 피해는 약 2억7000만원에 달했다. 발생 건수도 지난2023년 15건에서 지난 2024년 37건, 지난해 55건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CISS)에 접수된 보조배터리 관련 위해 사례 역시 지난 2021년 22건에서 2024년 136건으로 3년 새 약 6배 늘었다.
전응식 서울소방재난본부 현장대응단장은 “보조배터리 화재 위험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고 보관 파우치가 이를 방어할 가능성도 확인했다”며 “다만 배터리와 파우치에 따라 방화 성능이 들쑥날쑥한 만큼 국가기관의 성능 인증을 받은 제품이 생산·유통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서울소방재난본부는 이번 실험 결과를 토대로 보조배터리 보관 파우치의 성능 기준 마련 필요성을 관계 부처에 건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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