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이들이 클래식의 전율과 위로 경험했으면… ”

신지호 2026. 6. 22. 02:4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ㅇㅌㅂ] ‘1분 클래식’ 채널 박종욱 PD
매일 25억명 넘는 사람이 찾는 유튜브엔 매일 수많은 채널이 만들어집니다.
많은 한국인은 오늘도 유튜브에 접속해 정보를 얻고 음악을 듣고 뉴스를 보고 위안을 받습니다. ‘유튜버’와 ‘인터뷰’의 첫 자음을 딴 ‘ㅇㅌㅂ’은 이렇듯 많은 이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튜버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지난 11일 서울 동작구에서 만난 유튜브 채널 ‘1분 클래식’의 운영자 박종욱 PD. 박 PD는 “클래식 스타일로 편곡된 가요나 연주곡보다는 클래식 음악, 그 자체가 가진 매력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윤웅 기자

지난 11일 찾은 서울 동작구의 한 아파트.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였지만 방문을 열자 이색적인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쪽 벽면 책장엔 빛바랜 악보집이 빽빽이 꽂혀 있었고 낡은 피아노도 눈에 띄었다. 맞은편에 놓인 몇 대의 카메라와 은은한 촬영용 조명도 인상적이었다. 이곳은 바로 구독자 21만여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1분 클래식’에 자주 등장하는 배경이었다.

클래식 음악과 디지털 장비가 공존하는 이 공간의 주인은 박종욱(32) PD였다.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운 그는 서울예고를 거쳐 연세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엘리트 코스를 정석대로 밟은 ‘정통 클래식 전공자’다. 하지만 그는 안정적인 연주자의 길 대신 방송사 PD의 길을 택했다가 이제는 가장 트렌디한 뉴미디어 콘텐츠 기획자로 살아가고 있다.

박 PD의 행보는 일견 파격적인 일탈처럼 보인다. 클래식 세계를 등진 이단아처럼 비치기도 한다. 그는 어쩌다 이런 삶을 살게 됐을까. 그가 벽을 허물고 클래식의 세계, 그 밖으로 걸어 나온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천재들 틈에서 느낀 ‘생존 본능’

피아노가 세상의 전부였던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냉정한 현실을 실감했다고 한다. 바로 지독한 천재들을 만났던 것. 훗날 세계적인 거장이 된 한 학년 후배는 긴장감 흐르는 강당에서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연주했는데, 박 PD는 그날 첫 음이 흘러나온 순간을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연주가 울려 퍼진 그 몇 분 동안 그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보다 ‘연주자는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열등감을 맛봐야 했다.

“고3 때 음대 입시를 준비하면서 피아노로는 대학까지만 입학하고 연주자의 삶은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무대 위는 항상 살얼음판이고, 제가 그걸 견디는 것은 힘들겠다는 걸 느꼈거든요. 흔히 연주자의 삶을 외줄 타기에 비유하곤 해요. 몇 달을 쏟아부어도 무대 위에서 삐끗하는 일은 너무 쉽게 일어날 수 있고, 이에 따른 평가는 차갑게 다가오곤 하죠.”

클래식 전공자라면 통상 걷게 되는 길이 있다. 유학을 다녀와 교수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박 PD에겐 이 코스가 자신에게 맞아 보이지 않았다.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존 본능’이 발동했고 결국 그는 과감하게 클래식 생태계 밖으로 걸어 나왔다.

건반 내려놓은 뒤 세상에 내놓은 ‘작품’

2019년 대학을 졸업하고 박 PD는 한 클래식 전문 방송국에 인턴사원으로 입사했고, 영상 제작에 재미를 느끼게 됐다. 음악을 전공했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그가 업로드한 한 피아니스트 영상은 당시 300만뷰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방송국 유튜브 채널을 관리를 맡기도 했는데, 이 채널은 개설된 지 1년 만에 10만명 넘는 구독자를 모았다.

이 같은 성과들은 박 PD에게 새로운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건반을 누르는 것보다 학창 시절 쌓은 음악적 내공과 방송사에서 익힌 연출력을 통해 클래식의 전율을 세상에 알리는 새로운 통로를 만들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박 PD가 결국 세상에 내놓은 것이 ‘1분 클래식’이었다.

‘1분 클래식’의 영상은 화려하지 않다.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을 소개한 ‘퇴근길에서 듣다가 너무 좋아서 만든 영상’(17만뷰), 차이코프스키 안단테 칸타빌레를 추천한 ‘추울 때 들으면 마음온도 1도 상승하는 곡’(12만뷰) 등 인기 영상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음악과 간단한 해설이 전부다. 위로받고 싶은 사람에게, 혹은 슬픔을 추스르기 힘든 이에게 클래식이 가진 서사와 전율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정공법을 택한 셈이다.

위 사진들은 '1분 클래식'에서 주목 받은 콘텐츠의 섬네일들. 유튜브 캡처


“영상을 기획하다가 조회수에 눈이 멀어 원곡의 본질을 흐린다 싶으면 과감하게 대본을 엎어버려요. 사람들은 기획자가 진짜 마음을 담아 이야기하는지 직관적으로 알거든요. 기쁠 때나 슬플 때 제 영상을 찾아 ‘이 음악으로 견뎌냈다’고 말하는 시청자들의 고백을 마주할 때마다 실감하곤 합니다. 수백 년 전의 걸작이 오늘을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유명 인사들이 클래식 음악을 향유하는 모습을 나누는 ‘내 인생의 클래식’ 시리즈도 채널의 주요 코너 중 하나다. 만화가 허영만 화백이 화실에서 온종일 클래식을 틀어놓고 ‘마감의 고독함’을 달래는 에피소드는 박 PD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선생님은 늘 클래식을 들으며 작업한다고 하시더군요. 그중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2악장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셨습니다. 화실에서 치열하게 칸을 채워가는 허영만 선생님께 클래식은 삶을 지탱하는 리듬처럼 보였습니다. 우리들의 삶을 담아내는 만화나, 작곡가의 내면이 담긴 음악이나 결국 모든 예술의 본질은 ‘사람’일 겁니다. 허영만 선생님의 이야기를 다룬 콘텐츠는 수백 년 전 작곡가가 느낀 고독이 오늘날 한 만화가의 일상과 연결돼 있음을 실감하게 만든 영상이었습니다.”

변형 없는 원곡, 일상 속으로

허영만 화백의 삶처럼 클래식 음악이 누군가의 일상에 원래 모습 그대로 깊숙이 파고드는 것, 이때 생기는 클래식의 매력을 세상에 알리는 것, 그것이 바로 박 PD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궁극적인 목표다. 그는 작곡가가 남긴 작품의 ‘원형’을 소개해 구독자들이 음악이 가진 본연의 매력에 빠지도록 돕고 있다.

“클래식은 현대의 연주자가 해석하고, 관객이 다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감상하는 장르입니다. 변형하지 않은 원곡 본연의 서사를 있는 그대로 전해도 사람들은 그 깊이를 언젠가 알게 됩니다. 더 많은 분이 조금이라도 빨리 일상 속에서 클래식을 마주하고, 그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전율과 위로를 경험했으면 합니다.”

당장 생각나는 클래식 음악을 한 곡 추천해 달라고 하자 박 PD는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을 꼽았다. 우울증 탓에 고생하면서 온갖 시련을 딛고 일어난 라흐마니노프의 ‘치유의 서사’가 담긴 곡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박 PD는 “시련을 맞닥뜨렸거나 뭔가를 고뇌하는 일이 생겼을 때 들으면 마음 깊은 곳을 ‘터치’하는 고요한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1분 클래식’에서 이 곡을 소개한 영상(‘토닥토닥 힘들었지?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곡’)은 채널의 최고 히트작이기도 하다. 무려 246만뷰를 기록했다. 이 콘텐츠는 수많은 이들에게 아늑한 쉼터가 돼주었다. 시청자들은 저마다의 고단한 사연을 댓글창에 털어놓으며 위로를 주고받았다. 이처럼 사람들의 일상에 클래식이 스며드는 것, 그것이 바로 박 PD가 그리는 ‘1분 클래식’의 미래다.

“제 영상을 보는 분들을 상상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곤 해요. 그들이 제 차 조수석에 앉아 저와 함께 드라이브를 하면서 음악을 듣고 있다고. 그들 옆에서 ‘여기 참 좋죠? 이 부분은 비 올 때 들으면 눈물이 나요’라고 다정하게 속삭이는, 그런 채널을 만들고 싶어요. 단 한 사람이라도 ‘1분 클래식’을 통해 평생 즐길 플레이리스트에 새로운 음악을 추가한다면, 그래서 그분의 삶이 조금이나마 풍성해진다면 그걸로 저는 충분합니다.”

신지호 기자 pss@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