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대신 1인 연기 차력쇼 ‘지킬 앤 하이드’

하남현 2026. 6. 2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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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경계 허문 캐스팅 실험 눈길

어딘지 음산해 보이는 문 앞에 서서 관객에게 마치 팬 사인회를 연 듯 자신을 소개하던 배우가 돌연 진지한 표정으로 사실상의 첫 대사를 읊는다. “저는 이 이야기에서 선한 사람이 아닙니다”

1인극 ‘지킬 앤 하이드’에 출연한 신의정. 사진 글림아티스트


넘버 ‘지금 이 순간’으로 대표되는 뮤지컬로 국내 팬에게 잘 알려진 ‘지킬 앤 하이드’가 서울 대학로에서 연극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영국 극작가 게리 맥네어가 원작 소설『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1인극으로 각색한 이 작품은 지난해 1월 영국에서 초연했고, 이준우 서울시극단장이 연출을 맡아 지난해 국내에 첫 선을 보였다. 지난 3월 16일부터 이달 7일까지 서울 동숭동 링크더스페이스 2관에서 재연 1차 공연을 마쳤고, 지난 12일부터 2차 공연이 진행 중이다.

이 작품은 지킬 박사의 친구이자 변호사 ‘어터슨’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문과 탁자, 의자 등의 소품이 단출하게 놓인 무대는 배우 한 명이 채워나간다. ‘어터슨’은 물론 ‘지킬’과 ‘하이드’, 지킬의 여러 지인 등을 홀로 연기한다. 분장이나 소품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롯이 표정 변화와 목소리 톤, 신체의 움직임만으로 여러 인물을 창조해낸다. 말 그대로 ‘연기 차력쇼’다. 간간히 화자가 돼 관객에게 줄거리를 설명하는 역할도 배우의 몫이다.

재연 1차 공연은 남성 배우 네 명이 맡았다. 2차 공연은 신의정·최연우·전성민·장보람 등 네 명의 여성 배우가 연기 중이다. 지난해 초연에는 네 명의 배우 중 한 명이 여성이었는데, 재연에는 성별의 경계를 한층 과감하게 허물었다. 제작진은 “성별이 아닌 배우 고유의 개성과 에너지가 공연마다 다른 결을 만들기를 기대한 캐스팅”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20일 공연에서 신의정은 남성 캐릭터인 ‘어터슨’을 연기하면서 일부러 과장된 남성성을 표현하지 않았다. ‘지킬’의 지인 ‘레이너’ 박사를 연기할 때는 여성적인 어조를 적극 활용해 남성 배우가 연기한 ‘레이너’와 또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1인극 ‘지킬 앤 하이드’에 출연한 차정우. 사진 글림아티스트


끔찍한 살인 사건을 소재로 인간의 내면에 공존하는 선과 악의 이중성을 탐구하는 무거운 주제이지만 90분 내내 관객을 몰아붙이지는 않는다. 이따금 숨쉴 틈과 웃을 여유를 준다. 이 또한 배우가 할 일이다. 객석에 뛰어들어 애교를 부리고, 관객에게 손수건을 건네준 뒤 얼굴을 내밀며 땀을 닦아달라 하기도 한다.

다시금 서늘해지는 극의 분위기, 그리고 결말은 배우의 첫 대사와 맞닿아있다. 소설이나 뮤지컬과 다소 다른 마무리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원작의 메시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공연은 오는 8월 23일까지 이어진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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