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안 캐는 일본이 ‘수출 대국’ 된 웃지 못할 사연[이세계도쿄]
최근 무역통계서 수출이 수입 40배 집계
“밀수밖에 없다” 세관 ‘탈세 고리’ 주시
밀수든 정식 수입이든 녹이면 구별 불가
나리타공항에선 홍콩행 금괴 900㎏ 유치

일본 재무성이 지난달 말 공개한 무역통계에서 올해 1~4월 금 수출량이 수입량의 40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국내에서 한 해 동안 캐내는 금이 많아야 4t 수준으로 적은 나라다. 즉 직접 채굴하지도 외국에서 들여오지도 않은 수준의 대규모 금이 해외로 팔려나갔다는 얘기다.
2024년에는 1년간 229t을 수출해 세계 4위 채굴국 캐나다의 연간 금 생산량(약 200t)을 웃돌았다. 그해 일본이 수입한 금은 9t으로 수출량의 25분의 1에도 못 미쳤다. 같은 해 국내에서 캐낸 4t을 합쳐도 13t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폐전자제품과 중고 귀금속 회수, 수입 광석 제련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 금 등 합법적 공급원이 있다. 그래도 일본이 한 해 200t 넘는 금을 계속 수출하는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가타야마 사쓰키 일본 재무상은 지난해 11월 금 밀수 대응을 위한 임시 세관장 회의를 열고 “최근 금 수출입량과 국내 신규 생산량의 추이는 밀수 증가를 강하게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관장들에게 “세관의 신뢰와 관련된 심각하고 절박한 사태”라며 단속 강화를 주문했다.
당시 재무성은 홈페이지에 올린 별도 설명자료에서 “금 수출액이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한 반면 수입량과 국내에서 새로 생산되는 금에는 큰 변동이 없다는 점은 밀수 증가를 강하게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재무성이 비슷한 시기 발표한 2024사무연도(2024년 7월~2025년 6월) 탈세 사건 조사 결과를 보면 해당 기간 전국 세관이 처리한 탈세 사건은 300건으로 전년 대비 91% 증가했다. 탈세액은 약 7억엔(66억원)으로 79% 늘었다.

이 가운데 금지금(투자·거래용 금괴) 밀수입 관련 사건은 186건으로 62%를 차지했다. 탈세액으로는 약 6억2000만엔으로 90%에 달했다. 전년도(102건·약 3억6000만엔)와 비교하면 처분 건수는 82%, 탈세액은 73% 늘었다.
2024년 상반기 전국 세관이 적발한 금지금 밀수는 228건으로 전년 동기보다 81% 늘었다. 압수량은 약 937㎏으로 8.1배 증가했다. 밀수 출발지별 압수량은 홍콩발이 약 812㎏으로 가장 많았다. 전체의 약 90%를 차지한다.
올해 2월 지바현 나리타공항에서는 홍콩으로 향하던 금괴 900㎏이 세관에 일시 유치됐다. 당시 가격으로 약 270억엔(2550억원) 규모였다. 확인 결과 수출 주체는 도쿄 오카치마치의 금 매입업체였다. 한 차례 수출 물량으로는 상당한 규모였지만 최종적으로 ‘문제 없음’ 판단을 받고 업체에 반환됐다.
일본 매체 데일리신초는 15일 “수출 절차를 진행한 관계자에 따르면 세관 측은 금의 출처와 정련 장소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했다”며 당국이 금 수출을 얼마나 예민하게 들여다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했다.
집중 단속에도 계속 늘고 있는 금 수출량 통계는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밀수 가능성이 크지만 정확한 출처나 경로를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에서 금을 상업적으로 채굴하는 곳은 가고시마현의 히시카리광산이 유일하다. 연간 생산량은 3t 중반에서 4t 사이를 오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데일리신초는 “전자부품 등에서 회수되는 금이나 중고 금목걸이 등이 매입업자를 거쳐 수출되는 경우가 있다 해도 국내 회수분만으로는 거액의 수출 초과를 설명할 수 없다”며 수치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음을 강조했다.
일본귀금속마켓협회 이케미즈 유이치 대표는 지난달 26일 라디오닛케이에 출연해 “일본 금광의 생산은 히시카리광산의 연간 4t뿐”이라며 “정련업자가 해외에서 수입한 구리·납·아연 광석에서 부수적으로 생산하는 금을 더해도 대략 연간 150t에 못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신문)은 지난달 25일자 기사에서 무역통계를 분석한 결과 2025년도 일본의 금 수출액이 처음으로 4조엔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이 기간 금 수출액은 4조884억엔(약 38조6500억원)으로 전년보다 35.6% 늘어 1988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수입액은 1777억엔(약 1조6800억원)이었다.
일본 정부는 조직적 밀수를 의심하고 있다. 가타야마 재무상은 지난해 11월 임시 세관장 회의에서 “조직적 밀수 수법이 이용되고 밀수 이익이 범죄조직의 자금원이 되고 있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일본이 밀수 루트로 이용되는 배경으로는 홍콩 등 소비세가 없는 지역과의 제도 차이가 거론되고 있다. 당국과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소비세 구조다. 밀수업자들이 금을 일본 국내로 몰래 들여와 소비세 납부를 피하고, 국내 금 매입업자에게는 그 금을 소비세 포함 가격으로 팔아 상당한 이익을 얻고 있다는 관점이다. 일본의 소비세율은 현재 10%다.
데일리신초 국세청 담당 기자는 “밀수 그룹은 소비세를 내지 않고 금을 일본에 밀수입해 정련·가공업자에게 판다”며 “이 거래는 국내 소비에 해당하기 때문에 밀수 그룹은 소비세 10%가 포함된 대금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수출 거래는 국내 소비가 아니기 때문에 소비세 면세 대상이다. 정식 거래 서류를 갖춘 수출업자는 매입 단계에서 부담한 소비세를 공제받거나 환급받을 수 있다. 문제는 그 금이 밀수된 것이었다면 ‘수입 단계에서 탈세, 수출 단계에서는 환급’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이런 탈세-환급 구조는 반복 거래 유인이 된다. 밀수된 금을 사들인 정련·가공업자가 수출업자에게 되팔면 금은 다시 해외로 나간다. 해외로 나간 금을 다시 사들여 일본으로 몰래 들여오면 같은 돈벌이를 반복할 수 있다.

데일리신초 기자는 “금은 홍콩 등 소비세가 없는 국가나 지역으로 보내지고 다시 밀수 그룹에 의해 일본으로 반입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방식으로 금을 돌리면 밀수업자는 계속 차익을 볼 수 있다. 이케미즈 대표는 라디오닛케이에 밀수 금이 일본 내에서 매각된 뒤 다시 수출되는 구조를 설명하며 “빙빙 돌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추정했다.
세계금협회(WGC) 일본 대표를 지낸 도요시마 이쓰오는 지난달 25일 미쓰비시UFJ신탁은행 웹사이트 내 전문가 해설에서 “애초 금지금은 녹여버리면 정규인지 비정규인지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밀수 금 추적이 어렵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는 “비정규 루트의 금이 정규 루트에 섞여 들어갈 가능성도 0은 아니다”라며 “이는 누구도 증명하거나 단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는 금 밀수 정황을 단순한 세금 탈루 차원을 넘는 문제로 보고 있다. 가타야마 재무상은 지난해 12월 2일 재무성 기자회견에서 “금이 국내에서 거래량이 늘어나는 한편 국내 공급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은 아니므로 밀수가 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그 자체가 과세 회피”라며 “제대로 포착하는 것이 장래의 범죄 억지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소비세 환급 문제에 대해서는 “현재 금 가격이라면 소비세가 매우 높다”며 “그것을 속여 들여와 환급금까지 받으려 한다면 (밀수업자 입장에서는) 매우 좋은 형태로 현금을 얻는 방법 그 자체”라고 평가했다. 이어 “환급된 돈은 깨끗해져 있다”며 “아마 조직적으로 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2017년 11월 재무성 관세국은 ‘스톱 금 밀수’라는 구호를 내걸고 긴급대책을 발표했다. 당시 관세국은 금 밀수에 대해 “개인에 의한 것뿐 아니라 조직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사안도 확인된다”고 밝혔다. 세관이 적발한 금지금 밀수입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봤다.
밀수 방식은 항공기·크루즈선 승무원, 여행 인솔자, 상업화물, 해상 거래를 이용한 수법까지 다양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도요시마 전 대표는 과거 사례로 일본 근해에서 선박 간 금지금을 옮겨 싣는 방식, 뗏목 아래 금지금을 매달아 흘려보내는 방식, 한국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페리를 이용한 반입 수법 등을 언급했다.

일본 세관이 적발한 밀수 가담자들은 금괴를 속옷, 복대, 신발 밑창, 가발 등에 숨겨 반입하려 했다. 복대 위에 실리콘으로 만든 가짜 배를 붙인 경우도 있었다. 분말 금을 콘돔이나 비닐에 밀봉한 뒤 몸속에 숨기기도 했다. 목걸이, 팔찌, 단추, 지퍼 등으로 가공해 평범한 장신구처럼 보이도록 하기도 했다. 캐리어 바퀴, 손잡이 장식, 낚시추, 화장품 용기 등으로 성형하거나 노트북, 휴대폰, TV 등의 내부 부품을 제거하고 금을 채워 넣기도 했다.
2023년 11월 일본 히로시마 공항에서 적발된 베트남 국적 남성은 골프채 6개의 헤드 부분을 금으로 가공한 뒤 골프 가방에 숨겨 입국하다 붙잡혔다. 압수된 금은 약 3.4㎏으로 시가 3200만엔(약 3억원) 상당이었다.
일본 정부는 밀수 금 반입·거래 구조가 국내에서 강도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해왔다. 금괴와 거액 현금이 공항이나 항만과 귀금속상 밀집 지역 등을 반복적으로 오가는 과정에서 운반책이나 거래 관계자가 범죄조직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자금 출처 등을 설명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적극적으로 신고하기 어렵다는 점도 노리기 좋은 조건이다.
올해 1월 도쿄에서 잇따른 거액 현금 강도 및 강도 미수 사건은 금 밀수·처분 과정에서 발생한 파생 범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9일 밤 현금 4억2000만엔 강탈 사건이 벌어진 우에노 오카치마치는 일본 최대 귀금속 도매상가 밀집 지역이다. 몇 시간 뒤인 다음날 새벽에는 하네다공항 제3터미널 주차장에서 약 1억9000만엔을 실은 차량을 노린 강도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두 사건 피해자들 모두 홍콩으로 현금을 운반하려던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관계자들은 금 밀수 그룹을 노린 사건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네다공항 사건 피해 남성은 이후 홍콩으로 출국했고, 다음 날 아침 현지 환전소 앞에서 약 5800만엔이 든 가방을 빼앗긴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정부는 이미 세금 제도와 단속 체계를 동시에 손보고 있다. 재무성은 2019년 세제 개정을 통해 사업자가 밀수품인 줄 알고도 사들인 경우 소비세 매입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게 했다. 밀수 금이 정상 거래처럼 매입업자에게 넘어가 세금 공제에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금·백금 지금을 사들일 때는 판매자의 본인확인 서류 사본을 보관해야 한다.
지난해 12월부터는 밀수 적발 시 금을 몰수하기로 방침을 강화했다. 벌금 산정 금액은 ‘밀수 시점 가격’에서 ‘처분 시점의 시가’로 바꿨다.
재무성은 2026년도 정원 배정에서 세관 인력을 68명 늘리며 ‘불법 약물·금지금 등 밀수에 대한 엄격한 단속 체제 강화’를 역할로 명시했다. 국세청 인력도 소비세 부정환급 대응 등을 이유로 23명 늘리기로 했다.

금 등 보석과 귀금속은 자금세탁과 범죄수익 이전에 쓰이기 좋은 수단으로 평가된다. 재산적 가치가 높고 운반이 쉬운 데다 전 세계 각지에서 현금화하기도 쉽다. 거래 후에는 유통 경로와 소재를 추적하기 어렵다. 경제산업성은 “특히 금지금은 현금 거래가 중심이라는 점 등에서 자금세탁이나 테러자금 공여 등의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수출 초과분 전체를 밀수 금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재활용 금, 전자부품 회수 금, 제련 부산물, 개인 보유 금 매각 등 합법적 경로도 존재한다.
이케미즈 대표는 “세계적으로 봐도 투자용 금지금에 소비세를 부과하는 나라는 일본이나 한국 등 몇 나라뿐”이라며 “이 차이를 해소하지 않는 한 탈세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나라가 금지금을 ‘통화’의 일종으로 보고 과세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도요시마 전 대표도 일본 특유의 소비세 환급 제도를 지적하며 “따라서 밀수업자에게 일본은 ‘맛있는 나라’가 된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하이닉스發 학벌 차별금지 논쟁 재점화…與에선 법제화 움직임도
- 노태악 ‘투표용지 부족’ 첫 보고 오후 5시 20분에 받아
- “재택근무로 뛰는 월드컵?”…네이마르 향한 브라질 대통령의 농담
- ‘연어 술자리 위증’ 이화영 1심 징역 4개월…“진술 일관성 없어”
- “사랑과 정성으로 키운다”던 번식장의 실체 [개st하우스]
- 또 경우의 수 등판… 남아공과 비겨도 32강, 지면 탈락할 수도
- 하정우, 국가AI전략위 부위원장으로? 국힘 “회전문 인사” 비판
- [속보]‘수비라인 불통 숙제’ 멕시코전 0대1 패배…김승규·이기혁 겹치며 치명적 실수
- “폭언에 이성 잃어” 아버지 살해한 30대에 징역 30년 구형
- 귀국 행사 온 정청래 90도 인사…李대통령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