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버린AI 허와실⑤] ‘독자성’ 집착 버리고 현실적인 ‘오픈소스 주권 기준’ 고민할 때

[디지털데일리 오병훈기자] 소버린 인공지능(AI)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지만 가장 주목을 많이 받고 있는 주제 하나를 꼽자면 단연 정부가 추진 중인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일명 ‘독파모’ 프로젝트다.
외국 기술에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한국 자체적인 AI 역량 및 생태계 구축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AI 중점 사업으로 밀고 있는 정책사업이다. 국내 주요 AI 기업들이 팀(컨소시엄)을 이뤄 참가하는데다가 대국민 평가 등 요소가 가미되면서 크게 관심을 끌었다.
다만 1차 평가 과정에서는 잡음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네이버클라우드가 선보인 모델 ‘하이퍼클로바X 시드 32B 싱크’에서 중국 알리바바가 개발한 ‘큐웬’ 모델의 인코더를 활용한 것이 문제가 됐다. 결과적으로 네이버클라우드는 1차 평가에서 ‘독자성’ 취지와 부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2차 평가 진출에 실패했다.
해당 사태를 두고 업계와 학계에서는 치열한 논쟁이 오갔다. 쟁점은 ‘어디까지 외부 기술을 쓰면 독자 AI라고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수렴됐다. 국산 기업이 만들었는지, 외국 기술을 참고했는지, ‘오픈소스 사용 여부’만으로는 답을 내리기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모델 가중치, 학습 과정, 데이터, 라이선스, 배포·운영 통제권을 국내 주체가 실제로 쥐고 있는지 여부라는 것이 전문가들 평가다.
◆‘중국산’ 프레임에 갇힌 독자성 논쟁…기준 논의는 뒷전
독자 모델을 만들자는 본래 취지를 두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은 드물다. 글로벌 AI 모델 접근권이 특정 국가와 기업 정책에 따라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이 최소한의 대체 가능성과 협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독파모 프로젝트가 비롯됐다. 국방·공공·산업 등 국가 핵심 영역에서 외부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와 모델 업데이트 정책에 전적으로 기대는 구조는 국가 차원의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독자성 논쟁이 기술적 판단 기준을 정교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어떤 외부 기술은 허용 가능한 참고인지, 어떤 요소는 독자성을 훼손하는 의존인지 구분하는 논의가 필요했다. 하지만 당시 논란은 중국 기술의 활용 여부와 기업별 탈락·선정 결과에 집중됐다. 그 결과 독자성 판단 기준을 산업계 전체 공통 언어로 만드는 작업은 뒤로 밀렸다는 평가다.
이 관점에서 보면 독파모 논란의 핵심은 ‘외산 기술을 일부 썼느냐’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외부 모델 학습 결과물이 국내 모델의 가중치 형성에 영향을 미쳤는지, 이후 외부 라이선스나 접근권 제한이 생겼을 때도 국내 주체가 모델을 유지·고도화할 수 있는지 등을 따지는 것이 본질이다. 독자성은 ‘원산지’ 증명이 아니라 ‘책임·통제 능력’에 가까운 개념이라는 의미다.
김숙경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독자성은 글로벌 오픈소스와 단절이 아니라 핵심 통제권 문제로 봐야 한다”며 “오픈소스를 활용하더라도 라이선스 제약이나 외부 통제로부터 자유로운지, 국내 주체가 모델 구조와 학습 전략을 이해하고 수정할 수 있는지, 자체 데이터로 고도화할 수 있는지, 보안·배포·운영을 통제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픈소스 없는 AI 개발은 불가능…활용과 의존 구분해야
현실적으로 오픈소스 없이 AI 모델을 개발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 다수의 분석이다. 모델 구조, 학습 프레임워크, 토크나이저, 데이터 처리 파이프라인, 추론 최적화 도구, 평가도구 등 AI 개발 전 과정은 이미 글로벌 오픈소스 생태계와 깊게 연결돼 있다. 오늘날 AI 기업이 모든 소프트웨어 구성요소를 직접 만들고, 모든 알고리즘을 새로 설계하며, 모든 도구를 자체 개발하는 방식은 속도와 비용 면에서 현실성이 낮다.
글로벌 지표도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글로벌 소프트웨어 컨설팅 업체 오픈로직이 발간한 ‘2026 오픈소스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조직의 98%가 최근 1년간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사용을 유지하거나 확대했다. 오픈소스 선택 이유로는 비용 절감이 가장 높았지만 ‘벤더 종속 회피를 위한 선택’이라는 답변도 55.35%에 달했다. 오픈소스가 단순히 ‘공짜’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기술 선택권과 디지털 자율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의미다.
이 대목은 소버린AI 논의에도 중요하다. 소버린AI를 외부와의 단절로 해석하면 글로벌 개발 흐름에서 뒤처질 수 있다. 오히려 오픈소스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면서 라이선스, 보안, 데이터, 운영권을 관리할 수 있다면 오픈소스는 주권을 해치는 요소가 아니라 통제권을 넓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독자성 기준 세분화 필요…설계·학습·고도화 단계별로 봐야
이제 필요한 것은 ‘독자냐 아니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단계별 판단 기준이다. 독자성은 최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는 아키텍처 설계부터 사전학습까지 모두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방식이다. 모델 구조와 핵심 알고리즘을 자체 설계하고, 초기 가중치부터 자체 데이터로 학습해 모델을 만드는 형태다. 장점은 분명하다. 기술 내재화 수준이 높고, 라이선스·보안·운영 측면에서 가장 높은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다.
국방, 안보, 금융 등 핵심 공공 인프라처럼 외부 의존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하는 분야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방식이다. 반면 비용과 시간이 막대하고 글로벌 빅테크가 더 빠르게 성능을 끌어올리는 상황에서는 개발 완료 시점에 이미 경쟁에서 크게 뒤쳐질 위험이 있다.
둘째는 아키텍처는 공개 논문, 검증된 구현 방식을 참고하되 가중치는 초기화하고 자체 데이터로 처음부터 학습하는 방식이다. 글로벌 생태계와 정합성을 유지하면서도 모델의 핵심 학습 경험과 가중치 형성 과정을 국내 주체가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경우 ‘아키텍처 독창성’은 제한적일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외부 구조를 참고했는지 어떤 데이터로 학습했는지, 가중치 형성 과정이 독립적인지 투명하게 검증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셋째는 이미 일정 단계까지 학습된 모델을 가져와 그 위에 추가 학습이나 미세조정을 하는 방식이다. 산업 특화 AI, 버티컬 AI, 사내 업무 자동화, 고객 서비스형 AI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수 있다. 비용이 저렴하고 속도가 빠르며, 실제 서비스 적용도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국가대표급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이라고 부르기에는 한계가 있다. 외부 모델 가중치와 학습 결과물에 의존하는 순간 원 모델의 라이선스와 업데이트 정책, 배포 조건, 접근권 변화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기술 단계 관점에서 현실적인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설계부터 아키텍처나 코어 알고리즘부터 우리가 아예 독자적으로 할 것인지, 학습부터 할 것인지, 학습도 어느 정도 된 것을 쓰고 그 위에 우리 서비스를 올릴 것인지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독자성 확보 수준은 각 산업군 특성에 맞춰 유연하게 적용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국방이나 금융 인프라 영역에서는 설계부터 알고리즘까지 완전히 내재화하는 방식이 필요할 수 있다.
민감한 산업 분야를 제외한 일반 공공 서비스나 단순 문서 작업 보조 같은 범용 업무에서는 외부 오픈소스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거나 미세조정한 모델을 배치하는 등 단계별 가이드라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소버린AI는 ‘모든 것을 국산화하자’는 구호가 아니다. 빼앗기면 안 되는 데이터, 외부에 판단권을 맡기기 어려운 영역에서 통제권을 확보하자는 전략이다. 그런 점에서 독자성 논란의 다음 단계는 ‘외부 기술을 썼느냐’가 아니라 ‘어떤 단계에서 무엇을 통제하고 있는가’를 묻는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한 AI 기업 대표는 “설계부터 아키텍처나 코어 알고리즘까지 독자적으로 할 것인지, 아키텍처는 가져오되 학습부터 할 것인지, 이미 학습된 모델 위에 우리 것을 올릴 것인지를 구분해야 한다”며 “소버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느냐, 외부 지원이나 공개가 끊겼을 때도 지속적으로 고도화할 수 있느냐를 구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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