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윤의 딴생각] 불행에서 발견한 다행

2026. 6. 20.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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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다친 아빠가 병원에 입원한 지 석 달이 다 되어 간다. 멍한 얼굴을 하고서 병상에 누워 있는 아빠를 보고 있노라면 뇌라는 기관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의식은 있지만 인지는 떨어지고 다리에 힘은 있지만 걷지 못하는 이유는 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회진을 오는 의사 선생님은 “예, 뭐. 좀 더 지켜봅시다”라는 말씀만 하신다. 처음에는 그런 선생님이 답답했지만 이제는 선생님도 참 답답하시겠다는 생각이 든다. 네 명의 환자가 함께 쓰는 병실, 수많은 사람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지만 아빠만은 꿋꿋이 자리를 지킨다. 이러다가 말뚝이라도 박는 건 아닐까 싶다.

속된 말로 짬밥이 차다 보니 병원 생활에 잔꾀가 생겼다. 간병 초보를 위해 그것을 공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거동이 어려운 환자를 돌보려면 힘을 써야 하기 마련이다. 진작에 근력을 키워두지 않았다면 같은 병실 간병인 아주머니에게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없으니 평소에 먹을 것을 챙겨드리며 내 편으로 만들어 두는 것이 좋다. 또, 상주 보호자가 아닌 사람이 병실에 올라가려면 인적사항을 적고 출입증을 발급받아야 하는데 매일 아침 그 일을 반복하다 보면 이게 다 무슨 짓인가 싶다. 이러한 번거로움을 해결하려면 검사 갈 때 주는 안내지를 잘 챙겨두도록 하자. 거기에 붙은 환자 바코드로 출입증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병원에는 비밀이다.

병원 생활에 아무리 이력이 났어도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일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아빠의 기저귀를 가는 것이다. 연하 장애가 생겨 이따금 사레가 들리기는 하지만 먹는 데 큰 문제가 없는 아빠를 위해 언니와 나는 온갖 보양식을 병원으로 사다 나른다. 설렁탕, 추어탕, 갈비탕에 장어탕까지. 세상의 온갖 탕이 아빠의 뱃속을 뜨끈하게 덥힌다. 아빠가 입맛이 없어 보여도 먹이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탕이 약이라도 되는 양 억지로 떠먹인다. 그 업보를 치르는 건 당연한 일. 구십㎏이 넘는 아빠의 몸을 왼쪽으로 돌렸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돌렸다가, 도로 바르게 눕히며 기저귀를 갈다 보면 정수리에서부터 흐른 땀이 등줄기를 적신다.

그래도 몸이 힘든 건 견딜 만하다. 하룻밤 자고 나면 회복될 일이다. 다만,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쉽지 않다. 하룻밤 자고 나면 괜찮아졌다가도 또 하룻밤 자고 나면 고꾸라지기를 반복한다. 새로운 환자가 병실에 들어올 때마다 자꾸만 아빠와 비교하게 되는 것이 스트레스의 근원이다.

옆 침대 아저씨는 거동이 좀 불편하기는 해도 말씀은 잘하시네. 우리 아빠는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는데. 맞은편 침대 할아버지는 구십이 넘었는데도 정신이 또렷하시네. 우리 아빠는 내가 누군지도 못 알아보는데. 아저씨와 할아버지가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괜스레 얄밉다. 나에게 이러한 시련을 준 세상이 원망스럽다.

아무도 몰래 같은 병실 환자들을 미워하던 어느 날, 옆 침대에서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뇨 관리 안 하시면 이쪽 발가락도 자를 수 있어요.” 이쪽 발가락도 자를 수 있다는 말인즉 저쪽 발가락은 이미 잘랐다는 소리잖아! 잠시 후, 맞은편 침대에서 보호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부지, MRI 찍으러 가셔야 돼. 찍기 전에 틀니고 뭐고 다 빼야 된대. 의안 빼셔.” 의안을 끼고 있다는 말인즉 한쪽 눈이 없다는 소리잖아! 우리 아빠는 발가락도 있고 눈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른 이의 불행에서 아빠의 다행을 찾는 것에 옅은 죄책감을 느꼈지만, 그들 역시 우리 아빠에게서 저마다의 다행을 발견했을 테니 너무 미안해하지는 않으련다.

고된 간병을 마치고 언니와 손을 바꿨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까무룩 잠에 들었다. 낮 동안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가 해가 질 때가 되어서야 핸드폰을 확인했다. “오늘 기저귀 세 번 갈았음.” “도대체 아빠한테 뭘 먹인 거야.” “힘들어 죽는 줄.” 언니에게서 메시지가 여러 개 와 있었다. 눈이 퀭해진 이모티콘까지 덧붙인 걸 보니 혼자서 엎치락뒤치락하느라 꽤 고생한 모양이었다. 아빠가 넙죽넙죽 잘 받아먹기에 떡갈비 넣어 상추쌈도 싸주고 간식으로 딸기랑 단팥빵이랑도 좀 먹였다. 아차, 요구르트도! 요구르트를 줬다는 사실은 쏙 빼놓고 수고했다는 말만 답장으로 보냈다. 오늘 내가 간병했으면 어쩔 뻔했어. 휴, 다행이다.

이주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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