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넘게 이어져 온 외계인 사랑, 스필버그의 마지막 퍼즐

고광일 2026. 6. 1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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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디스클로저 데이>

[고광일 기자]

 스틸컷
ⓒ 디스클로저 데이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26년은 감히 우주영화의 해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에서는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가 7월 개봉을 확정 지었다. 해외에서는 죽어가는 태양을 살리기 위한 라이언 고슬링과 로키의 우정을 다룬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시작으로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드니 빌뇌브와 티모시 샬라메의 <듄3>, 돌아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루소 형제의 <어벤져스: 둠스데이>가 맞붙는다. 하지만 올크크로 접어든 전 세계의 지긋한 시네필들은 어쩌면 이 영화를 더 기다렸을 거 같다.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디스클로저 데이>이다.

"당신이 그걸 뭐라고 부를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늘 우주에 관한 오락물이라고 할만한 것들을 기대하고 있어요. 기상학적 설명 그 이상의 것을요. 행동과학의 관점에서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저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공군과 정부가 우리에게는 그걸 알려주려고 하지 않을까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왜 사람들이 하늘을 쳐다보면서 그걸 믿고 싶어 하는가에 대해 알아내려고 했어요."

1977년 '사이트 앤 사운드'와의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의 호기심은 5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같은 해 개봉한 <미지와의 조우>에서 빛과 소리가 결합한 경이로운 만남으로, 5년 뒤에 공개한 <E.T.>의 감동적인 만남 덕에 기상학적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행동과학의 관점에서 하늘을 쳐다보게 했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정서적 후속작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작품에서 스필버그는 외계인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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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클로저 데이
이성과 감성의 각성

북한의 핵 도발과 쿠데타 세력의 등장으로 압력이 높아진 한반도에 미·중·러가 얽히며 세계 3차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1947년 로스웰 사건 이후 정부와 군의 위탁을 받아 외계 존재에 관한 정보를 관리하는 민간기업 워덱스에서 사이버보안을 담당하던 다니엘(조쉬 오코너)이 외계 기술과 기밀문서를 빼돌린다. 한편 기상캐스터 마가렛(에밀리 브런트)는 출근 직전 집으로 날아든 홍관조를 본 이후 이상한 능력이 생긴다. 배운 적 없는 외국어가 술술 나오고 처음 만난 사람의 기억과 마음을 읽게 된다. 그리고 생방송 도중 정체불명의 언어를 뱉으며 쓰러진다.

스필버그는 <디스클로저 데이>에서 외계인은 실존한다는 나름의 연구 결과를 일찌감치 발표한다. 다니엘은 '디바이스'로 불리는 외계인의 도구까지 탈취했고,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대한 조직이 그를 뒤쫓는다. 대통령도 8년 후에는 민간인이 된다는 이유로 미국 정부도 워덱스에 함부로 개입할 수 없다. 이렇게 비밀을 밝히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추격전은 대중의 알권리와 사회적 혼란의 방지라는 신념의 갈등으로 확장된다.

우주 공통언어로 불리는 수학적 능력을 각성한 다니엘에게도 이는 역시 판단이 어려운 문제다. 예지에 의한 범죄 예방이 옳은지 물었던 SF <마이너리티 리포트>. 투자 유치를 앞두고 정부가 금지한 뉴욕타임즈의 펜타곤 페이퍼를 지지하고 함께 후속보도를 할지 고민하던 드라마 <더 포스트>. 냉전이 한창이던 1950년대에 소련의 스파이를 변론한 변호사와 이념은 다르지만 신념을 잃지 않던 스파이를 다룬 우아한 첩보물 <스파이 브릿지>처럼 21세기에 발표한 스필버그의 명작들이 공유하는 딜레마의 연장선에 <디스클로저 데이>가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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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클로저 데이
마가렛의 이야기는 <미지와의 조우>, <E.T.> 에서 출발한다. 마가렛의 각성은 감성적으로 발전했을 때의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지향점이다. <미지와의 조우>에서 외계인과 접촉한 이후 공통의 이미지(데블스 타워)를 떠올리고, 그 장소에 도달하기 위해 분투하던 사람들. <E.T.>에서 E.T.와 교류가 늘어나고 끝내는 감각까지 공유하던 엘리엇을 뛰어넘은 수준이다. 공감이란 능력이 신(혹은 외계인)과 같은 초월자들이 갖고 있는 특별한 신력이 아니라 인간에게 내재한 힘이라는 걸 강조하듯 마가렛이 스스로 종교, 즉 신이 되기를 거부하고 인간으로 남았다는 사실이다.

노아(콜린 퍼스) 역시 디바이스를 통해 타인을 조종할 수 있지만 외부의 힘을 통한 시도는 본인의 생명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영속적이지 않다는 대비가 드러난다. 마침내 외계인과 조우하고 전언을 들은 마가렛이 인류에게 전하는 첫 메시지인 "Listen"의 발화와 함께 영화가 끝이 난다.

이는 이제 내 말이 시작되니 집중하라는 강조 혹은 떡밥을 위한 무책임한 열린 결말이라 해석하기보다 3차 대전으로 공멸의 기로에 선 인류에게 전하는, 나머지는 부연 설명일 뿐인 궁극적이고 무결점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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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클로저 데이
스필버그의 한결 같은 약속

각각 지성과 감성을 각성한 다니엘과 마가렛은 서로의 서사를 갖고 있지만 시작은 동일하다. 문밖에서 비추던 강렬한 빛에 이끌렸던 어린 시절이 있다는 기억. 인간을 인간다운 고뇌로 채우는 이성적인 딜레마도, 천부인권처럼 주어지는 힘인 공감 능력에 대한 자각도 모두 빛에서 시작됐다. 다니엘의 탈출을 돕던 휴고(콜맨 도밍고)는 마가렛이 어린 시절 살던 집을 똑같이 재현한다. 세트장처럼 꾸며진 집에서는 밝고 따뜻한 빛이 가득하다. 어린 소년·소녀를 매혹하던 빛은 무엇일까.

어린 시절에 집 밖에서 비추던 빛에 마음을 빼앗겼던 두 사람은 집을 떠나 막연한 감각에만 의지해서 처음 가보는 여행길에 오른다. 정신을 조종당하는 동료에게 흉기로 위협당하고 질주하는 기차에 충돌할 위기에서 가까스로 탈출하며, 은신처를 급습하는 방해자들을 겨우 따돌린다. 언제 끝날지 모를 모험 끝에 두 사람은 빛으로 가득한 집으로 돌아와 마침내 외계인과 최초로 조우했던 꿈 같은 순간을 기억해 낸다. <디스클로저 데이>는 결국 빛을 찾는 여행이다.

"내가 만든 영화의 대부분은 여행에 관련돼요. 목적지는 항상 1막에서 알 수 있죠. 많은 영화들이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 답함으로써 관객이 기대하는 불가피한 결론으로 인도하며 (내가 바라는 바이지만) 관객들은 실망하지 않아요. 내 영화 각각은 도착 지대를 약속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단지 어떤 드라마에 관심을 갖죠." (『스필버그의 말』, 스티븐 스필버그 지음, 마음산책)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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